오지? 뜬금없이 오지인이 무슨 말이냐고 물을 독자가 있을 듯 싶다.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곳 호주에서는 호주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Aussie(오지)’라고 부른다. 오지라니, 한국말로 따지면 외따로 떨어진 지역이라는 건데, 이 괴상한 어감에 혹시 흑인에게 하는 것처럼 '호주사람들을 비하해서 생긴 말이 아닌가'하고 꺼려지기조차 했다. 사전을 찾아봐도 속어라고 당당하게 표기된 이 말에 내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리오. 하지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I'm aussie'라고 소개하는 이 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나 또한 이속에서 1년을 오지인처럼, 오지인이 되어 살아가야 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모든 독자들이 예상했듯이, 여기는 남반구의 거대한 대륙, 호주. 나는 그중에서도 경제의 중심지 시드니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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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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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개방적인 나라이다. 전세계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여 다양한 민족들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국가이기도 하고(길거리를 걷다보면 호주인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난다), 전세계에서 게이의 수치가 제일 높은 곳이기도 하다. 게이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가 본 축제가 ‘마르디글라스’, 소위 게이, 레즈비언 축제라고도 부르는 것이였다. 호주의 관광수입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 축제는 전세계의 게이들이 다 모여 퍼레이드를 벌이고, 그들을 지지하는 광경을 연출하는 건데 작년 축제 땐 우리나라에선 홍석천이 와서 여자한복을 입고 퍼레이드에 참여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올해는 그 퍼레이드 속에서 한국인은 볼 수 없었지만, 그 외 남자들끼리 키스하고 알몸의 여자가 하는 퍼포먼스 등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광경을 그대로 목격할 수 있었다.
덧붙이면 이 곳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지 저러한 축제를 즐기고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된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BYO(bring your own alcohol)'에도 익숙해져야 되고, 더치페이에도 익숙해져야 되고, BBQ문화에도 익숙해져야 되고, 그 외 사소한 것들, 인사부터, 카펫사용 요리문제, 설겆이 등등등 신경써야 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파티를 정말 좋아한다. 나 또한 교환학생을 가면 같은 기숙사 사람끼리, 혹은 커뮤니티에서, 친구들끼리, 기회만 만들면 일주일에 몇번이라도 파티를 즐길 수 있다는 말에 기대감을 잔뜩 품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파티라고 초대 받아서 갔더니 음악은 크게 잘 틀어져 있는데 그 외의 건 정작 아무것도 발견 할 수 없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술은 BYO랜다. BYO는 bring your own alcohol의 약자로 원래 여기선 레스토랑을 가건, 파티를 가건 자신이 먹을 술은 자신이 항상 사서 들고다니는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자기 술 사와서 음악 틀어놓고 그러는 걸 파티라고 부른다. 이름만 거창하지. 그러다 간혹 음식이 나온다 싶으면 더치페이는 각오해야 된다. 초대받았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나도 실컷 맛있게 먹고 돈 달라고 하길래 그냥 얼떨결에 주고 다음부턴 꼭 free라고 써 있는 파티만 골라서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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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큐 파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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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들끼리도 웃지 못할 상황이 많이 발생되는데 나는 현재 6명이서 한 플랫(flat - 아파트같은곳인데 개인방은 따로 있고 부엌, 화장실 등은 공용임)을 쓰고 있다. 처음에 당황스러웠던 것이 요리기구는 공동으로 쓸 줄 알았는데 개별로 하나씩 다 준비해야 되었던 것이랑(결론적으로 집에 냄비만 6개, 후라이팬만 6개다), 심지어 냉장고안에도 개인칸이 다 나눠놨던 것이다.(냉장고가 아무리 텅텅 비어도 내 칸이 꽉 차면 더이상 못 넣는다) 이런것뿐만 아니라 여기는 집전체가 카펫이 깔려 있으니 신발을 신고 다니는 건 이해가 되는데 애들이 가끔 신발을 안 신고 돌아다니다가 바로 자러간다. 발바닥이 까만데도 말이다. 두루마기 휴지는 '토일렛페이퍼' 그러면서 화장실에서만 쓰라고 하면서 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둔한지 이해가 안된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으니 서로의 습관이 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나는 이 나라로 온 입장이고, 여기에서는 나는 이방인일 따름이다. 조금 자신과 맞지 않아도 본인에게 피해가 되는 것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주고, 정 불편하다 싶으면 대화하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전에 처음부터 얘기를 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컬처'의 차이라면서 그냥그냥 넘어가다 보면 그 조그마한 차이가 큰 차별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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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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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하면 안 그런 사람도 물론 많겠지만, 특히 순수한 호주인은 따지고 보면 본인들의 조상도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격인데도 불구하고, 오지인에 대한 우월주의가 강하게 남아있다. 미국보다도, 유럽보다도 백인우월주의가 강한곳이 이 나라라는 건데, 한국인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덤비면 상태는 악화되기 마련, 동양 특히 한국이라는 곳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자. 외국인은 논리를 상당히 중요시 생각하고, 모든 것이 논리에 맞다면 일단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 내 생활에, 내 모습에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런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 는 말도 있지 않던가. 차이를 느끼는 만큼 그 속에 동화되기도 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