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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수염차 VS 815콜라
<성공사례>
(광동제약) 옥수수 수염차
광동제약은 본래 의약품과 건강드링크 위주의 제작회사로 비타500을 출시하면서 경쟁기업 등을 당당히 물리치고 큰 매출을 올렸다. 그에 이어 현재에도 ‘옥수수 수염차’ 를 출시하여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2006년 7월에 출시하여 출시 6개월 만에 1,000만병을 판매한데 이어 작년 11월까지 누적판매 1억 5,000만병을 넘어섰다. 이런 성공을 이끌어 낸 광동제약의 전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미 비타500으로 한번 성공신화를 창조한 광동제약은 뒤를 이을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녹차를 시작으로 국내에 퍼지기 시작하는 ‘차’시장을 주목하였다. 이에 차 음료에 대한 소비자 need조사 결과 향후 차 음료 음용 의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소비자는 전체의 99%로 높은 구매 의사를 밝혔으며, 소비자의 차 음료 제품 구매 빈도도 월평균 10회로 25~34세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에 광동제약은 차 음료 시장으로 진입을 결정하고, 본격적인 제품개발과 판매전략을 세웠다.
이후 주변상황을 살펴본 결과 차 시장은 녹차에서 혼합차로 넘어가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이에 광동제약은 녹차의 떫은맛을 보완해주는 혼합차의 ‘구수함’과 ‘물과 같은’ 속성의 강점을 살려, 소비자 측면과 차 음료 시장 및 생수시장 환경 분석을 통해 국내 소비자의 입맛과 need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은 결과 ‘옥수수수염’이라는 전통 소재를 찾아내게 되었다.
‘옥수수수염’은 한방에서는 옥수수수염을 옥미수라고 하는데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이뇨 작용과 혈압을 떨어뜨리는 작용 및 담즙 분비를 촉진시키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신장이나 자궁 등에 무제가 있거나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 체내에 노폐물이 쌓여 몸이 붓는 것 으로 보는데 이때 옥수수 수염차를 마시면 부종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많은 소비자가 알고 있다는 것도 제품 개발에 긍정적인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옥수수수염이 지닌 기능성에 옥수수차의 구수한 맛까지 가미할 수만 있다면, 건강과 외모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 소비자를 만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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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차 음료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이어졌고, 확신은 자신감으로 바뀌어 일반 차 음료와 차별화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또한 마케팅부분에 있어서도 당시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차 음료들이 부각한 강점은 ‘다이어트’ ‘S’라인 ‘제로(0) 칼로리’ 등 체중조절에만 일관되어 있었다. 그와는 다르게 광동제약에서는 ‘광동옥수수수염차’만의 기능적 강점인 ‘부기 완화’를 소비자 need에 맞게 표현한 컨셉트 설정이 핵심 성공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이어트라는 포괄적 개념에서 ‘아름다운 얼굴선’이라는 구체적은 강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컨셉의 구현을 위해 지난해 말 인기리에 방영된 KBS 드라마 ‘황진이’의 타이틀을 광고에 활용해 주목을 끌기도 했으며, 현재는 인기연예인 김태희, 가수 보아를 섭외하여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광고의 메인에 여성의 미의 기준인 ‘고운 얼굴선’을 강조했고 이 전략이 20대 여성들에게 어필함으로써 차 음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추가로 사회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이라 하면 전체적인 매력적인 몸매를 표현하는 말로 ‘S’라인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광동옥수수수염차’라는 여성의 아름다운 턱선을 표현한 ‘V’라인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 V라인은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라 하여 소비자가 자사의 상품을 이용하도록 유혹하고 있으며, 최근 온라인상에서 크게 발전한 ‘UCC’를 이용 소비자가 스스로 상품을 찾아오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연계하여 ‘V라인 라이프’ ‘V’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어가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실패사례>
(범양식품) 815콜라
‘콜라독립 815’를 기억하시는지. 코카와 펩시에 맞서 토종 콜라를 일으켜 세우겠다며 범양식품이 내놓았던 브랜드다. 붉은 콜라캔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광고에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구호가 넘실댔었다. 그게 콜라독립 815의 애국 마케팅이었다.
지난 98년 '콜라독립'을 외치며 국산콜라를 생산해 한 때 콜라시장 점유율을 14%까지 끌어올린 곳. 그래서 코카콜라와 '맞짱'을 떴던 곳. 하지만 범양식품은 결국 파산했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코카콜라와 '맞짱' 떴던 곳...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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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양식품은 원래 지난 73년부터 영남과 충청권에서 코카콜라 생산과 판매를 담당했다. 이 회사는 코카콜라가 국내 진출 초기 반미 감정에 따른 소비자들의 반감을 줄이기 위해 국내 업체와 손을 잡은 '보틀링파트너'였다.
일반적으로 코카콜라가 해외 시장을 공략할 때는 범양식품처럼 현지 업체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다. 그 뒤 어느 정도 소비자들의 입맛을 길들이고 난 뒤에는 보틀링파트너에게 계약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하면서 결국 보틀링파트너를 인수한다.
이 같은 코카콜라의 영업 방식에 처음으로 반기를 든 것이 범양식품이다. 당시 코카콜라 보틀링파트너에는 범양식품 외에 두산음료 우성식품 호남식품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96년 국내 보틀러 3사가 한데 합쳐 한국코카콜라보틀링(주)를 세웠는데, 범양식품은 피인수를 거부하며 자체적으로 '815콜라' 생산에 나섰다.
그렇다면 범양식품은 왜 코카콜라의 인수 제의를 거절하고 험난한 '독립의 길'로 접어든 걸까. 우선 코카콜라의 인수가격이 문제였다. 20여 년간 코카콜라의 현지 파트너로 있으며 사실상 코카콜라의 국내시장 진입을 이끌었지만 이에 대한 보상보다는 오히려 터무니없이 낮은 인수 가격을 코카콜라가 내세웠다는 것이다.
범양식품이 인수 제의를 거절하자 코카콜라는 95년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범양식품이 이에 맞서 법원에 계약해지 취소 소송을 냈다. 법원이 범양식품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범양식품은 2년간 계약해지 유예기간을 갖게 됐다. 범양식품은 이 기간 동안 자체 생산계획을 세우고 '독립의 꿈'을 키우게 됐다. 무엇보다 탄탄한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 범양식품을 자체 생산의 길로 이끌었다. 이 회사는 73년부터 코카콜라 생산과 판매를 해오면서 대전·충청과 대구·경북권에 막강한 영업기반을 구축해 놓았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에서 자신감이 있었다. 콜라 생산비용을 낮춰 더 싼 가격에 거래처에 공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과거에는 코카콜라에 로열티를 주고 원액을 사서 제품을 공급했지만 자체 생산할 경우 로열티를 줄여 그만큼 공급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실제 초기 '815콜라' 출시 당시 국산콜라가 1.5리터 기준으로 1상자(12병) 당 1500~2000원 가량 값이 쌌다.
또 하나 우호적이었던 것은 국민 정서였다. 당시는 나라가 막 IMF를 통과하며 때 아닌 국산품 애용과 '금모으기 운동' 등 애국주의 마케팅이 강력한 호소력을 얻던 때였다.
코카콜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당시 27개에서 10개로 줄어든 지점 수도 14개로 늘어났다. 코카콜라와 결별하면서 그곳으로 옮긴 직원들도 하나둘 돌아왔다. 말 그대로 코카콜라와 당당히 싸워 맞서 '독립'을 이루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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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장은 냉혹했고 코카콜라의 벽은 높았다. 급속도로 팽창한 시장 점유율 상승은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위기의식을 느낀 외국 음료업체의 물량공세와 판촉행사 등이 이어지면서 범양식품의 '독립선언'은 차츰 한계에 부딪혔다.
이런 와중에 경영진의 판단 착오도 점유율 하락에 영향을 줬다. 99년 중반 14%대까지 점유율이 올라가자 경영진은 그 동안의 저가브랜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가 전략을 택했다. 99년 7월과 8월 2차례에 걸쳐 가격인상을 하면서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어느 정도 길들여졌다고 생각해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던 것이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맛'에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곧 소비자들 사이에서 "'815콜라'는 뭔가 1%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낳게 했다. 콜라를 생산할 때는 톡 쏘는 맛을 좌우하는 탄산가스량이 중요하다. 그러나 범양식품은 이를 고정시키지 못하고 계속 조정을 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맛의 변화를 불러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의 '애국 정서'도 차츰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시작 초기에는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해 덕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맛으로 승부를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범양식품이 주춤하는 사이 외국계 음료회사의 견제가 더욱 집중되면서 시장 점유율은 다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 2003년 10월 제품 판매를 담당했던 계열사에 부도가 나면서 급기야 범양식품도 연쇄부도를 맞았다. 99년 500억 원에 달했던 매출은 2003년 100억 원대로 줄어들었다. 콜라시장 점유율은 5% 아래로 주저앉았다.
콜라의 ‘독립’이 무산된 이유는, 그야말로 기본으로 돌아가서, 그 콜라의 ‘맛’에서 찾아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