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노트]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유
1990년대 초 알윈 영(Alwyn Young) MIT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비약적 경제 성장이 대부분 양적 성장이었으며, 생산성 향상을 통한 질적 성장이 미국보다 나을게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자존심이 잔뜩 상한 리콴유(李光耀) 수상의 지시로 싱가포르 통계청이 질적 성장이 더 크게 잡히도록 국민소득 계정을 전면 개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현재 미국의 노동 생산성을 100이라 할 때 일본은 78, 한국은 45라고 한다. 같은 양의 노동을 투입해도 우리나라의 최종 생산량이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 근로자들이 일하는 것을 가까이 접해 보면 그들이 우리나라 근로자들보다 딱히 더 우수하거나 더 열심히 일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암산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수퍼마켓 계산대의 판매원, 무뚝뚝한 학교 직원, 계좌 하나 개설하는 데 한참씩 걸리는 은행 창구 직원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지 의아하다.
이에 비해 서울 편의점 점원은 나보다도 암산이 빠르고, 우리 학과 사무실이나 은행 창구 여직원들은 훨씬 똑똑하고 상냥하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말단 직원들이 그다지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재들을 말단 자리에 계속 남겨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국에선 일단 능력이 확인되면 빠른 시간 내에 발탁되고 승진된다.
그러나 한국처럼 연공서열에 의존하거나 혈연, 지연, 학연 등 능력 이외의 요인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인적 자원의 재배치가 훨씬 더디게 되고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리더의 능력은 조직원 모두의 생산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말단 직원의 실수로 말미암은 손실은 지엽적인 수준에 그치지만, 상급자가 무능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면 여러 사람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승진 방식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연공서열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젊은 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을 나이가 차면 무조건 은퇴하게 하거나, 나이 어린 사람이 윗자리에 부임하면 자동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도 매우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다. 형평성과 안일한 획일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경륜이 풍부하고 존경받아야 할 분들을, 장유유서(長幼有序)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소홀히 대접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존칭을 붙이지 않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미국이 웃어른을 제대로 모시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존경심을 표현하는 풍습이 다를 뿐이다. 능력과 인품을 갖춘 분들은 형식적인 예의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고, 회사나 대학에서도 최대한 오래 모시려 노력한다. 젊은이들도 이런 분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투영하며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