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눈팅만 하거나 댓글 가끔 달았던 지나가는 의대생입니다. Shelter in place order가 나온 후 평소에 deadline-oriented 였던 저는 해야 하는 공부는 있는데 자꾸 딴짓만 하게 되네요. 이 게시판을 보면 의대 지망생 high school senior의 학교 선택에 대한 고민, MD vs DO 혹은 붙은 MD 학교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 career changer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네요. 올라온 글들 중에 살짝 불편한 내용은 대학교나 의대 서열 줄 세우기였어요. 저도 과거에 ambitious한 hardcore pre-med로서 괜한 자존심에 마음속으로 혹은 익명이 보장된 이런 게시판 서열 싸움에 댓글을 달아서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의대 들어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 시간 낭비 같아요.
Step 1이 P/F로 바뀌어서 미래에도 '~이럴 것이다'라고 확신을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미래 의료인에게는 미국은 참 좋은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때 본인이 목표로 삼았던 대학교에 불합격했지만 대학교 때 꾸준히 학점 유지하고 연구/봉사/EC를 열심히 챙겨놓은 친구들은 명문대 의대에 진학하고, 상위권 의대에 가지 못했지만 step1 고득점 받고, 연구 열심히 한 의대생도 top hospital/top specialty에 매칭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Harvard undergrad이라도 GPA 관리를 잘 못하고, 게으르게 학교생활을 보낸 학생은 의대 진학에 실패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지금 본인이 당장 명문대 학부학생/명문 의대생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없고, '거만함'은 아무리 AMCAS (미국의대 지원서)나 MMI interview 때 숨길 수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 본인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제 거만함, 자존감에 취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요.
이제 제 지난 high school senior -> 3년 반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학교/의대 이름이나 했던 활동들을 자세히 적으면 제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어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제 고등학교는 AP class가 별로 없는 캘리 어딘가의 조그만 사립학교였습니다. 올림피아드 team, debate team 같은 대외활동들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제 스스로 EC를 찾아야 했었습니다. GPA는 학교 역사상 최고 득점의 GPA (weighted AP/honors 수업들을 저만큼 들은 학생들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SAT 1과 SAT 2도 나름 고득점이었지만 EC가 너무 뻔해서 그런지 지원한 몇몇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rejection 혹은 waitlist 되었어요ㅠㅠ 다행히 GPA, SAT가 높고 캘리 출신이라 지원한 UC 학교들은 단순히 합격한 것이 아니라 Regents scholarship finalist (berkeley, ucla 포함)로 offer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비리그는 아니지만 US news ranking으로 10위-20위 사이의 premed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3 private schools에 합격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감사한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시니어 4~5월은 밤마다 울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에는 UC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서 버클리와 UCLA regents offer는 너무 좋았지만 학교들이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살짝 후회합니다...) 아이비리그 waitlist 걸려서 열심히 appeal letter를 써봤지만 아무런 답장은 안 왔습니다. 결국엔 premed로 유명한 준 아이비리그급의 학교를 선택했어요.
대학교 동기들에게 비밀이지만 1학년 때만 하더라도 제 학교를 낮춰 평가했고, 제가 ED로 썼다가 결국에 떨어진 아이비리그 학교 중 하나에 transfer 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제 목표는 'if I don't end up with 4.0 in the first semester, I will transfer to X school'였습니다. 이미 1학기 때부터 친해진 교수님들 몇 분이 계셨고, special research program에 들어가 있었기에 좋은 GPA를 받으면 굳이 transfer 하지 않더라도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로 아이비리그 의대를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하에 생각했던 결정이었습니다. 1학년 1학기 때 4.0을 받아서 결국 transfer 시도를 안 했습니다... 학교가 GPA inflation보다는 deflation으로 유명한데, 4.0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compassionate professors, advisors, 그리고 같이 chem 수업들을 들었던 동기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professor office hour에 찾아가서 여쭤볼 수 있었고, 주말엔 학교 academic center에서 운영하는 small problem-solving group에 들어가서 시험이 다가오지 않아도 매주 주말에 최소 chem 2시간, calc 2시간 공부를 했었죠. Special research program 덕에 2학년 때는 의대 소속 랩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Clinical science가 아닌 basic science 중 한 분야인 genomic 분야의 연구여서 똑같은 프로젝트에 제 2년 반의 청춘을 희생시켰습니다 (주니어 전, 시니어 전 summer 때도 학교 fellowship 돈 받으면서 랩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논문은 1학년 때 했던 program에서 운 좋아서 나온 거 하나 빼곤 의대 지원 전에 나온 건 없었습니다ㅠㅠ 주위 premed 친구들 보면 clinical research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논문이 잘 나오더라고요... 저희 학교는 biology latin honors (숨마쿰 라우데, 마그나 쿰 라우데 등등)으로 졸업하려면 clinical research는 안 쳐주고, basic science lab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의 publication 대해 배가 조금 덜 아팠어요ㅎㅎ
1학년 때 학점을 열심히 관리하고, research program을 통해서 bio department 교수님들과 친해져서 2학년 때 오히려 교수님께서 TA 하고 싶지 않냐고 여쭤보셔서 Bio TA로 2년간 일했습니다. Intro bio의 경우 lecture TA들은 약 12명 정도로, 특별한 application process 없이 교수님이 그 전년도 수업 성적 top14에게 연락을 보내셔서 안 하겠다는 친구 2명 빼고 다 TA를 하게 되었습니다. Co-TA들끼리 서로 친해져서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데 다들 의대 잘 갔어요ㅎㅎ 아직 gap year 중인 친구 몇 명 빼곤 나머지는 penn perelman, hopkins, weill cornell, washu, vanderbilt, case western 의대에 gap year 없이 바로 갔습니다. 1학년 때는 학점 관리에 몰두했지만 2학년 때부터는 서서히 다른 활동들 (Club, volunteering, research, shadowing)에 시간을 조금 더 썼습니다. 저희 학교의 장점 중 하나인 shadowing program 수업 덕에 1학기 동안 응급실 fellow/resident shadowing 할 수 있었고요, 원래 일하는 랩과 별개로 응급실에서 환자 차트 screening하고 clinical study에 참여할 수 있는 환자들을 recruit하는 research associate로 학기 중에 일했었어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그 외 Physics TA, 학교 동아리를 통해 간 해외 의료봉사, 방학마다 한국에서 의료봉사 등등 해왔습니다. MCAT은 junior year 때 5월 학기 끝나고 6월 초에 봐서 top20 의대 median 정도 나왔어요 (nyu median에 비해서는 점수가 조금 부족하죠...아무래도 gpa가 절 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Bio 전공 외 또 다른 non-science minor도 college of arts and sciences의 liberal arts requirement 덕에 저절로 취득하고, 제 premed 친구들과 같이 한 학기 일찍 조기졸업을 했어요.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GPA는 4.0/4.0 (science와 non-science GPA를 나눌 필요X), summa cum laude로 졸업을 해서 지금은 감히 제가 dream school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의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5년 전의 저에게 돌아가 울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한국인으로서 대학교 명성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 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국엔 본인에게 맞는 학교에 들어가,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mentor (교수님, 연구실 랩 대학원생 분들 혹은 post-doc 멘토님, shadowing 때 만난 의대 관계자분들)를 만났던 것이 현재의 저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가 목표로 했던 아이비리그에 들어가서 학구열에 치이고, 동기들 간의 competition에 치여 의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의대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참된 의료인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참 멀고 어두운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늘 겸손하자'라는 마음도 가끔 잊고 자만감과 거만함에 남을 평가하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네요. 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학교 줄 세우기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fellow 한국인 분들께 진심 어린 조언으로 응원해 주세요~
*답글창을 보고 뭔일인가 했더니 저랑 똑같은 닉네임으로 게시글을 올리신 분이 있군요... 전 평소에 댓글만 아주 가끔 달고, 게시판에 글을 올린 적은 없습니다. 윗글에서 말했듯이 다들 싸우시지 마시고, COVID-19 shelter in place order 때문에 시간적으로 여유로울 수도 있으나 정말로 의료인/의대 선배로서 미래 후배, co-worker들에게 좋은 조언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