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후 학부 5년, Post-Bac 1년, 의대 4년, 레지던시 5년 도합 15년 걸렸습니다. 19살때 의대가기로 마음먹었는데 트레이닝이 다 끝나고 보니 33살이네요. 시원섭섭합니다. 더이상 레지던트가 아니라는 후련함과 설렘도 있지만, 수술실에서 더 이상 환자 맞은편에 어텐딩이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도 솔직히 많습니다.
학부때 생각했던 의대는 많이 달랐고, 의대생때 생각했던 레지던시는 또 많이 달랐습니다. 레지던시때 생각한 프렉티스는 또 많이 다르겠죠. 의대시작할때 언제 끝날까 생각도 많이 했는데, 어느새 끝나긴 하더군요. 열심히 공부하고 계시는 의대생분들과 학부생분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언젠가는 끝날거에요.
이제 갓 프렉티스 시작할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학부생분들에게 부탁을 드리자면, 의대에 가는 목적이 단순히 의대를 가는것이 아닌 훌륭한 의사를 목표로 하기를 감히 바래봅니다. 의대에 가는 목적이 좋은 페이, 명예, 안락한 생활등등 금전적인 것에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이유가 될수도 있고 비난받아야 할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랭킹 높은 학교를 가는것보다 수천배 어렵습니다. 레지던시의 5년은 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단 한순간의 실수나 미숙함, 자만감이 환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준 시간이었습니다. 환자들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수술이 필요한지 아닌지 결정하고, 그 수술을 잘 해내고, 그리고 그 환자를 만족스럽게 퇴원하게 하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평생 노력해야겠죠.
고우해커스에서 전반적으로 느끼는점은 많은 의대생과 학부생들이 랭킹에 비정상적으로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의대생 학부생을 불문하고 "전 중위권 의대를 다니지만..." 혹은 "전 탑20 학교 다니는데.." 등등의 문구를 보는데, 정작 레지던시 시작하면서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 환자들은 그런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랭킹 높은 학교를 가는것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그러지 않다고 해서 기죽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환자들에게 "전 top 10 XX의대에 다닌 아무개 의사입니다" 라고 말해보시면, "아 그래요?" 하고 그만입니다. 미국에 있는 의대에 왔다는것 자체가 참 대단한 것이라 생각해요. 어느 의대를 다녀도 훌륭한 의사가 될수 있습니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들과 그 outcome 이 판단하는 것이지 학교이름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이 절실하게 원하는 일이라면 포기하지 마세요. 원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의사가 될수 있다고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시도조차 안해보고 포기하는것은 말리고 싶네요. 정말 의대가길 원한다면 1-2년 죽기로 노력해보고,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한 다음에 다시 한번 시도하면 됩니다.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는 마세요. 시도조차 하지않으면 실패한 것보다 후회가 더 클것 같습니다.
7월말에 board exam이 있어서 숨고를 틈도 없이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요. 시험이 끝나면 프렉티스 시작할때 까지 약 한달간 푹 쉴까 합니다. 와이프와 영화도 보러가고, 딸아이와 자전거도 타고, 하고싶은일이 많습니다.
이곳또한 종종 들러서 가끔 후기를 남길까 합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