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길에 올랐을때의 1년 복학,
군복무,
큰 수술을 거친뒤의 1년 휴학,
전공변경,
학-석사 통합과정,
모두 거치니 서른이 되기전에 겨우 졸업을 했네요.
먼 길을 뛰어오다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더이상 알수가 없어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중입니다.
전 소위말하는 공부꽤나 하는 학생입니다. (졸업을 했으니 '이였다'가 적합 하겠군요)
하지만 똑똑하거나 재능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 공부란 (적어도 경제-수학 복수전공자로써의 공부란)
마치 주둥이가 작은 독에 수전증을 지닌 사람이 물을 붓는, 그런 행위 였습니다.
낮은 효율을 노력으로 충당 했고, 그만큼 남들과는 다른 단위의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나쁜 전략은 아닙니다. 다만 외로운때가 많았던 만큼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많은 외로움을 지불하고 나서 중위권 아이비리그에 진학했습니다.
지불한 댓가에 적합한 포상이였는지는 아직 판단이 잘 안됩니다.
많은걸 잃었고, 많은 상처를 얻었기에, 아직도 치유중이니까요.
더 좋은대학에 갔었더라도 비슷한 마음이였을 겁니다.
(허울좋은 타이틀은 그것 뿐입니다. 낮아진 자존감과 오랜기간 억눌렸던 감정들에 대한 치료는 될 수 없어요.
추상적이고도 허탈한 결과를 미래의 보상으로 삼고 나를 해치는 라이프 스타일을 살고있다면,
너무 늦기전에 자신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그저 그런 머리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아주 평범한건 아닙니다.
저에게 남다른 재능은 두개입니다. 언어, 그리고 음악.
후자는 비교적 늦게 알아챘고, 늦게 꽃을 피웠기에 한켠으로 치워두었지만
전자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캐나다에 유학을 가
'영어'라는 생소하고도 (원어로써) 진했던 언어를 만나면서 일찍이 발전했습니다.
온타리오 소재 공립 중학교에 다니며
주중 하루의 반나절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던 영단어의 폭풍 한 가운데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6개월이 지나니 어느순간 들렸고, 1년이 지나니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1년 반이 지나니 봐줄만한 실력이 되더군요.
미국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고 미국에 유학을 다시 간건 고1때입니다.
도합 10년간의 유학생활끝에 '원어로써의 영어'의 극한에 수렴하는 기분입니다.
영어를 쓰거나 말할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닐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더이상 없더군요.
혹시나 하는 불안감과 자괴감에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같았습니다.
독설을 서슴없이 하는 친구가 '넌 영어만큼은 괜찮다' 라고 했을때 술을먹다 울컥한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 한국어와 영어는 서로 연동되지 않는 두개의 탑과 같은 존재들 입니다.
영어가 쓰이는 공간에선 영어로 이해하고 영어로 사고하기에 사고방식과 성격또한 바뀌는듯합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쉽게 이해되는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건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고등-대학-대학원 과정을 미국에서 거쳤기에 비교적 고등언어와 사고를 영어권에서 습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 비교적 뛰어난 영역이 다른 두 언어이기도 합니다.
오늘같이 흐릿한 날씨에 누군가와 술한잔 하며 별볼일 없는 이야기를 할땐 한국어가 편하지만,
학창시절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과 그로인한 심경변화를 조심스럽고 세밀하게 표현하고 싶을땐 영어가 좋습니다.
어떻게 보면 국적, 거주기간, 언어 모두 반으로 갈린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두 세상에 속할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네요.
그리고 제 영어는 근 몇년간 '편안함'과 '즉발성' 측면에서 더이상 모국어에 근접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의) 한계점인듯 합니다.
듣는 사람은 쉬 구별하지 못하겠지만, 전 영어권 시민으로써의 제 모습을 유지하기위해
한국어를 쓸때보다 더 많은 시간당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로인해 지칩니다.
전화통화는 아직도 긴장될때가 많네요 ㅎ
남다르다고 생각했던 저의 '언어적 소질'이 여기가 끝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입니다.
많은 생각이 드는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