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 | 제가 유학을 꿈꾸게된 학부 2학년시절부터 뺀질나게 접속하던 고해커스에 처음으로 글을 남기게 되네요. 글이나 댓글을 작성하진 않았지만 여러 많은 글 보며 많은 도움되는 정보 (실제와는 다른 정보도 많았지만) 얻어가며 항상 빚을 졌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글이 어떤 한 분에게라도 작은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네요. 혹시나 도움될까 제 이야기 주저리 풀어보려 하니 왠만한 분들은 뒤로가기 누르시면 되겠습니다. (한줄 ver. 공고출신 학점 1.89맞던 놈) 누구나와 같이 인문계고 가서 누구나와 같이 대학가서 공무원준비하는게 막연하게 두려웠던 중3시절, 그렇게 할바에야 고등학교 마치고 얼른 취업하자!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또 어릴때부터 컴퓨터나 오락기 만지는걸 좋아했기 때문에 전자분야 기술직으로 나아가고자 구미전자공고를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실업계고에서 가르치는 전자회로나 전기회로에는 너무나 실용적인것에만 집중한 탓에, 원리에 대해 심도있게 배우고 대화를 나누기엔 적합하지가 않았습니다. 또한, 실업계고를 졸업한 후에 취업하는 곳들도, 기술직이라기보다는 기능직에 가까웠기 때문에 또 제 적성에 잘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을 하고싶었지, 누가되도 대체될수 있는 부품같은 사람처럼 느끼게 될 것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께서도 대학가는것을 허락하셔서, 제가 갈수있는 최고의 학교였던 경북대학교 전자공학부로 진학하였습니다. (당시 수능성적 4/7/3/5/5/6, 국/수(가)/영/과탐) 대학교라는곳엘 와보니, 수학 과학적 기초지식이 너무나 부족하여, 첫학기에 1.89라는 학점과 함께 아팠던 사랑과 함께 떠나보내기 위해 한학기만에 군입대를 결심했습니다. 또한 공부나 책욕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터라, 군대에서 공고에서 배우지못한 풍산자로 고등수학 수학2부터 기하와 벡터까지를 공부하고 워드마스터 영단어책을 읽고 따로 프린트하여 휴가때도 보려고 건빵주머니에 넣어두고 꺼내보았습니다. 육군통신병 만기전역 후, 스무살이 넘어 그제야 공부에 꿈을 꾸기 시작한 후, 재수하여 연세대나 한양대를 노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집안형편과 저의 능력과 드는 시간을 고려하여 1학년 2학기로 복학을 결정하고 나니, 목표는 자연스레 졸업하자!(졸업가능한 학점(평점 2.0)은 만들자)가 되었고, 매학기마다 목표를 정하기로 였습니다. 복학학기엔 3.0을 못넘으면 짜장면집 배달부로 들어간다. (부모님께서 짜장면집을 하십니다.) 하며 22학점 8과목을 넣었죠.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지라, 과생활도 열심히 해보고 싶어 새벽4시까지 술먹고 기숙사에 들어와 실험보고서 쓰고 그대로 날새고 학교가던 기억이 납니다. 공부 열심히 해보니 남들보다 느리긴 해도 (친구들 적분 한문제 5분만에 풀때 한시간 걸림...) 흥미가 영 없진 않았던터라, 또 내가 노래하고 운동해서, 혹은 게임해서 돈 벌 능력이 안되는걸 너무나 잘 알았던터라, 또 고등학교때와 마찬가지로, 대학교 마치고 일한다 한들 전공을 살리기는 어려운 터라, 대학원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미국대학(UTDallas)와 복수학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갔던 선배들이 열심히 하여 멋진 환경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학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와중에 내 학점은 3.초반대라, 또우리집 형편에 유학이라니 꿈만 꾸며 난 왜이렇게 바보지 내가 꿈꿔도 되는 일인가 잠못이루며 고민했었네요. 그와중에 계절학기 교양과목으로 처음 A+을 따보고 그게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어요. 아버지 생신때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설명드리며 도전해보아도 되겠냐 여쭈었을때, 대학에 가는것을 응원해주셨듯이 쾌히 응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복수학위 파견조건 (평점 3.5/4.3이상, 영어 TOEFL 80점 이상)을 갖추었어야 했었죠. 그때 전 평점 3.42, 영어공부는 고등학교때 이후로 전무했었고요. 그래도 해보고 안되도 손해는 없겠다싶어, 그 때 정말 처음으로 친구들이랑 술도 안마시고 열심히 공부해봤어요. 영어공부가 쉽지 않아서요. 토플시험 처음으로 치던날, 듣기시험이 끝나고 말하기시험을 치기 전 쉬는시간에, 화장실 대변기에서 단어 조금이라도 더 기억해내려고 안간힘쓰고 있을때, 고등학생 두명이 쉬싸며 "야 오늘 듣기 개쉽더라 듣다가 잠들뻔," 저기... 저는 너무 안들려서 사실 잠들뻔했거든요. 결국 말하기 시험때도 문제당 한마디씩밖에 못하고, 유학 포기해야겠다 싶었지만 또 점수가 67점(목표는 80점/120점만점)이 나와 방학때 정말 열심히 해서 점수 맞추자! 해서 정말 자는시간 빼곤 공부만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 수능때 보통 고등학생들은 이런걸 느끼는구나. 결국 4번의 시험, 6개월간의 싸움 끝에 토플 81점을 받고 학점도 파견기준을 충족시킨후에, 너무나 기뻐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럼에도 역시 종이공부는 진짜공부가 아니었는지, 파견인터뷰 당시 외국인 교직원분께서는 너는 다른 적격후보가 있었다면 바로 탈락이었을거라 했죠. 그 학기에 지원자는 저뿐이었거든요. 그렇게 파견합격이 나고 토플이 되고 학점이 충족되고 나니, 돈이 문제더군요. 집에서 학비는 물론이거니와 학생비자 따는데 드는 재정증명(약 5천만원)을 하는것도 우리가족에게는 쉽지않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축구하다 전방십자인대가 찢어져 수술받고, 어머니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아버지는 작은 교통사고로 허벅지쪽에 사고후유증이 있으셨던 채로 우리가족중 두명이 환자복을 입고 모여 제 유학을 위해 가족회의를 하던 날이 참 급박했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슬펐어요. 혹시모를 미래를 위해 학점을 최대한 높여두기로 하고, 모든 과목을 재이수로 채워 한학기 다니는동안, 교수님 연구실에서 근로장학생도 하고 학부생 튜터링, 학부생 TA, 외국인 교환학생 도우미(버디), 수학과외 2개 했던 그 학기가 가장 바빴습니다. 그러면서 18학점 들으며 한달 195만원씩 벌어 통장에 꼬박꼬박 모았습니다. 그렇게 제 통장에 1200만원과 학교 지원금 1500만원, 또 부모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비자 심사를 받고 유학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 미국에서의 2년동안도 참 많은 일이 있었고 힘든것도 즐거운것도 (대부분은 힘들었던 기억뿐이지만) 많았지만, 고등학교때와 경북대때만큼 스펙타클하진 않았기에, 또 이 커뮤니티에 학부유학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들 아시고 또 들으셨을 것이기에,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드리고 무탈히 다행히 이렇게 2년간의 미국학부생활을 마쳐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미국에서의 첫학기 Advanced Engineering Math (공학수학) 과목 수강중에 옆자리 학생과의 대화 친구: How are you doing? 나: It's good. Actually, I'm really first time to be abroad. 친구: So far so good? 나: Sofa? Is it good in your home? You mean, really sofa? 친구: ............ 얼마나 제가 모자라고 또 그로인해 미국생활이 비루했을지는 다들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지만, 직장과 학업 사이에서 제가 또 다시 학생이 되기를 택해 부모님께 걱정과 부담만 안겨드리는 것이 한없이 죄송하지만, 또 공부를 해보니 안되는것이 아니라 한번만 더 도전해보려 합니다. 이 글이 혹시나 고등학교 출신때문에 공부하는 것을, 영어때문에 유학하는 것을, 돈때문에 대학가는 것을 고민하는 어떤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도움이 된다면 저는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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