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드 金‘ 수학영재 이승협군의 선택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수학영재가 대학의 강의 및 설비수준과 뒤떨어진 실험기자재 등에 실망해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로 발길을 돌렸다.
올해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이승협(李昇浹·19)군은 서울과학고 1·2학년 때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연속으로 은·금메달을 딴 국가대표급 수학 영재. 이군은 금메달을 딸 때만 해도 국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해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할 때가 되자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 주변 선배들도 모두 뜯어 말렸다. 이군의 어머니 박명옥씨는 “한국 사회에서 수학을 전공할 경우 본인의 장래가 걱정돼 의대 진학을 권했다”고 말했다.
이군은 지난해 10월 서울대 의대에 수시로 합격했다. 그러나 수학자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못해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웬만하면 부모님의 뜻대로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올해 대학을 다니면서 실망감이 커졌다.
“대학 실험 실습시간에 쓰는 기자재가 과학고만도 못했습니다. 또 MIT에서는 1학년 기초실험수업에서는 학생 13명에 교수 1명, 조교 3명이 함께 수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일반화학실험 수업의 경우는 한반에 학생이 40명인데 교수는 없고 조교가 전담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군에게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학에서 방치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능있는 학생들도 막상 졸업할 때는 다들 고만고만하게 평준화돼 나간다는 주변 얘기에 어떻게 진로를 설정해야 할지 몰라 고민을 심하게 했습니다.”
이군은 자신을 비롯, 한국의 수학영재들이 대학에서 사장된다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 보니, 수능성적 380점 맞고 들어온 학생이나 국제 경시대회 입상자나 배우는 게 똑같아요. 과학고 출신들은 대학 1~2학년 때 공부 안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만, 결국 졸업할 때는 다들 비슷한 수준이 돼 버립니다.”
이군이 고민을 거듭하던 이달 초에 미국의 MIT, 프린스턴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등 3개 명문대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이군은 명문대를 나온 의사로서 안락한 삶을 살 것인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수학자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MIT로 길을 정했다.
어머니 박씨도 수학자가 되려는 아들의 ‘뷰티플 마인드’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아들이 수학자로 성공할 수만 있다면 유학을 보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며 “한국에서 아이의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게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 강요식(姜堯植) 교사는 “우리 대학교육 체계가 이군 같은 학생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Fields Medal)을 타는 게 꿈이라는 이군은 “수학 이론을 바탕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이덕훈 기자 w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