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쓰는 부모, 영어쓰는 자녀''…이민자 가정의 언어장벽 |
[세계일보 2006-04-09] |
미국의 이민자 가정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모국어와 영어가 뒤섞여 사용된다. 특히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온 이민 1세대 부모와 미국에서 태어난 2세 또는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1.5세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부모의 교육 정도 등에 따라 다양하게 바뀐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영어에 약하기 때문에 한국계 이민 가정에서는 한국어와 영어가 혼용되기 마련이다. 가장 흔한 사례는 부모가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자녀는 영어로 말하는 형태이다. 부모는 오랜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영어를 알아듣고, 자녀들은 부모가 한국어를 쓰기에 한국말을 잘 하지는 못해도 알아 듣기는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영어를 빨리 배우는 반면 어른들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은행 등 주요 업무를 처리할 때 통역을 위해 아이들을 대동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관공서 등에서 부모를 위해 통역하고 있는 광경이 쉽게 목격된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한국인 이민자들은 이주 초창기 때는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자신들과 달리 자녀들이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게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국말을 하지 못해 지난 1960, 70년대에 이민 온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대화가 단절된 사례가 수없이 많다.
기자는 최근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친척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친척 부부는 미용용품 가게를 운영한다. 그들은 장사에 필요한 영어를 쓸 줄 알지만 자녀들과 영어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정도의 실력은 없다. 하지만 가게문을 늦게까지 열어야 하기에 부부가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을 장기간 계속해 왔다. 그 집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오면 형제들끼리 집에서도 영어만을 쓰며 지냈고, 언제부터인가 학교생활이나 진로 문제 등 중요한 일을 부모와 함께 상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와 자식간에 깊이 있는 대화가 없다 보니 관계가 소원해질 수 밖에 없으며 그 점이 이민생활의 가장 큰 고통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이민자들은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야겠다는 필요성을 뒤늦게 절감하게 된다. 또한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알면 취업 등에 크게 도움이 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80년대 이후 미국에 이민 온 한국 사람들은 이제 기를 쓰고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DC 일원에 있는 100여개가 넘는 한인교회들은 토요일에 초·중·고교생을 위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커뮤니티 칼리지 등 공공시설을 사용하는 수백명 규모의 한글학교도 있다. 이곳에서는 귀국반, 미주반 등으로 나눠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한다. 귀국반에서는 상사주재원, 외교관 등의 자녀로 일정기간 미국에 체류하다 한국에 돌아갈 학생들이 한국의 교과서를 이용해 공부하고 있다. 미주반은 대개 교포 자녀들로 구성돼 한글 구사능력 신장에 초점을 맞춰 운영되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