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홍콩에 거주한 덕에 한국 귀국 후에도 좋은 기억들을 갖고 있었고, 추후 다시 홍콩에서 살아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전세계 많은 나라들 중 홍콩으로 대학교 연계 현장실습을 가고자 지원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여 6개월간 홍콩에서 혼자 인턴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억들을 안고 홍콩으로 출발했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고 제 환상은 무자비하게 깨져버렸습니다. 눈물 없이는 접할 수 없는 홍콩에서의 6개월 짠내 생활기 한번 읽어보실까요?
홍콩은 중국의 관문으로 통하는 국제금융/국제무역의 중심지로서 많은 유수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고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존중되는 등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학점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중화권으로 인턴십을 가야 됐기에, 중국 본토보다는 이러한 역동적인 국제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이 저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싱가포르와 홍콩을 고려했으나, 옛 추억을 다시 느껴보고자 홍콩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하였습니다. 또한 홍콩-마카오-대만-대륙의 관계 및 홍콩의 포지셔닝 등을 흥미롭게 공부해왔던 만큼 홍콩에서의 인턴십은 저에게 최적의 선택지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7월 초에 인턴십 합격 통지를 받고 1주일 후 회사의 인턴 담당자였던 과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8월 1일부터 근무를 시작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참고로 전임 인턴은 제가 근무 시작하기 2주 전 귀국했기 때문에 메신저를 통해서만 간단히 안내를 받았을 뿐 제대로 된 인수인계는 받지 못했습니다. 인턴십 합격 통보일부터 근무 시작일까지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기 때문에 저렴한 항공권 구입도 어려웠고 한국에서 비자를 받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홍콩의 경우 한국인은 90일간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지만, 합법적인 인턴 신분으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취득이 필수적입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두 곳의 기업에서 각각 6개월씩, 즉 홍콩에서 1년간 체류 및 근무를 가능케 합니다. 한국에서 취득시 보통 3~5주가 걸리기 때문에 저는 과장님의 지시에 따라 홍콩에 입국 후 현지 이민국을 통해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을 했고 신청한 지 2주 후 수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수령했으면 3개월 안에 홍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비자를 활성화시켜야 됩니다. 비자 발급비는 무료이지만 비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를 갔다 와야 되고, 인근 지역인 마카오와 심천(선전)을 갔다오는 데도 적지 않은 비용이 요구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경비가 제일 적게 드는 심천을 지하철로 당일치기로 다녀왔지만, 심천에 입국하려면 중국 비자가 필요하기에 비용을 지불하고 도착비자를 발급받아서 다녀온 후 홍콩 비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비자가 활성화되었으니 이제 온라인상에서 홍콩ID카드 발급 예약을 하고 예약한 시간에 이민국에 가서 사진 촬영, 지문 인식 등 절차를 밟으면 종이로 된 임시 ID를 발급해 줍니다. 종이 ID에 기재된 날짜에 이민국에 가서 스마트ID카드를 발급받으면 홍콩에서의 주민등록증 준비 완료! 저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부터 ID카드 발급까지 1달도 안걸렸답니다. 홍콩에서 근무한다면 중국 본토 비자는 받아놓는 것이 좋습니다. 본인 선택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6개월 중국 복수비자를 받아서 정말 유용하게 활용했거든요~ 중국 비자는 여행사를 통해 편하게 받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저는 직접 비자 발급 받는 곳에 가서 오랜 기다림과 재방문 끝에 성공했습니다. Lo Wu 역에서 도착비자 혹은 완차이에서 다양한 비자를 받을 수 있고, Wan Chai 역에서는 China Resources Building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구비 서류는 비자 신청서, 여권용 증명사진 2매, 여권, 여권 사본, 홍콩ID카드, 홍콩ID카드 사본, 홍콩 비자 사본, 중국 왕복 항공권, 중국 숙소 예약 서류, 필기구, 현금 등이며 오래 기다려야 될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고 중국비자 발급비는 한국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답니다.
홍콩은 주택 임대료 세계 1위로 많은 홍콩 거주민들은 집 월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저 또한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하게 발품도 찾아보며 알아봤지만 6개월 동안 단기 거주 목적의 집은 정말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화장실 등 다른 시설은 아무것도 없이 싱글침대의 크기가 방의 크기인, 즉 머리가 벽에 닿고 발이 반대편 벽에 닿는 방 하나의 월세가 평균 60만원입니다. 책상, 화장실 등이 들어갈 정도의 작지만 괜찮은 방은 한화 월 100만원 이상입니다. 물론 발품 팔면서 찾다 보면 약간 저렴한 곳도 있을 것이고, 플랫이나 방을 쉐어하면 혼자 사는 것보다는 저렴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월세의 3배 이상 되면서 크기는 한국의 웬만한 방보다 작습니다. 뿐만 아니라 홍콩에서는 보통 중개 수수료로 월세의 50~100%, 보증금으로 월세의 2배를 지불해야 되고 1년 이상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홀로 6개월 근무할 인턴으로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기에, 저는 조식이 포함되고 수수료 및 보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한인 게스트하우스의 침대, 책상이 간신히 들어가는 단칸방을 끈질긴 협상 끝에 6개월 동안 월세 100만원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홍콩에 대해 소개해보자면 홍콩은 국제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본인의 마음가짐/행동에 따라 충분히 국제적인 인맥을 넓힐 수 있습니다. 참고로 홍콩에는 광동어/영어/만다린이 통용되지만 만다린/영어를 못하고 광동어만 하는 홍콩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광동어는 구어/문어체가 완전히 다르고, 홍콩은 본토와 달리 번체자를 사용합니다. 또한 홍콩 고유의 한자나 언어가 있어서 만다린을 잘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하거나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는 글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본인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언어 환경 속에서 영어/중국어 실력 모두 자연스럽게 향상될 확률은 적을 것입니다. 홍콩은 제주도보다 작지만 지하철, 배, 미니버스, 이층버스, 트램, 택시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고 모두 정말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치안은 수년 전 인터폴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고 지정했을 정도로 좋은 편이니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세계에서 주택 가격이 제일 비싸기 때문에 집 구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가격을 보여주는 월세 때문에 사람들은 혼자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초소화 집이라도 사고 싶어합니다. 홍콩 저가 시장의 물가는 한국보다 1.7배 이상 비싼 편이며 월세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없다면 인턴을 포기해야 될 정도로 돈이 많이 듭니다. 홍콩에는 한국의 분식집처럼 4~6천원 하는 음식이 거의 없고 아무리 저렴해도 한화 8천원이 넘어가며 10% 부가세도 붙습니다. 물, 피클 등도 별도로 비용을 지불해야 되는 경우도 많구요. 한국음식의 경우에도 된장찌개가 한화 12,000원 이상으로 매우 비싸기 때문에 저는 주로 서브웨이, 맥도날드, 중국식 국수, 볶음밥, 일본식 패스트푸드 등 저렴한 음식 위주로 먹었습니다.
홍콩에는 정말 맛있는, 다양한 세계 음식들이 많은데 저는 매일 배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팠습니다.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인턴 월급이 US$300, 즉 한화로 30만원이었는데, 월세는 100만원으로 이미 70만원 적자였기 때문에 식비, 교통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부모님이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셔야 했고, 라면이나 패스트푸드를 주 4회 이상 먹을 정도로 돈을 아꼈는데도 6개월 인턴기간 동안 한국에서 천만원을 추가로 보내야 했습니다.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는 직원들의 개인주의가 심해서 점심도 따로 먹고 회식도 없었기 때문에 6개월 내내 상사들이 저에게 점심을 사준 횟수는 총 2회밖에 없었고 저는 매일 맛있는건 정말 많은데 돈 때문에 먹지를 못하는 자괴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또한 유일한 인턴으로서 모든 직원들의 업무 지시에 응해야 했던 만큼 일이 굉장히 많았고, 대부분의 경우 다른 직원들은 6시에 퇴근하는데 저는 그들의 지시 업무를 하느라 혼자 사무실에 밤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어떤 상사분은 제가 툭하면 혼자 야근을 하니까 "왜 퇴근 안해요? 야근하는거 좋아하는 것 같으니 번역할거 하나 더 줄게요" 이러면서 퇴근한 적도 있었습니다. 국제도시라는 홍콩의 지역 특성상 각종 행사들이 많아 주말에도 아침 6시에 출근하여 밤 12시에 퇴근했던 적도 많았답니다. 그리고 1월말에 인턴으로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집 계약기간은 2월 1일까지었는데 한국행 비행기는 2월 3일이었고 어차피 잠만 자는데 이틀 묵을 방을 고액을 지불하고 구하기가 곤란해서 퇴사 후에도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했을 오후 7시 이후에 회사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서 소파에서 쪽잠을 청한 후 다음날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인 오전 7시에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경험도 하고 공항에서 20시간 추위에 떨며 앉아서 노숙하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6개월 근무기간 중 첫 1개월 이후부터는 중간에 포기하고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습니다. 돈이 부족해서 배가 좀 고프고 감옥같은 집에 살지언정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따뜻하고 일도 재미있었다면 같이 열심히 알차게 시간을 보냈을텐데, 돈/사람/문화 모두 최악이어서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책임감과 끈기 하나로 6개월을 버텼고 어렸을 때는 환상의 도시였던 홍콩은 이제 저에게 돈 없이는 살기 힘든 최악의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1주일 이하의 단기 홍콩 여행은 어차피 돈을 쓰려고 가는 것이니 괜찮겠지만 장기간 홍콩에서 거주하거나 근무하려는 분들은 충분히 고민해보시길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