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너무 좋은 글이라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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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학교도 끝나고 직장을 잡고 방학도 되니까 심심해서 짬이 나는대로 인터넷 논객이 되어 보았다. 원래는 기삿거리가 나면 기사만 보고 댓글은 전혀 안 다는 눈팅족이었지만 인터넷에서 무엇이 일어나는 지 알기 위해 직접 발벗고 논객이 되어봤다. 여러 이름 있는 몇몇 커뮤니티에 회원도 되어 몇 글은 베스트도 보내고 해본 적이 있다. 지금은 물론 다 지웠지만, 내 사회적 비밀실험이었으니. 계정도 모두 지웠다.
내 논지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에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더라면 대한민국은 아마 살 곳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토론 벌이는 것이 한동안 즐거웠었다. 몇몇 토론에서는 내가 한 수 먹어 논리전에서 져 보기도 하고 어떤 데서는 내가 통쾌게 이긴 적도 있었다. 어차피 타인의 입장에서는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벌이는 허공 복싱경기밖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한 교훈을 얻긴 얻었다. 어차피 쓰레기통을 뒤져 봐도 쓰레기 밖에 안 나온다는 것을.
최근에는 정치와 시사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또 이제서야 내 정치사상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도 접속을 해 보았다. 물론 돌+아이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올려 놓고 한편으로는 아주 저급의 농담이나 패드립같은 거나 하며 잔인하게시리 낄낄거리고 앉아있는 추악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괜히 그 곳 사람들이 '벌레'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고 생각 했다. 물론 나도 남자로서 여성들에게 가져지게 되는 편견에도, 남자로서의 더 많은 사회적 무조건적 책임에--어디까지나 모든 사람은 한 구석에 불만이 가득하다고 가정해보자--나랑 다른 정치사상을 가진 자칭 깨시민이나 감성팔이들의 논점 흐리기 수법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정당한 토론의 문은 열어두었던 나였다.
현재 미국에 있는 까닭에 핑크코끼리 사건에 대해서는 조금 늦게 안 편이다. 이건 언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어디에선가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국가보안의 중대사--마침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보다 더 크게 다루고 있었다. 물론 늦게나마 피해자에게 명복을 바라고 그 범죄자 놈은 만인공노할 죄를 지었으므로 천벌을 받아도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는 와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지, 이번 건도, 모두가 마치 정치병에 걸린 듯이 원래는 경찰이 조사하고 끝낼 문제를 가지고 사람들은 정부를 욕하거나 옹호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토론의 쟁점이 산으로 갔다. 그게 또 품격이 있는 산이면 몰라도 하필이면 또 굉장히 더러운 쓰레기 산이다. 핑크코끼리의 경우에는 애초에 일베 회원이 코끼리 탈을 쓰고 가서 맞지 않는 상황에 상황판단을 못 하고 마초양성평등을 외쳐되니 발단이 된 것이었다.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같은 여성들은 그 피해자에 대한 극심한 동정과 일시적이나마 남성에 대한 불만이나 공포가 있었을 텐데 핑크코끼리가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아예 오수였다. 아직 정치 초보인 나조차도 남녀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인 것을 알고 있는데, 소위 애국보수(애국보수라고 부르기도 창피하다)여서 꼰대질 좀 해보고 싶던 사람이 그런 정치적 오수를 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무 여성들도 강남역에서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단결되어서 더 유치한 싸움에 기름을 끼얹었을 뿐이다. 그 시위에 있던 여성들도 당연히 잘 한 짓도 없다. 우선 성폭력이 무섭다고 해서 같이 '소심ㅈㅈ'같은 비열한 선동구나 외치면서 이에는 이 식으로 유아적으로 대응하고, 또 오로지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우르르 몰려가 사람들에게 민폐를 준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몰려간 명분도 맞지 않다. 물론 추모하러 간다고 포스트잇 붙이고 하는 등등은 이해가 백 번 가지만 추모도 정도껏 해야지 마치 그 피해자가 예수님인 마냥 집에 가서 차마 입에 담지도 못 할 말을 하며 '한남충이네 김치남'이네 이러고 있으니 보는 내가 조소를 금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조그마한 '일부'에서 시작된 급진적인 돌+I같은 사상은 마침내 대한민국을 양분시키고 만다. 아주 보기 좋은 꼴이다. 세월호에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을 만도 한데 얼마나 국민은 지치는 지를. 물론 현장에 나가지도 않고 그저 속으로 지지하고 있던 국민들도 포함이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인간은 오로지 남과 녀로 밖에 구성이 되어 있지 않는 만큼, 이 정도로 포괄적인 문제는 유례가 없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여성부 창립문제, 여성전용 논쟁이 일었을 때 국민의 품격이 높았을 판이다. 그것도, 이러한 저급한 싸움을 머리가 꽉 찬 20이 갓 넘은 무개념들이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찌 안 기대가 되겠는가.
이는 정부의 신속하지 못한 대응의 책임도 크다. 이렇게 문제가 방치되도록 한 정부 탓도 크다. 차라리 국정원이 대선 개입할 정도로의 잉여력이 남아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판이다. 혹시 정부가 국민을 우민화시키기 위해서 오히려 통합보다는 갈등을 은근슬쩍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소모적이고 본질적으로 저급한 논쟁을 누군가 부추겨도 그것을 놔두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그저 우리 정부가 무능한 것인지--이 때 쯤이면 중공의 인터넷검열에 대해 츤데레가 되기도 한다--안 그래도 박근혜 정부에 불만이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쏟아져 나오는 지금 물타기 시도를 하려는 건 아닌지. 나는 세월호 사건 때서부터 알아봤지만 미국이나 일본,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미개하다고 까는 중국처럼 성장 대 복지, 이민 문제, 국방외교력, 현실적 정치 문제 등을 가지고 헤게모니를 주도하지 않는, 그저 인기영합주의에 지지율 올리기에 바빠서 여론을 들었다 놨다하는 정부가 도대체 맘에 안 들었다. 나를 이것만 보고 음모론자라고 부르지 말아라.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도 너무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그런지 미국에 이민했어도 마음과 머리는 한국인이며 내가 관 속에 들어가는 날까지도 한국인처럼 살 것 같다. 학교에 와서도 한국 이야기 많이 해주었으며 우리 나라의 좋은 것들을 많이 알려 주고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초대도 했다.
근데 나는 최근에 우리나라 '사람'이 싫어졌다. 정체성에 대한 존경만 남았을 뿐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무엇에 어떻게 생각하는 지 싫어졌다. 물론 나도 세계인 입장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옹졸함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여기서부터는 자기혐오, 국뽕들의 분노 준비--내가 봐도 한국인은 속이 너무 좁다. 정말로. 서로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바쁘고 권력에 아부하는 성격이 몇 천년 내내 사대주의 하던 민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나라도 조그만 주제에 자원도 없고 가진 것은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나오는 비뚤어진 자신감. 가진 것은 없고 자존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근성. 근데 또 아이러니하게 파벌을 만들어 자기만의 사회를 만들고 왕따를 만들거나 외부자를 배척하는 졸렬함의 극치. 그래놓고 선정적인 떡밥 하나만 물면 변태처럼 빨아대는 빠돌이 기질. 물론 특유의 냄비근성 때문에 경제발전을 빠르게 이룩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성은 1970년대. 그러한 미성숙한 민주의식에 SNS나 인터넷이 가세하니 대한민국의 정신 상태는 말 다했다.
핑크코끼리 사건을 보고는 더 이상 여름마다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졌다. 이제는 내 나이도 어느덧 22. 나와 같은 수염이 났고, 하지만 아직 마음은 급식받는 어린이밖에 안 되는 두뇌들이 나랑 같은 거리를 거닌다고 생각해보면 소름끼친다. 더군다나 내가 모르는 골목에서 누군가는 내 뒷담화를 하며 나에 대한 반대파를 조성해서 나를 끌어내리고 음해하려는 암조직을 만들려는 시도가 번번히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보다 더한 악몽은 없다. 제일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호구가 되는 나라, 거의 지구상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하다 못 해 미국도--이렇게 저급한 주제로 나라가 장마당이 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는 것 같다. 더 까놓고 말해서 부유한 콩가루 집안에 용기만 많고 행동이 없는 유치원생들끼리의 장난감 싸움을 보는 것 같다.
너네들이 싫어하는 섬짱깨, 짱깨, 양키, 쪽바리, 코쟁이들도 그런 싸움은 안 할 것 같다. 난 오히려 한국인들이 자세를 낮추고 그들에게 대범함이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한국인들은 본디 의지와 노력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건 산업화 시대에나 각성제로 잘 먹혔지 지금은 코카인 중독 수준이다. 너무 각성제를 먹어서 마인드를 버렸으니까. 한국인들이 진정 세계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려면 우선 대범함, 품격을 갖춰야 한다. 단순히 유치한 싸움에서 이 정도의 결론이 도출된 다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이 얼마나 읽기 쉬운 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난 이제 미국 사람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나는 '헬조선'을 떠났으니 너네 끼리 잘 헤쳐먹으라는 결론이나 미국이 짱!이라는 결론이 결코 아니다. 미국도 한국만큼 문제가 많다. 이미 죽은 아메리칸 드림이나 기회의 다양성론 같은거.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한국이 더 나은 것도 많다. 예를 들면 여러가지 생활의 편리함이라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국이 미국과 같이 세계적으로 큰소리 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어서 타블로이드 같은 주제를 벗어나서 실제 정치에 다시 임하며 국력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 다는 것이다. 마인드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한국은 조그마한 세월 내에 다시 조선시대 세도 정치 때로 돌아가서 현실을 인지하지 못 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게 삼분오열된 정신적 장애를 가진 나라는 결말이 그리 썩 좋지 않다.
애국하고 싶다면 인터넷에 글 그만 올리고 열심히 기술을 쌓거나 일을 해서 세금이나 더 많이 내라. 병역도 가고. 그게 진짜 애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