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서 다시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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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제가 아니고 유시카고 정치학 (국제정치) 박사과정하고 계신분이 여러 자료를 취합해서 쓰신글입니다.
Q2: 교수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싶다. 어떤 학교를 가야 하나?
A: 대학원의 세계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이 종종 되풀이하는 말이 있는데, ‘박사과정은 학교의 순위나 명성보다는 지도교수를 보고 가야 한다’는 통념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는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중요한 조건들에 심각한 결함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는 학생 개인의 세부적인 관심분야나 연구질문에 대해 가장 심도있고 자상한 지도를 해 줄 수 있는 교수진을 갖춘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최선일 테니까.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훨씬 더 복잡한 현실의 일부만을 반영하고 있다. 왜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 발언들을 곱씹어 보자.
만일 당신이 top-20위권 안에 드는 과정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나는 솔직히 양심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라고 권할 수 없다.
- Daniel W. Drezner, 터프츠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갖고 들어온 가장 큰 착각은 프로그램 랭킹과 관련된 것이었다....나는 탑스쿨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는 일류 연구중심대학교(R1 University) 교수직은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작은 주립대학교나 리버럴아츠 대학 정도에서 가르치는 것도 위치만 괜찮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으며, 학위취득 후 그 정도 자리는 기대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다. R1 대학들에서의 정년트랙 교수자리는 매우 드물게 열리며, 열리는 순간 극소수의 탑스쿨 ‘스타’ 졸업생들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모든 대학교들의 정년트랙 교수직은 탑스쿨에서 박사학위를 얻은 [스타가 아닌] 졸업생들과 다른 학교로 이동하고 싶어하는 조교수들에게 분배된다. 탑스쿨이 아닌 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을 앞둔 나 같은 사람들은 정말이지 아무런 자리라도 잡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해당 자리가 우리 마음에 들던 말던...예를 들어, 작년 Arkansas Tech의 미국정치 세부전공 오프닝에만 1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우리 중 몇 명은 외딴 시골의 전문대에서 가르치게 되는 행운을 얻을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뭘 하냐고? 소식이 끊기는 게 보통이지만 페이스북과 입소문에 따르면 전업주부, 요가강사, 고등학교 비정규직 교사 등이 된다고 한다.
- 어느 5년차 박사과정 학생-
예컨대 [정치학 명문인] 미시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의 지원서는 거의 모든 대학의 채용위원회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top-25위권 밖에 있는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의 지원서는 서류봉투를 열어보지도 않을 확률이 높다.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섣불리 교수가 되고자 대학원에 가려는 마음을 먹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뇌리에 단단히 새겨라.
- 어느 익명의 정치학 교수-
Science Advanced
- 2015년 2월 Slate
(http://www.slate.com/articles/life/education/2015/02/university_hiring_if_you_didn_t_get_your_ph_d_at_an_elite_university_good.html)-
조금 감이 오는가? 세상에는 수천 개의 대학교들이 있지만, 박사학위 소지자의 수는 그보다도 훨씬 많다. 시간과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가치가 불분명한 ‘잡음’이 난무하는 동시에 믿을만한 ‘신호’는 별로 없는(high-noise, low-signal) 상황에서 수많은 지원자들을 평가해야 하는 모든 대학의 채용위원회들은 해당 분야의 명문학교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뽑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건 대부분 미국 학계의 얘기 아니냐고? 뭐 그렇긴 하다....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에 돌아올 계획이라면 약간은 다른 환경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정확히 어떻게, 어느 정도로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더욱 국제화되고 유학기회가 확대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학계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현상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학계에서 아직까지 미국 박사학위 자체에 붙는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 살아있다고 치더라도(사실 더 이상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과연 언제까지 그러하겠는가? 그리고 설사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더라도 본인이 현재 마음에 둔 특정 지도교수를 염두에 두고 대학원을 선택하는 것은 추후에 잘못된 선택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다음 설명을 참고해 보자.
‘X 교수 밑에서 공부하고 싶어서’ 특정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은 피하라...이는 당신의 연구관심사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극히 드물다), 그리고 당신이 마음에 둔 그 한명의 지도교수가 친절하고 배려깊은 사람일 것이라는 가정(이 또한 드물다) 위에 세워진 잘못된 선택이다. - 어느 익명의 정치학 교수-
그럼 특정 학교의 랭킹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US News and World Reports에서 정기적으로 내놓는 순위들이 자주 거론되며, 필자가 연구하는 국제관계 세부전공의 경우 College of William & Mary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TRIPS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이 ‘탑스쿨’을 논할 때 단순히 이러한 지표들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학교들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학과의 전체순위와는 별개로 특정 연구주제나 이론적/방법론적 접근법을 다루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는 평판이나 인식 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US News 등의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평가결과들은 상당히 가변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특정 학교가 학계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쉽게 바뀌지 않는) 위상이나 영향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상기 기사의 Oprisko씨가 언급한 유펜(UPenn) 정치학과만 해도 2013년 US News and World Reports의 정치학 박사과정 평가발표에서는 28위에 그치는 기관이었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비슷한 시기에 Keren Yarhi-Milo(현재 프린스턴대 교수)와 같은 젊은 스타교수들을 배출하였으며, 상당히 우수한 교수진과 학문적 자원을 갖춘 정치학과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무슨 기준으로 탑스쿨과 탑스쿨이 아닌 학교를 구분할 수 있는가?
적어도 탑25안에 드는 박사과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많이들 강조한다. 당연히 스탠포드는 이에 해당하고, 퍼듀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객관적인 순위를 묻는다면, 그냥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당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탑25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면, 이는 곧 탑25가 아니라는 뜻이다. - 어느 익명의 정치학 교수-
조금 애매한 말이지만, 각종 평가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순위만 가지고는 측정하기 어려운 전공분야 내 ‘네임벨류,’ 전통, 평판 등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연히 본인의 연구관심사와 전혀 다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학교에 무턱대고 순위나 네임벨류만 보고 진학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이는 불행한 대학원 생활을 자초하는 지름길이다(물론 해당학교가 탑스쿨이라면 애초에 이 정도로 자교 프로그램과 fit이 안 맞는 사람을 합격시킬 가능성도 낮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