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요. 좋은 고등학교도 나왔고 거기서 최상위권을 달려서 유학도 왔고 부모님께서도 그 고등학교, 지금 다니는 대학교 가라고 응원해주시며 도와주셨어요. 근데 대학에 오니 너무 지치는 것 같아요. 공부도 어려운 부분이 많고 제가 뭘 좋아하는지도 - 안다고 생각했는데 - 제대로 모르겠고. 대학 와서도 지킬 거 다 지키며 살고 있는데 그래도 답이 안 보이고 의지가 생기지 않아요. 학교가 공부량이 많은 학교라서 학기 첫날부터 매일 서너시간씩 복습하고 예습하고 과제하고, 거기에 두시간은 동아리 하고, 시험기간엔 더 공부하고... 그래도 저보다 더 잘 하는 애들이 많아서 성적도 상위권은 아니에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좋은 건지 더 이상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저 자신을 기만해온 것 같기도 하고... 성격이든 취미든 꿈이든 '난 이런 사람이다'라는 틀을 만들어서 거기에 제 자신을 가두고 살았던 것 같아요. 어떤 친구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고 심지어는 제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행복할 때는 있는데 그것마저도 정신승리같고 자기합리화 같아요. 저 자신을 못믿겠고 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일탈? 이라고 해야하나, 제가 여태껏 살아온 방식과 다르게 살아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크게 논 것도 아니지만 규율 엄한 학교에서 친구랑 맥주 한 잔 하며 제 꿈이나 스스로에 대해 얘기도 해봤고 스트레스를 풀러 놀러 나가도 봤는데, 오히려 맥주 마시다 걸려서 학교에서 쫓겨나는 건 아닌가 부모님께 죄송해지기만 했고 뭘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대학에서 해볼만한 것들은 나름 다 해봤어요. 옛날부터 잠 줄여서 하고싶은 일, 해야하는 일 하는 걸 잘해서 공부, 동아리, 놀러나가기, 미팅, 뭐 다 해봤는데... 동아리를 대여섯가지를 해보고 공부도 다양하게, 깊게 해봐도 제가 좋아하는게 뭔지를 모르는 거 같아요. 제 선호도에 대한 불감증이라고나 할까요.
유일하게 제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건 가족 문제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가족이랑 많이 떨어져 살아서 익숙하긴 한데, 특히 어렸을 때 그다지 좋은 딸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항상 죄송한 마음 뿐이에요. 그러다보니 그냥 시간이 아깝다, 이 귀중한 시간 외국에서 보내는 게 아깝다, 이런 생각뿐이고... 여행? 취미?를 하려고 해도 부모님 돈 갉아먹는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과외를 해서 돈을 벌기도 하는데, 그것마저 최대한 모아서 조금이라도 더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24/7 죄송하다는 생각, 나중에 이 유학생활을 후회할거라는 두려움밖에 없어요.
어떻게 해야할질 모르겠네요. 집중도 안 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힘들어 죽겠고 매일 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냥 너무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