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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리 여행 2번째 편을 들고왔어요.
저는 파리에 9월 1일부터 4일까지
3박 4일간 여행을 했는데요!
저는 파리 근처에 사는 친구집에 3박4일을 지냈어서
여행을 많이 하진 못하고 여행하고, 친구 집에가서 가족들이랑 식사하고
친구가 저 데리고 다니는 대로 따라다녀서 ㅋㅋㅋ
그렇게 많은 곳에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뜻깊은 3박 4일을 보내고 왔어요.
프랑스인 친구의 집에서 머물 수 있었던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친구의 집, 프랑스 가정의 문화, 친구집에서 있었던 일화 등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 칼럼은 시간 순이 아니에요..
제가 계획한 여행이 아니고 친구가 데리고 다니는 대로 따라 다니느라
조금 뒤죽박죽이긴 합니다만 한번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여기는 파리 시청이에요
1357년 샤틀레 광장에서 약간 동쪽으로 이전되어 현재 위치에 세어진 시청은,
1871년 파리코뮌 때 화재로 전소되었지만 1887 년에 원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건물 중앙에 있는 시계 보이시죠?
시계 밑에는 프랑스 혁명읭 3대 정신, 자유, 평등, 박애 3 단어가 새겨져 있어요.
겨울이면 스케이트 장을 연다고 하네요.
겨울에 꼭 와야겠습니다.
여기는 어딜까요? 바로 파리 센강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에요!
파리 명소들은 다 집약되어 있어서 여기저기 다니기가 수월합니다.
그래도 오래 걸어야 해요... 저는 진짜 발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 주교 M.쉴리의 지휘 아래 내진 건축이 시작되었고,
13세기에 일단 완성되었으나, 부대 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어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습니다.
파손 이후 방치되었다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의 파리'의 배경이 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고 합니다.
또 프랑스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어요.
참고로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인데요.
NOTRE : OUR / DAME : LADY
성모 마리아를 지칭해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1302년 필립 4세가 노트르담 성당에서 최초의 3부회를 개최하였고
1455년에는 잔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 열렸으며
1572년 앙리4세와 마르그리트 양녀의 정략결혼 장소로 이용되었고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 되었던,
프랑스인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랍니다.
하지만,.
2019 년에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났던 것 아시죠..
대규모 화재가 나 성당의 상징인 96M 첨탑과 본관 지붕이 소실됐어요.
저도 완전한 노트르담을 보지못하고,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를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저를 안내해주었던 프랑스인 친구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당시 본인도 거의 울뻔했다고...
본인이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고 자주 왔던 곳이고 프랑스인들에게 정말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제가 경복궁에 화재가 난다면 그런 기분이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줄줄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몽마르뜨로 이동했습니다.
사실 저는 몽마르뜨 언덕/ 사크레쾨르 성당을 보러 간건데
조금 많이 헤맸어요
ㅋㅋㅋ
성당에 바로 가시고 싶은 분들은
구글맵에 몽마르뜨 언덕을 검색하지마시고
사크레쾨르 성당을 검색하고 가셔야 해요
진짜 중요합니다...
저는 한참을 묘지에서 헤맸답니다.
공둉묘지도 물론 멋있었어요.
파리의 3대 공동묘지로 꼽힌다고 해요.
혁명기 위생과 도시 경관을 이유로 Les halles 등을 비롯한 파리 중심 지역 내의 묘지들이 폐지 되고
이를 대체하고자 파리 외곽지역에 세워진 묘지 중에 하나입니다.
1789년에 설립 되었고 작가 에밀 졸라, 스탕달 화가 에드가 드가 등 많은 유명인사들도 묻혀있다고 합니다.
묘지가 한국이랑 달라 정말 신기했어요.
약간 전화부스 처럼 생겼고 그 안에는 스테인 글라스 같은 것으로 예수의 모양 창이 나있어요
그 안으로 빛이 들어옵니다.
어떤 것은 관리가 굉장히 잘 되어있고
어떤 곳은 몇십년 정도 방치 되어 있는 듯한 묘지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지만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가기가 조금 힘들었답니다.
가까이서 본 사크뢰쾨르 성당이에요.
몽마르뜨 정상에 세워져있고,
1870 년 프랑스가 프로이센 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다음 해 파리코뮌으로 이어진 어두운 시대에
민중과 가톨릭 교도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건설되었어요.
시간이 없어 내부에는 들어 가보지 못했답니다...
이 곳은, 근대미술의 발달을 촉진한 예쑬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도 유명해요.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고흐를 비롯한 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아 인상파,상징파,입체파
등의 발상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여기 가면 여기저기서 그림그리시는 분들이 호객행위를 할거에요
사실 제가 시간이 조금 있었다면 그림 하나 그려달라고 했을텐데..
친구를 파리 시내에서 만나기로 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얼마인진 모르겠네요.
그런데 막 헤이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작가님들은 대부분 중년의 남자분들이었는데
어떤 분은 제게 말을 거는거에요.
저는 호객행위인가보다 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한국이냐 일본이냐 중국이냐 여쭤보더라구요.
제가 프랑스어로 한국이라 했더니
프랑스어 할 줄 아냐며 자기 한국 문화에 엄청 관심 많다고.
"오늘 저녁 같이먹을래? "
그러는거에요 ㅋㅋㅋㅋ
아니 이거 무슨..
제가 이미 약속이 있다고 하고 지나가는데 계속 말을 거시더라구요
내일은 그럼 뭐하냐.
그래서 내일도 약속있다고 했는데
이 근처에 자기 아파트가 있는데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싶다고..
네 ?
ㅋㅋㅋㅋ
그래서 아뇨아뇨 저는 파리 안살아요.
빠르게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친절하지만 이상한 아저씨였답니다.
관광객 뿐만 아니라 이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분들도 있어요.
과연 프랑스 다운 풍경이네요.
파리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언덕으로,
파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몽마르뜨에 가면 소매치기가 많고, 팔찌를 채워 돈을 받는 흑인들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갔는데
소매치기는 전혀 못 봤구요!
팔찌 하시는 분들은 봤는데
그렇게 강압적이지 않았습니다 ㅎㅎ
그냥 호객행위 정도 ?
일부러 팔찌 하시는 분들도 있구요.
외관부터 너무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루브르.
루브르 박물관은 내부에 있는 작품들도 중요하지만
'루브르' 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랍니다.
먼저 루브르는,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였어요.
12세기말 필리프 오귀스트 왕의 치하에서 파리는 작은마을에서 프랑스 수도로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십자군 원정을 떠나기 전, 파리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지를 마련했어요.
박물관 내부에 여전히 원형 망루들이 남아있답니다.
샤를 5세는 요새였던 루브르를 왕실의 거처로 개조하였습니다.
그리고 16세기, 프랑수아 1세는 이 원형 망루를 허물어 버리고
건축가 '피에르 레스코'를 기용하여 루브르의 대대적인 공사를 지휘했어요.
이 때 부터 루브르는 중세의 요새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왕궁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답니다.
오르세도,앵발리드도,루브르도 모두 박물관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에요!
앙리4세는 신,구교 간의 종교전쟁이 끝난 후 파리로 돌아와
루브르 궁과 튈르리 궁을 연결하여 기존의 협소했던 루브르를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앙리 4세 서거 이후, 중측공사는 잠시 중단되었지만
루이 13세 (17세기) 때 루브르가 원래 규모의 4배로 확장되었고,
루이 14때 Petite galerie ,galerie d'Apollon 이 재건되었답니다.
그런데 ! !
루이 14세는 베르사유로 궁을 이전하면서
프랑스 군주들의 영광을 상징하던 루브르 궁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왕궁의 역할이 완전히 멈추진 않았다고 해요.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개인 아틀리에에서 창작활동을 계속 하였고,
프랑스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는 루브르에서 정기적으로 수업과 강연을 열었다고 합니다.
여기가 바로 루이 14세 때 재건된galerie d'Apollon '아폴론 화랑'
루브르가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아카데미가 주최한 전시회 '살롱'이 루브르 궁에서 열리기 시작하면서
루브르 궁은 점차 예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튈르리 공원이에요.
대혁명 이후 정권을 잡게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루브르-튈르리 궁의 연결 공사를 재개하고, 궁의 내부 외부 장식을 보완하며 루브르를 더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저도 친구랑 루브르 갔다가 너무 지쳐서
여기 앉아서 한 삼십분 정도 쉬었어요..
친구가 분수 근처에 있는 의자를 ㅋㅋㅋ
그늘진 곳으로 옮겨서 그냥 하염없이 앉아있었답니다.
넘나 프랑스적인 마인드...
어느 다리에서보나
어느 각도에서 보나
아름다웠던 센강
이번 글 분량은 조금 길었네요 .. !
재밌게 읽으셨길 바래요 ㅎㅎ
저는 내일 드디어 개강을합니다!
그럼 내일 학교 갔다가
또 재미난 이야기를 들고 돌아올게요 !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