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8
★ 끝없는 시위와 복면금지법의 시행 ★
안녕하세요 여러분, 봄이입니다.
오늘은 아마도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 하실, 홍콩 시위 현황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홍콩에 가기 직전 짐을 쌀 때만 해도 홍콩이 시위 중이라 상황이 혼란스러웠었는데요, 몇달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지금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홍콩에서는 시위가 진행중이며, 한편으로는 격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답니다.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홍콩의 시위 상황 및 오늘 시행된 복면금지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침사추이에서 찍은 사진 'liberate hong kong'
제가 홍콩에 도착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홍콩에서는 시위가 매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콩에서 시위는 꽤나 일상화되어 있는데요, 거리에서, 식당에서, 학교에서 시위 문구나 포스터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시위 구호를 불특정 다수가 외치는 것 역시 흔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이미 말씀드렸듯 홍콩이 중국을 상대로 시위를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범죄인 송환법' 때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홍콩과 중국관의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었습니다.
홍콩 시위대는 중국 정부가 5가지 요구를 들어줄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입니다.
몇주 전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공식 철회를 밝혔지만, 홍콩 시민들은 ‘5대 요구’가 모두 수용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실제로 홍콩 시위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위 구호가 바로 '5대 요구 결일불가(5 Demands not one less)' 입니다. 즉 시위대는 정부가 5가지 요구를 단 하나라도 빠지지 않고 들어주기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홍콩 시티대 내부의 시위 포스터
홍콩의 시위는 주로 젊은 세대인 1020세대, 그 중에서도 대학생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이 점이 한국 민주화 운동과 닮아있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홍콩 시티대에서도 어렵지 않게 다양한 시위 포스터들과 시위 활동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티대에서도 학생들의 시위가 지속되고 있으나 그 양상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듣기로는 홍콩 중문대학교와 같은 대학교는 무척이나 격력한 시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제 홍콩 친구의 휴대폰 배경화면인데요, 배경화면 속 '光復香港 時代革命' 이라는 문구가 보이시나요?
이는 앞서 언급했던 5대 요구 결일불가(五大訴求, 缺一不可)와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는 시위 문구입니다.
'光復香港 時代革命' 란 '광복홍콩 시대혁명' 을 말하는데, 처음에는 '광복'이라는 단어 때문에 홍콩이 독립을 원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홍콩인 친구들이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홍콩의 자유를 뜻하는 말이라고 해주었습니다.
처음 홍콩 시위대가 범죄인 송환법을 반대하며 시위를 시작했을 때 시위 구호가 홍콩인의 중국 인도를 반대한다는 뜻의 ‘반송중(反送中)’ 구호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광복홍콩 시대혁명' 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휴대폰 배경화면을 시위 문구로 바꿀 정도로, 홍콩 친구들에게 이어지는 시위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홍콩 시티대 수영장 앞
위 사진 속 기둥의 'v' 표시가 되어있는데요, 'V' 표시는 영화 (또는 소설) 'V 포 벤데타' 에서 나온 상징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신적 있으신가요? 저는 작년 영어교양 수업에서 처음 영화를 접했었는데, 본 영화에서는 아주 유명한 대사인 'Ideas are bullet-proof (신념은 총알로 뚫리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리 중국 정부가 홍콩 사람들을 무력으로 진압해도 그들이 가진 자유의 가치를 막을 수는 없죠. 홍콩 시티대 곳곳에는 신념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V 마크로 된 스프레이 낙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기숙사에서 학교 메인 건물로 이동하면서 찍은 것인데요, 학생들이 붙여 놓은 시위 포스터를 뜯어낸 모습입니다. 매일 시위 포스터가 붙어있으면 그 다음날 정리가 되어있고, 벽에 스프레이로 시위 문구를 적어놓으면 벽지로 다시 덮어버린답니다. 이렇듯 홍콩인들은 다양한 형태로 저항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데요, 어제였던 4일 '복면금지법'시행이 표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위가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복면금지법이란 공개적인 집회에서 복면 (마스크 등)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인데요, 이 법에 따르면 공개적인 시위현장에서 복면을 착용하는 경우 엄청난 벌금을 물거나 징역형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을 놓고 캐리람 행정장관은 '복면을 쓴 폭력적인 시위자들과 폭도들에 대한 억제 효과를 가져올 것이고 경찰들의 법 집행을 도울 것이다' 라고 밝혀 홍콩인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위현장에서 복면을 착용하는 것은 중국 정부로부터 신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어제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홍콩 학생들이 마스크를 써서 저항의지를 표현했습니다. 또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빠지고 보이콧을 하거나 시위에 참여하는 등,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수업 중간 저는 밀크티를 사러 백화점에 갔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시위대의 다소 험악한 모습에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은 시위의 양상이 격화되면서 수업 도중에 수업을 즉시 취소하라는 학교측의 공지가 내려졌고, 저는 수업 중간 교실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어제 하루 복면금지법의 시행으로 모든 지하철 역이 폐쇄되었고,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학교가 한산하게 느껴질만큼 저녁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습니다.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홍콩 친구들은 죄책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시위가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고, 오늘 (10월 5일) 저는 예정된 약속을 취소하고 기숙사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면 금지법 뿐만 아니라 경찰의 실탄에 부상을 입은 중고등학생의 소식역시 홍콩인들의 분노를 부추겼습니다.
앞으로도 정부가 홍콩의 5대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홍콩의 시위는 지속될 것인데요, 끝까지 희망을 놓지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홍콩 대학생이었다고 해도 수업을 보이콧하고, 위험을 무릎쓰고 시위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 배웠을 때 그 투쟁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았었는데, 홍콩 친구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유 민주주의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까지인데요, 오늘은 다소 무거운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뵌 것 같네요.
다음에도 더 유익한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