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구촌 특파원 8기 고슴도이치입니다.
벌써 6월이라니...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아니 믿지 않을래요...
이번 달이 지나면 이제 2022년 절반 bye...
네...뭐 어쨌든 오늘도 어김없이 글은 써야 하니(?) 슬픈 마음은 뒤로 하고
올해의 중간 달이자 지구촌 특파원 활동 마지막 달인 6월에 진입한 걸 기념하여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성격의 글을 준비해봤습니다.
바로 독일에서 제가 물리적으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경험한 것,
즉 독일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제가 생각한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교환학생의 생활에서 학교 공부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타지에서의 홀로서기를 하며 배우는 지혜라고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매주 특파원 칼럼을 쓰면서 든 생각이
제가 이곳에 와서 내적으로 변한 게 외적으로 변한 것보다 훨씬 많고 다각적인데,
그런 부분들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이제 남은 활동 기간은 그런 부분도 조금씩 곁들여서라도 보여드리자는 거였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글 하나를 통틀어 할애하여 독일에 대한 저의 큼직한 단상(斷想)들을 보여드리고
다음 글부터는 제 생각을 한 스푼씩만 끼얹는 정도로(=그동안 제가 글 써왔던 형식) 제가 경험한 독일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마다 배운 것, 자라온 환경, 현재 상황이 다른 만큼 제가 느낀 것 또한 저의 고유성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며
독일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한 대학생의 생각이 저렇구나~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 여유롭지만 시간에 예민한 나라
내가 독일에 와서 가장 크게 느끼고 배운 걸 내 언어로 정리하자면 ‘아무리 바빠도 마음 한 켠엔 여유가 자리잡을 공간을 남겨두는 자세’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여유는 단순히 놀고 먹고 즐기는 시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내가 본 독일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확실히 여유를 즐기는데 그 방법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시에 축적하는' 방식이다. 물론 어느 나라를 가든 사람마다 여가 시간을 즐기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독일인들에게서 내가 지배적으로 발견한 여유를 만끽하는 방법은 자연을 보며 힐링하고 재충전하거나 액티비티를 즐기며 온몸의 기운을 밖으로 떨쳐내는 것이다. 학교 기숙사 단지만 봐도 늘 누군가 곳곳에 설치된 간이 탁구대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탁구를 치거나, 인공 모래사장이나 일반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간이 네트를 가운데에 두고 배구를 하거나, 텅 빈 공터에서 특별한 장비 없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친구들 여럿이 팀을 나눠 맨바닥에서 뭔가를 굴려 넘어뜨리는 게임을 하는, 다소 우리나라의 '검정 고무신' 느낌을 풍기는(부정적인 의미 아님)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평화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한편 독일은 시간에 매우 예민한 나라이기도 하다. 타인의 기술이나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모든 일이 '테어민' 즉 약속을 잡아야만 가능하다. 은행 업무, 병원 진료, 시청 업무, 심지어 우리 대학의 경우 국제처 방문까지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나는 처음에 여유로움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특정 시각에 약속을 잡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했다. 하지만 조금 더 이들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니 이렇게 테어민을 잡게 하는 것 또한 결국 모두의 여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정된 시간 외 방문 금지'를 '테어민 필수'로 우회해 말함으로써 하루하루 정해진 업무 시간을 사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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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인주의만큼 공동체주의도 강한 나라
나는 그동안 한국이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개인주의가 아무리 만연해도 공동체주의가 뿌리 뽑히지 않을 국가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에 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나는 한국보다 더욱 강한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국가 - 독일 - 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느낀 독일은 ‘주말 = 가족의 날’ 공식이 과반수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성립하는 나라이다. 주말에 밖에 나가면 친구 무리보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훨씬 많고,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집들은 평일 오후 5시만 돼도 부모님이 함께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물론 내가 소도시에서 교환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베를린, 함부르크 등의 대도시는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독일인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도시의 규모와 무관하게 독일은 가족을 굉장히 중시하는 나라가 맞는 것 같다. 한 번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일이 일요일에 왜 모든 가게의 문을 닫는지 알아? 적어도 일요일만큼은 반드시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야.”
하지만 이렇게 가족과의 시간엔 정성을 다하면서도 남남 사이에선 한없이 확실한 선을 긋는 게 바로 독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사람마다 성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나 또한 이미 얼굴 본 지 오래 됐는데도 늘 얕은 대화, 즉 안부나 요즘 과제량 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독일인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만난 지 하루만에 아주 깊은 속 이야기까지 하게 된 독일인 친구도 있다. 하지만 내 주변 다른 나라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독인인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까워지긴 어려운 것 같다”는 하소연을 하는 걸 자주 봤기 때문에, 독일인들끼리는 서로 친해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우리가 외국인 입장이라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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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콘텐츠가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닌 나라
독일은 “너 요즘 뭐 봐?” 혹은 “넷플릭스에서 재밌는 거 추천해줘!”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을 바로 하지 못하는 나라다. 이건 내가 실제로 독일에 와서 알게 된 대부분의 독일인 친구들에게 한 번씩 물어본 건데, 그들 왈 독일이 만든 드라마나 독일 TV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볼 만한 것도, 추천해줄 만한 것도 드물다고 한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글이 사람들의 일상에 조금 더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전에 다른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버스나 기차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항상 몇 명씩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거의 하루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수준인데, 여기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서도 책을 읽으며 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독일인들은 '재미있는' 혹은 상업적인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친구들에게 "그럼 너희가 읽는 책은 대부분 독일인 작가들이 쓴 책이야?"라고 물어보면 "아니, 많이들 읽는 판타지도 그렇고 대부분 외국 작가들 작품인데?"라고 대답하는 걸로 봐서 영상 콘텐츠도 관객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데, 그렇다고 글을 '재미있게' 쓰는 독일인 작가들이 많은 것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절대로 독일에 '좋은 콘텐츠'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보통 전세계적으로 콘텐츠가 잘 팔리기 위해 '재미'라는 요소를 자극적으로 곁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요소가 독일이 생산하는 콘텐츠에는 거의 없어서 상대적으로 '콘텐츠로 돈 버는 일'엔 독일이 그닥 힘을 쓰지 않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걸 언급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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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길고 장황하게 말하는 게 감점 요소가 아닌 나라
우리나라는 흔히 말하는 '두괄식 화법'을 꽤나 강요하듯 장려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자기소개를 쓸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우리는 학교에서 '말과 글은 간단 명료하게 핵심을 한번에 전달할 수 있게끔' 하는 게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독일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말할 때와 독일어로 말할 때 문장의 길이부터 다르다. 아마 독일어로 말할 때가 한국어로 말할 때의 최소 1.5배는 길어질 거다. 예를 들어 숫자 읽는 방법만 봐도 그렇다. 한국어로 '천사백오십삼'이 독일어로 하면 'vierzehnhundertdreiundfünfzig'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인들은 말을 굉장히 길게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독일인 친구들 왈). 물론 이것도 사람마다 말하는 스타일이 너무나 달라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독일인 친구들의 말을 듣고난 뒤 실제로 독일 사람들이 말하는 걸 유심히 들어보니 하나를 전달하기 위해 필수적인 내용보다 몇 배의 정보를 덧붙여 이야기하기는 하는 것 같긴 했다.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학생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질문은 하나고, 이미 처음 말한 문장에서 질문의 핵심이 나왔는데도 꼭 설명을 몇 문장씩 덧붙인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그러니까 학생 말은 ~가 궁금하다는 뜻이죠?" 이렇게 교수님이 다시 짧게 정리하신 후 대답하실텐데 말이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
마지막으로 제 독일 일상 사진을 몇 장 공유하면서
오늘의 칼럼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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