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의 내셔널 프라블럼..... (짐바브웨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아예 뽑을 수가 없으니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돈 뽑을 걱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완전히 질려버려서, 얼떨결에 친구들을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남는 자리를 간신히 사서 타게 된 제일 낮은 등급의 $30 짜리 버스... 의자는 다 빠개지고 밤새 찬송가를 버스가 떠나가라 틀었습니다. 기사님 졸까봐 그런가?... 옆에 앉은 짐바브웨 아저씨는 자꾸 말을 걸고.....
여튼 이로써 두 번째 오는 요하네스버그입니다.
짐바브웨도 두 번 가서 비자비용을 2번 냈는데, 남아공은 다행히 30일 무비자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갔다가, 다시 오면 그때부터 다시 30일이라서 여행에 부담없습니다. :)
친구들과 Park station 주변에서 숙소를 찾아 짐을 맡기고, 우버를 불러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에 갔습니다
(대낮에 여자 둘 남자 둘 네명이서 대로를 걷는데도 ..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차 세우고 창문 내려서
'너네 여기서 위험하게 뭐하냐... 여기 왜 걸어다니냐, 호텔 어디냐, 픽업 안나오냐?
아무리 가까워도 우버 불러서 가라 걸어다니지 말아라... ' 겁을 겁을....)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아파르트헤이트 : 인종차별정책을 말합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지속되었던 백인정부의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영국과 네덜란드인들이 식민지 시기에 지배하다가, 정부를 세웠는데요
원주민이 흑인들의 나라에서 1994년까지 쭉 백인정권이었습니다.
(1994년에 민족, 아니 세계의 영웅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남아공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고, 근 50년을 지속해오던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정책도 폐지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의 스펙트럼은 그래서 남아공의 근현대 역사를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원주민이 어떻게 이 땅에서 살고 있었고, 17-18세기 백인들의 침략과 강탈의 과정,
20세기에 백인정부가 세워지면서 인종차별 정책을 어떻게 세세하고 철저하게 운영했는지,
또 그에 맞선 저항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2001년에 지어진 이 박물관은 부지가 꽤 넓은데요,
시대별로 테마를 갖춰 훌륭한 전시시설을 조성하였고
또 '넬슨 만델라'관이 따로 있어 이 영웅 개인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이 땅의 후손들.
아파르트헤이트는 유색인종 차별정책을 하나부터 열까지 어찌나 철저하게 법으로 규정해놓았는지, 정말 마음이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인종등급으로 나누어 백인, 흑인, 컬러드(컬러가 있는 혼혈인 정도인 듯), 인도인 등으로 분류하고 인종별로 거주지, 혼인, 출입구역도 모두 분리했습니다. 흑인에게는 거주, 혼인, 출입의 자유가 거의 없었던거지요.
대표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있던 시절에는 남아공의 보석 '케이프타운'에 흑인은 거주할 수 없었습니다.
백인정권은 국민의 80%를 차지하던 흑인을 국토의 13% 정도 되는 못 쓰는 땅에 강제 이주시켰어요.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지 못하게 통제했습니다.
제가 다큐를 하나 봤는데요, 원하면 갈 수있다고는 되어있지만, 실제로 운영방식을 살펴보면 불가능했습니다.
내가 A지역에 살고 있는데 B지역으로 이사가고싶다, 하면 신청해놓고, B구역에 빈 자리가 나면 순차적? 때에 따라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흑인은 돈이 아무리 있어도 (그런 경우는 드물었겠지만) 케이프타운으로는 이사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케이프타운 바다와 가까운 마을에는 집주인이 대부분 네덜란드인, 영국인 등입니다.
<프리토리아> (남아공의 주 이름)
이곳은 NON-WHITES, 유색인용 역입니다.
화장실도 BLANKES 즉 백인 / 흑인 나뉘어있구요.
미국에서도 이런 인종차별 규정이 정말 심했었죠? 같은 화장실도 못 쓰고 식당에서도 백인 흑인이 같이 밥먹을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대요.
박물관 표를 끊으면 이렇게 Nie-blankes = NON_WHITES / 혹은 BLANKES=WHITES 를 랜덤으로 줍니다.
제가 동양인이라 이 표를 주신건 아니고요, 랜덤이예요.
이렇듯.. 모든 거리 장소에 흑인/백인이 써져있는 걸 보며 살아야한다는건
항상 '나는 유색인종이다, 나는 흑인이다, 나를 '흑인'이라 부른다는 것은 백인이 우리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다' 라는. 나라가 정한 유색인종의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숨 쉬듯 항상 생각하게 되고요.
우리나라 항일운동의 역사도 1910년대, 1920년대, 30, 40년대 등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듯이
남아공에서도 저항노선이 변화하기도 하고 세계각국의 저항운동과 연대하기도 했는데요.
이 시기의 영상 전시물은 이렇게 다 철장 안에 있었던 것이 특이했습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헤까닥..!)
그리고 어느 날의 시위에서 무자비하게 죽임당한 사람들.. 그들을 묻는 공동 장례식입니다.
차는 트럭 가득하게 시신을 날라오고 무덤은 끝이 없죠.
같은 시기 한국의 역사와도 닮은 점이 많아 참 뭉클했습니다.
넬슨 만델라 특별관입니다. 저 주먹이 넬슨 만델라의 상징처럼, 투쟁의 상징으로 쓰이더라구요.
넬슨 만델라는 1918년에 한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학교를 다니고 성인이 되면서 백인들의 흑인 인종차별을 경험하게되는데요.
변호사가 되어 남아공에 유일하게 흑인 변호사 사무실을 차려 법정에서 흑인들을 변호했다고 합니다.
넬슨 만델라의 인종차별 저항 운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마하트마 간디처럼 비폭력 운동을 진행했으나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죠. (간디가 남아공과 인연이 깊습니다)
그러자 투쟁 성격을 바꿔 무장투쟁을 진행하며 에티오피아에서 군사훈련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체포되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그 유명한 '로벤'섬에서 27년을 독방에서 수감하게 되는데요.
로벤섬은 케이프타운 항구쪽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넬슨 만델라같은 정치범들이 주로 수용된 섬 감옥이에요.
70년대에 수감되어 시대가 바뀌어 90년이 되도록 복역하면서.. 감옥 안에서 여러 인권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도 국제적으로 비난받기 시작하면서 정부도 그 명분을 잃었고 이런 여론으로
넬슨 만델라도 1991년에 27년만에 가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드디어 폐지하고, 노벨 평화상도 수상합니다.
< 46664 >는 넬슨 만델라의 수감번호입니다. 이 숫자가 하나의 심볼처럼 사용되었어요.
이 장면은 런던에서 열린 에이즈 퇴치 콘서트사진입니다. 뒤에 사회보는 윌 스미스가 보이죠~~
넬슨 만델라가 전세계의 평화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흑인나라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후에, 몇 백년동안 자신들을 괴롭힌 백인들에게 보복한 것이 아니라,
백인 흑인 모두가 함께 사는 나라가 바로 이 남아공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차별을 위한 차별이 아닌 통합을 위한 정책을 폈다는 점입니다.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박물관에 적힌 만델라의 말이 참 뜻깊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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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덤으로, 제 사심 가득한 후기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포켓포토 진짜 여행에서 유용하게 썼어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추억도 쌓고 사진도 많이 찍잖아요? 요새는 다 챗 어플이 있으니까 주고받을 수도 있구요!
그런데 이런 실물 사진으로 나눠가지면 너무 꽁냥꽁냥하고 마음이 따땃해지잖아요 ㅠㅠㅠㅠ
그치만 폴라로이드는 너무 크거나,, 필름값이 부담스럽다면....
LG 포켓포토 인데 정말 저 잘 썼어요.
가격은 아래 참고하시고, 저는 초창기 버전을 썼던 터라화질은 썩 좋지는 않지만...
(사진관 인화가 아니고 큰 프린터도 아닌데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돼요. 손바닥 보다 작은 크기입니다.)
그래도 이런 사진을 바로 뽑아서 나눠가질 수 있다는 점이 여행자에게 정말 좋았어요.
수많은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고 스쳐지나가지만 그 중에서도 고마운 인연을 박제한다고나 할까?....ㅋㅋㅋㅋ
필름을 도중에 공수할 수 없으니 필름 아끼느라 진짜 고마웠던 사람들한테만 프린트 해서 줬었는데요,
이 사진 나눠가졌던 세계의 친구들, 한국 여행자들은 지금도 계속 연락한다는 점이 참 신기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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