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구촌특파원 9기 청춘여대생, 김규리입니다!
이번 칼럼은 제 지구촌특파원으로서의 마지막 칼럼입니다.
뜻밖에도 우연이 이렇게 겹쳐 저는 지금 공항에서 부랴부랴 칼럼을 작성하고 있습니다...ㅋㅋㅋ
마지막 칼럼을 꼭 출국일기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비행기 지연으로 오후 8시 45분 비행기가 되는 바람에 한국 일정으로는 도저히 마지막 칼럼 날짜에 맞출 수 없겠더라고요.
덕분에 공항에서 노트북 키고 칼럼을 작성하는... 마치 커리어우먼같은 행동도 해보고...
인생 정말 뜻대로만 쉽게 돌아가는 게 없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매력적인 게 삶이란 것 같아요.
서론이 길어졌는데, 그럼 우선 제가 출국을 맞이하며 근래 친구들과 어떤 생활을 보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칼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D-4
▲늘 저희의 낙서장이 되어주었었던 캐내디언 친구의 화이트보드
제 칼럼을 자주 보시던 분이라면 알겠지만, 캐나다에서는 새벽마다 할 것이 없어 늘 술을 먹어왔거든요...
덕분에 저는 자유로이 여러번 음주파티를 즐겼습니다
▲이날 먹었던 저희의 돼지고기숙주볶음
이번 음주파티는 특히나, 가장 친한 무리들끼리 근래 모든 끼니를 한식을 만들어먹기로 결정했어서,
코스트코와 TNT라고 하는 아시안 식당 마트를 탈탈 털어 가득 안주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개인적으로 기획했던 것이,
1) 유달리 친한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
2) 유달리 친한 친구들에게 선물 사기
3) 캐나다 국기에 싸인 받기
4) 노트에 굿바이 편지 받기
였어요.
▲이날의 사진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하늘색 노트에는 굿바이 편지를, 국기에 싸인을 받았어요.
처음엔 적어도 얼굴은 본 적 있는 친구들에게서만 받으려고 했는데,
캐나다 생활이 점점 끝나갈 즈음 되니까 뭔가 텅텅 빈 곳이 보이길래 마음이 조급해져서,
마지막 날에는 지나가는 온갖 애들한테도 그냥 패스해서 받곤 했네요.
▲아마 이날보다는 더 전에 전했던 제 친구들에게로의 편지지들입니다.
제가 캐나다 생활을 지내며 가장 신세를 많이 졌던 한국인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했어요.
다들 정말 바쁜 시기라 급하게 저녁만 먹고 바로 도서관에 모여서 공부하는 중에 전해준 편지들입니다.
쓰면서 조금 울컥울컥했는데, 받는 친구들도 약간 어쩔줄 몰라하는 걸 보면서,
'아 진짜 쓰길 잘했다'하고 느꼈어요...ㅎㅎ
캐나다는 편지지랄 게 딱히 없고 어디서나 1달러 짜리 엽서를 팔아서,
대충 애들마다의 추억을 그릴 수 있을 편지지로 골랐거든요.
예를 들어 밥을 잘 챙겨줬던 엄마같은 친구에게는 평소 '이정도면 명절날 외할머니 아니냐'라고 장난을 쳐왔어서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지를 건넸다던지,
진짜 너무 귀엽고 제 취향인^^ 친구한테는 너 내 와이프 해라ㅋ 하고 자주 농담해왔어서
당당히 0번째 아내 순서를 차지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배우자에게 보내는 편지지를,
졸업 기념으로 한국에 와주겠다는 캐내디언 친구에게는 졸업 축하 편지지,
평소 애기라고 귀엽다고 자주 놀려왔던 친구에게는 첫 돌 축하 편지지를 건넸습니다.
이렇게 편지지까지 하나하나 골라가면서 준비하는 과정은 퍽 즐거웠어요.
더불어 받는 사람 또한 편지를 볼때마다 저희의 추억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 같았어서,
하나하나 신경써서 보내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D-3
사실 요새는 기숙사 친구들이 정말 바쁘고 바쁘고 너~무 바쁠 시기라서,
어디 한 명 저같은 한량 교환학생과 놀아줄 사람이 아예 없더라고요...
특히나 제가 거주하고 있는 워털루 대학교는 캐나다에서 유난히 공부를 빡세게 시키는 공과 위주 대학이었던지라,
그리고 저희랑 노느라고 성적이 바닥나서 지금이라도 빡세게 해야 되는 친구들,
한국 교환학생을 오기 위해 평균 80점 이상 (적어도 워털루 대학교는 모두 절대평가입니다) 을 받아야 하는 친구들 등
그냥 공부하지 말고 놀자~ 하고 막무가내로 떼쓰기에는 이번 기말 시험이 중요한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요.
▲친구의 캐나다 넷플릭스 계정을 이용해서 봤습니다.
영어 자막만을 보면서 영화를 봐본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볼만 했어요!
그래서 잠깐 시험 끝날 당일이라는 아이들을 모아서 기숙사에서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사실 DFL이라는 공용 룸..? 같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가끔 영화 틀어주는 이벤트를 보긴 했어요.
저는 무자막에 너무 안 친한, 그리고 의외로 그 영화를 보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보여서,
저 자체도 흥미가 없었긴 하지만, 나름 방해가 되지 않게 그냥 친구 방 가서 같이 봤습니다...ㅋㅋ
▲역시 이 날도 그냥 넘길 순 없는 음주
D-2
▲드디어 "하자!!", "가기싫어"등 답변을 하기 시작한 매튜친구...
어제는 송별회는 아니지만 간이 송별회를 한 번 더 했어요.
제가 주량이 엄청 약한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마시면 바로 취해버려갖고 토할 만큼 마셔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이 다같이 아, 죽을 때까지 마셔보자! 하고 또 미친듯이 술을 샀습니다.
▲얼마나 긁었는지 감도 안오는 술의 양...
▲TV와 HDMI 연결잭, 그리고 마이크를 통해서 노래방을 만들어 저를 위한 마지막 세레나데를 불러줬던 친구들...
그러고 같은 기숙사를 사는 친구는 아니지만 이벤트를 통해 알게 된 친구로서,
어쩌다보니 맨날 기숙사 술자리에 함께 해주었던 친구들이 있는데요.
그 친구들을 불러서 또 엄청나게 술을 마시고...
사실 전날에도 영화 보면서 술을 좀 하고, 가는 날 머지 않았다면서 속풀이도 좀 하고,
그러다가 새벽에 잠들어서 오후 두세시 쯤에 일어났기 때문에 (덕분에 점심에 가기로 했던 식당은 패스됐죠 ^^...)
매번 새벽까지 일어나있는 건 이제 일도 아니었습니다.
▲도중에 술자리를 옮겼었는데, 아주 어두운 교실에 눈만 밝게 내리는 것이 절경이었어요.
시차적응을 미리 연습했달까요...
결국 새벽 5시 반쯤에 파티가 마무리됐는데,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를 바래다 줄 겸, 다같이 배가 고프다 하길래 차가 있는 한 친구가 운전을 해줬어요.
(* 당연히 그 친구는 운전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맥도날드, 버거킹, 하비스트를 다 도는데...
여러분, 캐나다에서 버거킹 문 닫는 모습 보셨나요......?
심지어 캐내디언들도 전부 당황할 정도로 무려 버거킹이 문을 닫고 있었고,
맥도날드는 맥모닝밖에 없어 사고싶은 것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로 문을 닫고 나왔으며,
마지막으로 갔던 하비스트에야 끝내 친구들이 원했던 감자튀김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자꾸 미련남게, 예쁜 하늘을 뽐내는 요즘의 캐나다입니다.
이러고 친구들과 SLC라는 24시간 캠퍼스 건물에서 같이 수다를 떨었는데요.
너 다음에 한국에 온다는 거 진짜냐, 와줬으면 좋겠다, 오면 우리 집에, 밥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캐나다에 다시 오는 것도,
친구가 한국에 방문하는 것도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기분만 한껏 슬퍼진 감도 없잖아 있던 거 같아요.
뭐 술주정꾼들의 한탄이야 늘 그게 그거지만요^^
이러고 어떻게 또 곱게 방으로 들어가 화장까지 지우고 잘도 잤답니다.
D-1
(D-1과 D-DAY는... 제가 사진 찍는 걸 깜빡했어요...)
그러고보니 적지 못한 게 있는데, 사실 D-3날 제 친구 2명이 제 짐싸기를 다 도와줬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없었으면 저는 공항으로 못 갔어요.
제 계획은 다른 교환학생들과 같이 한국으로 짐을 좀 보내고,
그 이후 유럽여행을 떠난 뒤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정이었거든요.
그래서 캐나다 쉬핑을 이용하여 교환학생 생활 중의 물품을 꽤 보냈었는데,
겸사겸사 제 기내용/수하물 캐리어들도 전부 짐 싸기를 도와줬답니다.
박스도 친구 도움으로 괜찮은 녀석 구해서 잘 보낼 수 있었어요...ㅎㅎ
▲이거 다 어떻게 넣지, 양이 별로 많지도 않으면서 어리버리하던 적의 사진...
아무튼, 그때 정말 피똥싸며 고생해준 우리 친구들을 위해,
안그래도 마지막 선물을 이 친구들에게만 주지 못하는 게,
평소에도 잘 해준 것이 마땅치 않아 굉장히 아쉬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진자카야라고 하는 워털루 스시 무한리필 맛집의 한 끼를 제가 사주었습니다...
캐나다 외식비 정말 비싼 거 아시나요...?^^
뽕이야 엄청 뽑긴 했고, 각 3만원 정도의 값을 지불해준 것 같은데,
가장 친했고 제 캐내디언 라이프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었던 친구들에게 이정도면 마지막 선물로 꽤 괜찮았다 봅니다.
▲사진에 나온 건 새발의 피
▲꽤 이쁜 편인 학교 굿즈들
이후 W스토어라고 하는 워털루 대학교 기념품 샵에 갔어요.
원래 학기 초에도 들렀었던 곳인데,
괜히 돈낭비하는 건 아닌가 싶어 아무것도 사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이젠 워털루 대학교라는 곳, 레니슨 기숙사라는 곳에 큰 정이 붙어 버려서,
뭐라도 기념으로 꼭 사가야겠다 싶어 뒤늦게 워털루에서의 마지막날 이렇게 찾아와버렸습니다.
사진으로 찍어두진 않았는데 저는 친구들에게 여럿 컨펌을 받아서 흰 후드티를 하나 샀어요.
후술할 제 계획에서 용이하게 쓰기 위해 지금 입고 있습니다. ^^
이후 저녁에, 근처 마을에서 크리스마스 길거리를 아주 화려하게 꾸며놨다는 소식을 들어 거기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도 차가 있다는 모 친구의 도움을 크게 받았어요. 늘 고마워...^^
▲당연 센터가 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페파피그
이러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잡담을 좀 나누고,
굳이굳이 마지막날에 적겠다며 다른 날은 굳이 사양을 했던 친구에게서 편지를 뜯어냈습니다.
아직 볼 때는 아닌 것 같아 비행기에서 보려고 아껴두었기 때문에, 내용은 저도 잘 몰라요.
과연 비행기에서 읽으면서 제가 울게 될까요...?
▲최초로 제 방에서 이루어진 술파티
기숙사에서만 볼 수 있는 친구들에게 미리 준비했던 선물을 건네고, 편지도 건넸습니다.
제가 안 울어서 그런건지...
다들 굳이 울기까진 않던데, 그래도 감동은 받아주었어요...
온라인 시대에서 이런 아날로그 방식이 오히려 큰 감동을 준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길 참 잘했구나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후 제 방으로 옮겨가 최초로 제 방에서 술파티를 진행했습니다.
한국 술게임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즐거워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친구들과 친해지는 방법 가장 꿀팁이라 생각됩니다. 사용해보세요...^^b
또 술을 마시고 마시고, 술게임을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는 새벽 3시행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잠깐 제 플랜!
사실 저는 런던행 비행기를 오후 8시 45분에 끊어두었기 때문에,
새벽 3시에 공항으로 향하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런저런 사정으로 친구네 아버지 차를 빌려 타려다가 아버지께서 자동차를 수리 맡기셨다던지 등
당초에 계획했던 것과 틀어진 것이 아주 많아,
우선은 택시비를 나누기 위해 같은 날 출국하는 교환학생 친구들과 같이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온 후,
토론토 공항에 짐을 맡기고, 잠깐 잠을 취한 뒤 (그러진 못했지만...),
낮에 친구들과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만나 마지막 파티를 즐기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출국하는 일정을 꾀했습니다.
사실상 공항에서 칼럼을 적고 있는 지금은 출국을 위해 공항에 있는 시간이 아닌 것이죠...ㅎㅎ
▲이런 모습으로 잠깐 시간을 떼우고 있는 저...
따라서, 저는 곧 이 글을 올리자마자 다운타운행 버스에 올라타러 출발해야됩니다.
이것이 D-1날 술게임하다가 자연스럽게 D-DAY로 넘어간 지금까지의 일이에요.
정말 캐나다에서 컴퓨터를 잡을 일은 이것이 마지막일 거 같아서,
그리고 또 오랜 시간 혼자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실은 퍽 오랜만인 일이라,
갑자기 감정적인 모드가 되고 있는데요 ㅎㅎ
마지막으로 제가 캐나다에서의 생활과 지구촌 특파원 활동을 마치며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말씀드려보려 해요.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마치며
기실 지구촌 특파원 같은 공개적인 곳에서 잘 말씀드리기 어려웠을 뿐이지,
초반엔 정말 이모저모 타지 생활에 힘든 것이 많았어요.
그러나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일들을 많이 겪고,
가히 '서사'라 부를 만큼의 캐나다 생활을 열심히 보낸 결과
저는 이렇게 많은 친구들의 배웅 속에서 떠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저는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캐나다에서 떠나는 저 자신에 대해 슬픔보다는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이유를 모르면서도 계속 허무하고, 공허하고, 멍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는데,
계속 생각한 결과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 캐나다 생활의 끝이 도래하는 것이,
마치 내 캐나다의 삶, '캐나다에서의 김규리'가 죽어버리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제가 떠나면 캐나다에서의 저는 죽을 것이고, 얼마나 행복했고 즐거웠든
캐나다에 남은 사람들은 저를 잊고 생활할 것이고 다시 보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겠지요.
사실상 불가능하고, 제가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다시는 미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고 더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이것이 현실감 있게 느껴져 점점 서글퍼지더니,
마지막날이 된 지금에서야 진짜 '납득'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죽음이 슬프더라도, 죽기 그 1초전, 마지막 순간까지도 행복하게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제 가치관에 맞춰,
공항에서 떠난 뒤 저는 최선을 다해 웃고 떠들다 돌아가도록 하려고요.
앞으로 캐나다에서의 제가 더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마지막까지 행복하다 가겠습니다.
이게 제 캐나다 생활의 결론인 것 같아요.
행복했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ㅎㅎ
#지구촌 특파원 활동을 마치며
지구촌 특파원 활동은 제게 정말 특수하고 귀한 활동입니다.
주에 2개씩의 칼럼을 의무적으로 올린다는 것은,
제가 얼마나 성실할 수 있으며 얼마나 남, 그리고 스스로와 약속한 것을 잘 지킬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족에게도 해당 활동을 알린 결과 사실상 반강제적인 생활보고, 생사확인에 가까운 역할도 되었었구요.
이번에는 어떤 글을 올릴지 매번 궁리하고 더 재밌고 유익한 글을 올리기 위해 고민해온
한 순간 순간이 아주 가치있었습니다.
해외생활을 하며 이런 의의있는 활동을 함께하기 정말 쉽지 않은데,
귀한 기회를 어떻게 또 얻어 마지막까지 잘 활동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에요.
지금껏 봐주신 분들께도 너무 감사하며,
합격 당시의 기쁨이 활동이 종료되는 지금까지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어 정말 기뻤다고 말하고 싶어요 ㅎㅎ
여기까지, 제가 마지막으로 남기고자 하는 모든 생각과 일들은 다 남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벌써 글을 쓸 때에는 아주 어두운 하늘이었는데 글을 마치는 지금 오전 8시가 되어 날이 활짝 밝았네요...ㅎㅎ
미련없이 많은 말들을 다 전할 수 있어 기쁜 칼럼이었습니다.
늘 저는 글을 마치며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함께 첨부해왔었는데요.
이번 칼럼은 마지막이니만큼 더욱 감회가 새롭게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정말, 지금까지 제 칼럼을 봐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즐거운 활동에 힘이 되어주셨던 여러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좋은 연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