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9_오스트리아 빈 성 슈테판 대성당, 도나우 강 야경
빈 첫 일정은 Stadtpark부터
▲ Stadtpark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를 나왔습니다. 우선 도시 외곽부터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공원에 하나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덥지 않은 날씨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서늘한 그늘 덕분에 여유롭게 공원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 에밀 야콥 쉰들러
▲ 안톤 브루크너
구글에는 그저 지도로 나와 있지만 둘러보다 보니 이곳은 시립 공원으로 음악가와 예술가의 동상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공원 곳곳에 배치된 이 동상을 둘러보며 공원을 걸었습니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 동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 슈테판 대성당
▲ 성 슈테판 대성당 전경
본격적으로 도시를 둘러 보았습니다. 빈의 랜드마크인 성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으로 높이 솟은 첨탑은 137m에 달합니다. 1359년에 완성된 이 성당에서 모차르트가 결혼하기도 했습니다. 지하에는 흑사병으로 사망한 사망자의 시신과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의 장기 내부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 성 슈테판 대성당 내부
한 번쯤 들어보았던 고딕 양식의 특징은 뾰족한 첨탑과 내부의 색유리창, 즉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내부입니다. 12세기부터 나타난 고딕 양식은 천국을 향한 중세 유럽인들의 염원을 나타냈으며 유럽의 많은 건물이 바로 고딕 양식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사실 지금은 훌륭한 양식으로 평가받지만, 고딕(Gothic)이란 뜻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Goths)에서 유래한 것으로 처음에는 굉장히 비하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로마식 아치를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과 대비되면서, 고딕양식은 종교적인 가치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고딕 양식은 더 높고 웅장한 기술로 지어진 양식으로, 하늘과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철학적 견해도 담은 건축 기법이었습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찍은 빈 전경
성 슈페판 대성당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북쪽과 남쪽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첨탑 끝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빈의 경치를 살펴보며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부는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지만, 꼭대기로 올라오는 것을 비용을 내야 합니다. 이곳에서 사진도 찍고 다음 일정도 간략하게 살펴보며 경치를 감상한 후, 다시 내려왔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족묘가 있는 카푸치너 성당
▲ 박물관 내부
카푸치너 성당 내부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덤이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무덤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유럽사의 특징, 한 왕실이 어떻게 대륙을 풍미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왕씨가 고려를, 이씨가 조선을 다스렸던 역사적 경험 덕분에 왕조와 국가를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한 국가에서 왕조가 바뀌는 경우가 빈번했고, 한 왕조(가문)가 즉 가문이 여러 나라의 정치에 개입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바로 그 경우입니다. 근친혼을 반복하며 순혈을 유지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및 신성로마 제국의 제위에 관여했습니다. 근친혼 때문에 발생한 주걱턱은 가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 합스부르크 왕가 계보도
실제로 카를 5세 때에는 네덜란드, 스페인, 헝가리,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왕국의 계승권을 확보하였고 프랑스와 다투며 이탈리아까지 그 영향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 후 카를 5세의 아들인 펠리페 2세가 이끄는 스페인 합스부르크(스페인 제국과 저지대 지역)와 카를 5세의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가 이끄는 신성 로마 제국을 이끄는 합스부르크로 나뉘게 됩니다.
▲ 프란츠 조세프(1830-1916)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초대 황제인 프란츠 조세프의 무덥도 이곳에 있습니다. 프란츠 조세프는 이른바 대타협을 실시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을 설립하였으며 현명하고 유능하게 제국을 통치하였습니다. 다만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부분은 한계로 지적됩니다.
▲ 가장 사랑받았던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동맹의 역전(외교의 혁명), 7년 전쟁을 거치며 오스트리아 제국을 능숙하게 치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그녀는 내정, 외교, 국방 등에서 여러 치적을 쌓아 당시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던 황제였습니다. 프로이센, 영국, 프랑스, 프랑스 사이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익을 도모했던 그녀였지만 여러 한계도 많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고, 그의 손자인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에게 끝까지 맞서 싸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라는 점입니다. 이는 유럽 국가가 전쟁을 반복하는 것과는 별개로 왕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 합스부르크 가문을 추모하는 공간
1차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도 제위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기 유럽을 지배했던 왕실 가문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여전히 경외와 연구의 대상이며, 이를 반영하듯 박물관 한편에는 추모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도나우강 야경을 감상하며 일정을 마무리
잠시 숙소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한 후, 도나우강으로 향했습니다. 영어로는 다뉴브강으로 부르는 도나우 강은 독일에서 흑해까지 이어지는 강으로 고대 로마 시기에는 라인강과 더불어 주요 방어 거점이었습니다. 왈츠로 유명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도 바로 이 강을 묘사한 곡입니다.
▲ 도나우 강 야경
근처에는 공원도 있고, 도나우 탑도 있습니다. 강과 공원을 구석구석 둘러보며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밤바람을 맞으며 강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역과 자전거 도로를 걸어 본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전편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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