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37_마드리드 근교 톨레도 당일치기 여행
▲ 세고비아, 톨레도 위치(참고: 구글 지도)
세고비아를 다녀온 다음 날 바로 톨레도로 향했습니다. 간략하게 세고비아와 톨레도의 위치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두 도시 모두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 이전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
톨레도는 스페인의 옛 수도로 그 이전에도 고트족과 무어인들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1085년부터 카스티야 왕국(스페인 왕국의 전신이 되는 왕국의 하나)이 톨레도를 점령한 후, 레온-카스티야 왕국을 거쳐 스페인 왕국 초기까지 수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다가 1561년 펠리페 2세는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겼습니다. 신대륙 발견과 함께 스페인 제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지방 세력의 입김이 없는 새로운 도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 스페인의 옛 수도였던 톨레도
톨레도는 철과 검의 산지로 명성이 높았으며, 지정학적으로도 방어하기 유리합니다. 타구스 강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삼면이 강과 맞대어 있으며 고지대인 세르반테스 언덕이 또한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적지가 모두 남아있으며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일정이 촉박한 관계로 알카사르와 대성당 위주로 둘러보았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구시가지
고지대에 있는 톨레도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톨레도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톨레도 역사도시는 1986년에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스페인 톨레도알카사르
구시가지를 쭉 따라가다 보면 알카사르를 볼 수 있습니다. 톨레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건축된 이 알카사르는 로마 시기에는 궁전으로 이용되다가 레콩키스타가 아직 이루지지 않았을 때 재건되어 왕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스페인 내전 때 사관학교로 이용되다가 파괴었으며, 현재는 알카사르 군사 박물관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둘러보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던 알카사르 육군 박물관
원래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유대교와 이슬람교 관련 유적도 둘러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육군 박물관의 규모가 매우 크고, 전시도 자세하게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이 최초의 육군 강대국이다 보니 시기별로 다양한 작품과 전시물을 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 History of the Museum
▲ History of the Alcazar
특이하게 기념품을 파는 상점을 입구에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박물관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의 역사는 곧 알카사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알카사르에 대한 기본 정보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세심하게 제작된 미니어처
톨레도 박물관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정말 다수의 미니어처가 제작되어 군사들의 행진, 전투, 대열을 묘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물관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파악한 후 간단하게 미니어쳐를 보려고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매우 많았습니다.
▲ 다양한 군대를 본뜬 미니어처
▲ 다른 전시관에도 전시된 미니어처
오늘날에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미니어처를 수집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제작된 다양한 수집품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다른 전시관에서도 종종 미니어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유물도 수집하고 있는 박물관
▲ 태평양 일대 지역에서 사용되던 무기들
▲ 일본과 중국의 무기들
대항해시대로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스페인은 필리핀을 거점으로 태평양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말레이시아, 폴리네시아(하와이·사모아 제도 등이 포함된 지역)와 같은 태평양 일대의 섬들에서 사용하던 무기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무기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 필리핀의 유물들
▲ 아메리카에서 사용된 무기들
미서전쟁으로 필리핀을 미국이 빼앗기 전까지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마젤란이 1521년 발견한 후 스페인 제국이 필리핀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무역, 군사, 종교로 얽혀 수백 년 동안 지배받은 필리핀은 아직도 그 영향이 사회에 남아있습니다. 초기에 중남미 일대를 철저하게 약탈하고 그 영토와 자원을 확보했던 스페인 제국인 만큼 아메리카 일대에서 사용된 무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년~1714년)등 여러 전쟁을 겪은 스페인
그러나 이후 스페인은 쇠퇴하였습니다. 사실 스페인은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영국의 스페인 침입을 격퇴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 스페인이 쇠락한 이유는 유럽 대륙의 여러 전쟁에 휘말리며 지중해 일대의 영토와 저지대 지역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입니다.
1700년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카를 2세가 자녀를 남기지 않고 죽었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자신의 손자가 스페인 왕위계승권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프랑스와 경쟁 관계였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루이 14세는 적극적인 대외팽창을 펼치던 때였습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즉 신성 로마 제국은 전쟁을 벌였고, 영국, 프로이센,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이 가세하였습니다.
루이 14세의 손자 펠리페 5세가 스페인의 왕이 되는 것은 승인되었으나, 프랑스와 스페인 왕을 겸하는 것은 금지하는 것으로 전쟁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유럽 대륙의 강력한 패권 국가가 나타나는 것을 모두가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스페인은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뒤이어 스페인은 7년 전쟁에 참전하면서 더더욱 프랑스에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 The Farewell
▲ The Letter
뒤이어 1859년부터 1860년까지 스페인과 멕시코와 전쟁을 벌였고, 이후에도 혼란스러운 내전을 겪으며 1873년~1874년까지 공화정이 설립되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에스파냐 공화국으로 이 시기를 제1공화정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혼란스러워 쿠바의 독립운동과 카탈루냐의 독립까지 선언되었습니다. 왕정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1898년 미서전쟁으로 쿠바를 비롯한 필리핀을 상실했던 시기였습니다. 굵직굵직한 사건 속에서도 작품은 바로 병사 개개인의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편지를 읽는 그림과 가족과 이별하는 장면을 다룬 그림이 바로 그것입니다.
▲ 1874년부터 1923년까지 재건된 군주정
▲ King Alfonso XIII(우), Queen Victoria Eugenia of Spain(좌)
1차 대전에는 중립을 유지하며 군제 개혁을 도모한 국가가 스페인이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다시 왕정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다가 1923년에는 다시 쿠데타가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정권은 1929년 대공황으로 붕괴하고 다시 왕정체제로 회귀합니다. 그러나 왕정도 붕괴하여 두 번째 공화정, 스페인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혼란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1936년 인민 전선이 승리하자, 이에 반발하여 발생한 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입니다.
▲ 현대 스페인군
프랑코 내전을 거쳐 이제 스페인은 EU의 일원으로 유럽, 그중에서도 지중해 일대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최소로 분류되는 이탈리아와 비슷한 해상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편하게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톨레도 군사 박물관.
▲ 철갑옷과 마갑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톨레도 군사 박물관은 우리가 흔히 중세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철갑옷과 마갑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철갑옷과 마갑에 대한 세부 설명과 함께 많은 무기와 갑옷을 한군데에 모아 전시하였습니다.
▲ 깃발
▲ 대포
오랜 시기 사용해왔던 깃발을 따로 보관하기도 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지역과 가족을 대표하던 상징이 깃발에 새겨지면서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청동으로 만든 여러 대표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16세기~17세기에 걸쳐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면서 보다 작은 포가 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포병은 더 정확하게 대포를 발사하면서도 편리하게 대포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서둘러 방문한 산 마르틴 다리(Puente San Martín)
정말 힘들었지만 뿌듯했습니다. 제대로 스페인 역사를 군사적인 소재와 함께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너무 오래 걸려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 빨리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 산 마르틴 다리(San Martin’s Bridge)
▲ 산 마르틴 다리에서 찍은 톨레도 풍경
톨레도는 생각보다 꽤 컸습니다. 그래도 강으로 둘러싸인 고지대의 도시인 만큼, 산 마르틴 마리에 방문했습니다. 산 마르틴 다리는 14세기 후반 구시가지를 서쪽에서도 이동할 수 있도록 지어진 다리이며, 다리 양쪽에는 방어를 위해 건축된 탑도 있습니다.
방문하지 못해 너무 아쉬운 톨레도 대성당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허겁지겁 대성당으로 뛰어가니 이미 문을 닫았다고 직원이 말했습니다. 톨레도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공존하는 도시인데, 그런 부분을 조명하지 못한 부분도 아쉽습니다. 당일치기 여행은 유연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포기한 곳도 있습니다.
▲ 톨레도 내부
▲ 알카사르에서 찍은 톨레도
대신 세고비아처럼 도시 곳곳과 외곽을 걸으면서 사진을 많이 남겼습니다. 마드리드 외곽은 정말 평화롭고 안락했습니다. 날씨도 그다지 덥지 않아 햇빛만 피한다면 오히려 선선하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마드리드, 세고비아, 톨레도 여행을 마쳤습니다. 마드리드의 호스텔로 돌아와서 같은 방을 쓴 포르투갈, 멕시코, 아르헨티나 여행객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대화도 많이 나눴습니다. 인스타그램도 교환했으니 혹시 언젠가 만나게 될 수도 있겠지요. 이제 바르셀로나로 넘어갑니다.
전편 다시보기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0_왜 지구촌특파원에 다시 지원했니?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_마지막 인사는 이즈미르에서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_폴란드를 여행한다면 크라쿠프로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3_폴란드식 족발 요리, 골롱카(Goląka)를 먹고 시작한 여행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4_크라쿠프 중앙역에서 구시가지까지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5_크라쿠프 여행 마무리: 바벨성과 그 외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6_크로아티아를 꼭 가야만 하나요?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7_자다르 올드타운에 들어가면서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8_로마를 간직한 크로아티아 자다르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9_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0_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올드타운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1_크로아티아 여행의 꽃, 두브로브니크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2_로브리예나츠 요새와 두브로브니크 야경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3_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 내부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4_번외: 마지막으로 두브로브니크 사진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5_지금부터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18_베네치아의 명소 산 마르코 광장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0_다비드상에 담긴 정치적 함의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1_피렌체 우피치 미술관과 보볼리 공원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2_즉흥적으로 방문한 피사의 사탑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6_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7_마지막 로마 일정, 로마 야경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8_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빈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29_오스트리아 빈 성 슈테판 대성당, 도나우 강 야경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32_빈 여행의 마무리는 야경과 함께
[이즈미르에서 유럽까지]_#33_서양외교사의 시작, 스페인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