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출국을 준비하면서 종종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언젠가 이 과정을 공유할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기록했습니다. 그때의 사진을 보며 세네갈까지의 입국과정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고우해커스 지구촌특파원 2기, 3기를 통해 튀르키예 교환학생, 유럽 여행기 110여 편을 작성했습니다. 다른 기관에서 글을 기고하면서 국제개발협력·ODA 사업 사례를 직접 답사했으며, 그때의 경험이 국제개발협력 입문으로 이어져 지금 세네갈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나비효과로 이어진 세네갈 파견 근무
코로나19 팬데믹은 제 진로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었습니다. 튀르키예 교환학생 경험 이후 해외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던 저는, 2019년 귀국 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KOICA YP 인턴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발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고 채용 시장이 얼어붙자, 케냐에서 국제개발협력 현장 인력으로 근무하며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귀국하여 국제개발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KOICA 글로벌인재교육원과 국내 소재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하였고, 국제기구 컨설턴트로도 근무했습니다.
방에서 찍은 세네갈 다카르
국제기구에서 데이터 시각화 업무를 맡으며 실무 능력을 쌓은 저는 2024년 2월 석사 졸업 후 진로를 고민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 경력을 계속 이어갈지, 혹은 보다 국내 일자리를 고민하던 중, 변화된 한국의 고용시장과 제 경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세네갈 파견을 결정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국제기구, 공적개발원조(ODA) 개념 이해
강의나 발표를 위해 나름대로 정리해 본 국제개발협력, 국제기구, 공적개발원조(ODA) 개념
이때만 해도 국제개발협력이 무엇인지, 국제기구가 뭔지, 공적개발원조(ODA)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강의를 나름대로 수강하며 일하면서 정리한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학문적으로 보자면 일천하고 거친 요약이겠지만, 적어도 직무를 설정하고 일자리의 관점에서는 최대한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우선 가장 넓은 의미로 국제개발협력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국제개발협력을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와 경제·사회 개발을 지원하는 공공·민간 부문의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개발을 실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협력’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개발협력은 다양한 정부, NGO, 민간기업 등 여러 분야의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는 여러 주체 중 하나가 바로 국제기구입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서는 국제기구를 “양자관계를 넘어 다수 국가들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지역적 혹은 글로벌 차원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따라서 국제기구는 국제문제를 다자적으로 해결하는 상설기구로서 다자외교의 수단이자 장(場)이고, 독립된 행위자라 할 수 있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흔히 알고 있는 유엔(UN)과 그 산하기구, 세계은행(WB), OECD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더불어, 공적개발원조(ODA)이라는 개념, 흔히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과 함께하는 이 개념도 한 번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는 하나의 개념(국제개발협력)이나 주체(국제기구)보다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자금을 출자해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돕기 위해 지원하는 원조로 자본의 출처와 성격을 정의하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외교부에서는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국제개발협력 활동 중 일부로, 중앙 및 지방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이나 이들 기관의 집행기관이 개도국의 경제개발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개도국과 국제기구에 양허적 성격으로 제공하는 자금의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선택은 우선 국제기구에서 부딫혀보기
이 세 가지의 개념을 이해하면 앞으로 꼭 국제개발협력 분야가 아니더라도 외국어를 활용하여 국내 및 해외에서 근무할 때 유익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이라는 국제기구에서 근무한다고 하더라도 꼭 국제개발협력 분야(직무)에서 근무한다고 볼 수 없으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한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네갈 파견을 결정할 때는 동시에 대학원까지 졸업했기에 이제 인생의 방향을 어느 정도는 정해야 했던 때였습니다. 국내 대학원 석사 졸업을 전제로 보통 흔히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을 제1순위로 둡니다. 두 번째로는 자신의 직무 경험을 바탕에 석사 학위를 더해 일자리를 얻는 것, 저의 경우 지금까지 쌓아온 국제기구 근무 경력을 한 번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현재 한국의 고용시장을 살펴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직무 중심으로 일자리가 개편되지만, 결국 다수의 좋은 일자리는 공개채용 과정, 즉 고시의 형태이거나 완연한 경력 이직만이 제한적으로 열려있다.
2. 신입부터 5년 차 직원까지는 사실상 경력이 있는 신입으로 간주되고, 이 과정을 거쳐 좋은 일자리에 신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이직이라고 부르고, 중고 신입이라고 부르며, 직무 중심 채용이라고 부르고 있다. (심지어 2025년에는 경력 기반 신입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3. 그렇다면 한 번 주어진 대로 경력을 이어가도 좋다. 대신 튀르키예와 케냐로 성장했듯 다시 한번 전격적인 변수가 필요하다.
이때 신기하게도 이번에도 근무하던 국제기구에서 해외 파견 일자리 자리가 있었습니다. 1) 동일한 국제기구에서 근무한 경험 2) 아프리카라는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 3) 석사 학위를 받고 유관경력이 있다는 점을 피력하여 세네갈에 지원했습니다. 서류-한국어 면접-영어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을 했고 2024년 7월 1일부터 세네갈에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갔던 세네갈 출국 준비 과정
우선 대한민국 국적의 국민은 대부분 국가 입국할 시 사증을 면제받습니다. 세네갈도 마찬가지라서 90일 무비자 체류 동안 비자를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황열병 예방접종 증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5월 말에 합격하고 6월 한 달 동안 정신없이 출국 준비를 했습니다. 연이어서 근무하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만큼 제대로 주변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바로 출국했습니다.
도착 후 바로 마트에서 사온 물품. 대부분의 식자재는 세네갈 현지에서 구할 수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생필품이나 공산품이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유럽에서 수입하는 가공 식자재,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용품 등이 비쌉니다. 그래서 저는 짐을 96kg까지 최대한 채우고 밥솥, 커피포트, 냄비, 숟가락, 젓가락, 휴대폰충전기, 이어폰 여러 개, 휴대폰케이스, 여분용 키보드, 노트북 거치대, 빨래망, 필기도구, 감자필러 등 한국에서는 당연히 쉽고 싸게 구할 수 있지만 생활용품으로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채소, 과일, 쌀의 가격은 비싸지 않기에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참기름, 간장 등의 양념류도 최대한 많이 챙겼습니다. 물론, 일반 마트에서도 아시아 제품을 팔기도 하고 중국마트도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맛도 다릅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한국마트가 최근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짐을 싸고 정신없이 마무리하면서 미리 숙소를 잡았습니다.
유엔에 근무하는 친구들과 세네갈 다카르에서 거주하기로 결정
영상통화 중 미리 받은 집 사진(주방)
영상통화 중 미리 받은 집 사진(방), 방마다 에어컨과 화장실이 따로 있다.
해외를 갈 때 보통은 도착하고 임시로 숙소를 구한 후 숙소를 구합니다만 저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의 걸친 해외 생활에서 가장 느낀 점은 거주지를 빠르게 확정하고 정착하는 1~2주가 첫 한 달에 영향을 미치고, 그 한 달을 집중적으로 보낼 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 편리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튀르키예 이즈미르에서는 기숙사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의 도시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코로나19에 체류했던 케냐의 경우, 회사의 도움으로 바로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네갈의 경우 세네갈은 비교적 치안이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당연히 조심해야 하고 외국인이 대중교통을 타기 어렵습니다.
집에서 도보로 오분 거리에 있는 햄버거 가게
우선 저는 세네갈 수도 다카르(Dakar)의 플라토(Plateau) 지역을 골랐습니다. 이 지역은 수도 다카르의 중심지로 대한민국 서울을 기준으로 종로구나 중구와 비슷합니다. 주변에 마트, 카페, 빵집, 식당이 도보 거리에 있고 도심인 만큼 고속도로로 바로 진입해서 출퇴근 시 택시를 사용하기에도 용이했습니다. 회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회사가 도시 북쪽에 있고 그 지역이 거주지라서 외국인인 제가 퇴근 후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다음 숙소를 구했는데 인터넷으로 플라토 지역에 좋은 집을 발견했습니다. 주로 페이스북이나 왓츠앱 그룹에서는 집을 구하는 수요가 항상 있습니다.
거실에서 재택근무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저녁을 먹기도 한다.
그때는 이렇게 자주 식사를 할 줄 몰랐는데
2024년 연말 10명 이상 집에 왔을 때 만들었던 음식과 친구들이 가져온 음식
우선 화장실이 방마다 따로 있고 집의 위치도 좋았습니다. 관리비 외에 전기세와 가스비만 저희가 부담하고 경비, 와이파이, 집기 등의 시설은 모두 집주인이 부담하는 조건도 좋았습니다. 청소해 주시는 분도 오래 일한 분이어서 정직하고 시간도 잘 지킨다고 들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그 외 생필품은 서로 나누어서 쓰고 월말마다 정산했습니다. 총 3명이 사는 곳인데 직전의 한 명이 비어 새로운 사람을 찾던 차였습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이 모두 유엔에 근무하는 점도 가장 큰 선택 이유였습니다. 각각 유엔산하기구인 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세네갈사무소와 UNDCO(유엔 개발조정실) 지역사무소에서 JPO(국제기구초급전문가)에서 근무했기에 앞으로 국제기구 직원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화상으로 면접 아닌 면접을 보고 저는 몇 가지를 솔직하게 정리하여 전달했습니다. 1)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에 근거하여 국제기구 직원으로 파견되기에 서로 동질감을 가지고 해외생활을 할 수 있다. 2) 여러 송금시스템을 활용하여 원하는 방식(달러, 유로 등)으로 집세를 내도록 하겠다. 3) 사람이 오고 나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이를 위해 1주일의 집세를 별도로 지출하겠다. 이 비용으로 월세에 보태는 대신에 빠른 선택을 해달라. 4) 이미 튀르키예, 케냐, 한국 근무 경험이 있기에 문화적 차이나 생활양식의 차이가 있더라도 존중하고 이해나갈 자세가 되어있다.
며칠 후 감사하게도 바로 합격(?) 연락을 받았고 재직증명서와 계약서를 보냈습니다. 신원을 보증하는 대신 별도의 보증금 없이 집주인과 계약한 친구에게 매달 일정량의 월세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바쁘더라도 퇴근 후 사용했던 공유오피스에서 지인들과 인사를
출국 전 WFK IT 봉사단 행사에도 참석
이렇게 빨리 집을 구할 줄 몰랐다고 사람들이 모두 놀랐는데, 그때의 빠른 선택 덕분에 세네갈 입국 후 같은 곳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6주의 한 번, 그러니까 한달 반을 주기로 외국인 친구들(주로 국제기구나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종사하는)을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일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다카르 도착
우선 이스탄불로 출발
경유한 이스탄불 라운지에서
이스탄불 공항을 떠나면서, 언젠가 튀르키예는 한 번 오기로 했고 실제로 튀르키예를 방문했다.
다카르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
이렇게 정신없이 물품도 챙기고 주변 사람도 보고 집도 구한 후 정말 세네갈에 갈 때가 되었습니다. 6월 28일 밤 11시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8시간 경유한 후, 세네갈 다카르에 6월 29일 밤 9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도착 후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만, 미리 현지 직원에게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부탁했고, 바로 왓츠앱으로 전화를 걸어 현지 직원과 공항 직원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한국인에게 현찰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소식을 들어 미리 부탁했던 것인데, 다행히 현지 직원의 말을 듣고 별다른 문제 없이 공항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집에 도착 후 들어간 방
일단 출근을 위해 옷부터 정리
다카르 공항에서 나와 1시간 정도 택시를 타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같이 친구들이 마중나와 짐을 옮겨주었고, 우선은 밤이 늦었기에 쉬고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숨가쁘게 다카르에 도착한 지도 벌써 9개월입니다. 일하면서 지원하고, 지원하고 준비하고, 준비하면서도 일하고 집을 구한 바쁜 순간이 일단락된 것입니다.
2024년 6월 29일 토요일, 다카르에 도착한 후 7월 1일에 바로 출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