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 글은 리스닝 노트테이킹에 관한 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어 듣기가 크게 힘든 편은 아니었지만 리스닝 파트를 유독 부담스러워했고 점수는 20점대 중-후반 정도였는데요. (오피셜 가이드 연습문제 기준으로 24-27점 왔다갔다 한 것 같습니다.) 제 문제는 노트테이킹 때문에 귀로 가는 집중력이 자꾸 흐트러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노트테이킹을 최소화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시험 며칠 전까지도 힘들어서 이런저런 방식을 시도하다가 제게 맞는 방법을 고안해봤고 처음으로 만점을 받게 되어서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리스닝 공부에 대한 좋은 팁들은 이미 게시판에 많이 올라와있기 때문에 저는 구체적인 노트테이킹 팁에 대해서만 이야기드리려고 합니다. 이 방법은 토플 리스닝이 제대로 된 노트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잘 듣고 이해만 한다면 다 풀 수 있을 정도의 길이와 난이도로 출제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그냥 손 놓고 듣기만 하면 그것대로 불안해서 집중이 안 되고 특히 지엽적인 디테일 문제에서 틀리기 쉽기 때문에 무언가 적기는 적어야합니다. 그래서 제가 쓴 방법은 다시 보기 위한 필기가 아니라 듣는 중에 기억을 강화하기 위한 표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방법은 듣는 데 최대한 주의를 집중시키고 기억력에 많이 의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모든 분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리스닝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만 (LC 20점 중반 이상 정도의) 유독 듣기와 쓰기를 병행하는 게 힘들어서 고생하는 분들에게 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1. 안 보면서 쓰기
보통 노트테이킹을 할 때는 종이를 보면서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선을 종이 위의 글자에 두게 되면 주의력이 그만큼 청각에서 시각으로 분산됩니다.
특히 강의 내용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눈은 내가 기록한 이전 내용에 머무르게 되니 (+ 제대로 적었나,
더 적어야하나,
덜 적어야하나 하는 고민들은 덤으로)
자꾸 내용 이해에서 뒤쳐지게 됩니다.
따라서 초점을 화면 여백이나 모니터 테두리 등 시각이 흐트러지지 않는 곳에 고정시켜 두고 손만 자동적으로 움직여야 귀에 들리는 것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몰입해서 들어야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이해하고 정리할 여유도 생기고요.
(강의 문제는 중간에 칠판 필기식으로 고유명사 등이 뜨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예 화면 멀리로 시선을 돌려버리거나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단점은 외관상 넋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정도지만 칸막이가 있으니까요.
이 노트테이킹은 말씀드렸듯이 문제 풀 때 참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글씨가 엉망이 되는 것은 괜찮지만,
나중에 종이가 모자라면 안 되니까 글씨가 너무 크거나 줄이 지나치게 흘러내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일은 생기지 않아야합니다.
(이건 연습하면 금방 되고 사실 힐끗힐끗 보는 정도도 괜찮습니다.)
2. 들리는 속도-쓰는 속도 싱크 맞추기
1번이 최대한 잘 듣기 위한 방법이라면, 2번은 최대한 많이 듣기 위한 방법입니다. 속기사가 아닌 이상 사람이 받아 적는 속도가 들리는 속도에 비해 느릴 수 밖에 없는데요,
더군다가 토플 리스닝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쏟아내기 때문에 한번 뒤쳐지면 속된 말로 말리거나 다시 따라잡더라도 중간중간 정보가 붕 뜨게 됩니다.
이러면 내용을 오해하게 되고 특히 함정 문제에 빠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듣기와 쓰기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어야 내용을 빠짐없이 들을 수 있고,
이렇게 하려면 필기가 아닌 표시 수준으로 노트테이킹을 해야합니다.
제 방법은 앞 스펠링을 한 두개씩만 적는 거예요. 빠르게 들리면 하나만,
너무 빠르게 들리면 생략,
들리는 거에 집중 안 돼도 생략,
가끔 느리게 들리면 세개까지..
규칙은 없고 단지 들리는 속도에 뒤쳐지지만 않게 주의하면서요.
This
meant she had to stay up late or wake before dawn to write the books she
wanted to read.
이 문장을 예로 들자면, 저게 들리는 속도대로
This meant she had to stay up late or wake before dawn to write the books she wanted to read.
이렇게 받아적는 식입니다.
완성된 단어라곤 거의 없지만 어차피 보이지 않으니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종이를 안 보고 들리는 속도에 맞춰 기계처럼 손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내용 전환이 이루어지는 부분에서는 빠르게 줄을 그어서 중간중간 나누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머릿속에서 함께 정리될 수 있게요.
저도 그랬지만 약어를 (ex. 자음만 적는 식으로) 활용하는 법이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분들은 들리는 것을 바꿔서 적는 과정이 오히려 헷갈리기 때문에 이 방법이 특히 편할 수 있습니다. 기호도 그냥 내가 편한 것만 (저는 화살표나 부등호 정도만 썼습니다) 바로 나온다면 쓰시고, 이것도 시간이 걸린다면 안 써도 된다고 봅니다. 중요한 부분만 파악해서 적는 것도 사실은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에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문제가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기도 했고요.
다만 과학 지문은 예외로, 중요한 원리 같은 경우 정보를 꽤 찬찬히 알려주기 때문에 이때는 잠깐 종이를 보면서 그림을 (화살표로 별의 움직임, 선으로 지층 등) 그려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듣기에 방해되지 않는 한에서요. 예쁘게도 말고 초등학생 그림 정도로...
3. 고유명사 한글로 쓰기
이건 많이들 하시지만, 화학물질이든 지역명이든 사람 이름이든 고유명사가 나오면 엉터리 한글로 바로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Africa = 아프리 등..) 스펠링이 어려운 경우에 고민하는 데 드는 당황스러움과 시간을 최소로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스펠링이 서로 겹치는 고유명사들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문제풀이할 때 노트 참조가 필요할 유일한 문제인 detail 문제가 주로 고유명사 부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 누구누구와 비교되는 누구누구의 의견, 고래가 출현한다고 지목된 지역이 아닌 것 등..)
다른 것들과 달리 고유명사는 듣고도 (심지어 쓰고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한글은 혼란한 노트 사이에서 등대처럼 눈에 띄기 때문에 저런 디테일 문제가 나올 경우 바로 찾아볼 수 있어서 편리하고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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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완성되는 노트는 줄도 흘러내리고 암호같은 알파벳이 난무하는 혼돈의 장이 됩니다.
대충 그려보면 아래와 비슷하겠네요.
as t s les of g kr st b n p so me y pro a eff
t m ad pi wo m t p an dr ? -> th k ho ma us
아프리, 아틀, 멕시 = wi th cl
....
.....
나중에 알아볼 수 있을까..싶지만 사실은 이 방법으로 잘 들리기만 했다면 다시 볼 일이 없습니다. 굳이 저렇게 손으로 적는 이유는 저렇게 적는 행위 자체가 꼼꼼하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손으로는 앞 글자만 쓰지만 머릿속에서는 온전히 필기를 한 것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이 노트테이킹은 참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리는 내용을 놓치지 않고 머리 속에 잘 눌러두기 위해서 쓰는 방법인데, 일단 그렇게 이해하고 기억해둔 내용은 문제 푸는 시간 동안만큼은 충분히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엔 정석적으로 노트테이킹을 하고 내가 적은 내용에 의지했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풀 수 있었어요.
토플 리스닝의 난이도가 그 이상으로 (기억력의 한계를 넘는 정도로) 나오는 경우는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그런 것 같고요.
다만 이 방식이 모든 분들께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듣기와 단기기억력이 뛰어난 분들은 노트테이킹을 안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고, 집중력이 워낙 좋은 분들은 종이를 보면서 노트테이킹을 해도 별로 방해가 안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쓰는 적정량도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conversation 문제에서는 쓰는 것을 최소화했습니다. 이때도 시선은 물론 종이 바깥에...)
평소 리스닝에 큰 두려움이 없는 데도 유독 노트테이킹을 할 때 산만해지고 잘 안 들리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시험삼아 써보시고.. 만일 좋은 결과가 있다면 같은 문제로 스트레스 받았던 저로서는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