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배우는 과정이 맞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연구하는 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까지도 배워야합니다.
그래서 영어가 엉망이면 저널 논문에서 리젝을 주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곳이 학계입니다. 그에 따라, 글쓰신 분은 연구 결과를 주고서 논문을 대신 얻어낸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연구 결과를 받아서, writing 이라는 그들의 능력을 제공하고 논문을 얻어낸 것이 되겠네요. "그저 내가 써놓은 것을 다시 고쳐쓰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이라고 하셨는데, 자기 글을 쓰는 것보다 남이 써놓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자신의 글로 고쳐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 번 경험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밖에 없다는 것을"이라는 표현을 쓴 자신을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의 오해들 중 하나가, 자신이 하는 프로젝트는 자신이 아이디어 구상부터 모든 것을 해내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연구실에서 교수가 자기 돈으로 학비 내 주면서, 학생 혼자서 아이디어 구상부터 모든 것을 해내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교수가 큰 그림과 방향을 정해놓고 학생에게는 한 조각을 떼어내어 주는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한 조각이 완성되면 계획된 다음 단계로 이끌고, 이끌고 이런 식입니다. 만약 학생이 (교수가 미리 그려둔) 그 다음 단계를 알아서 하면 그냥 둡니다. 그것들을 학생들은 자신이 혼자서 해내었다고 생각하지요.
물론 제가 그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여기 누구도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박사과정은 배우는 과정이 맞고, 아이디어 내고 프로젝트 하고 결과 얻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와 동일하거나 또는 더 중요한 것이 결과물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는 것 잊지 마시고, Technical Writing 또는 Academic Writing 관련 수업을 꼭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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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배우는 과정일까요? 언젠가 페북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고, 불평만 남았다면 그 때가 그 조직을 떠나야할 때'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제가 지난 3년 간 해왔던 일들을 돌아봤습니다. 저의 짧지 않은 박사과정은 배운다기보다는 착취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석사학위 기간 동안 배운 것을 쥐어짜내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면, 교수님과 공동저자 (같은 박사과정생이거나 다른 학교 교수이거나 아니면 포닥이거나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네요.)들이 프리라이딩하면서 자신의 권리만 요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엇습니다. 그리고 논문이 탑티어 저널에 실리는 순간 쏟아지던 그 멸시어린 시선들. 처음엔 '질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멸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까짓게 어쩌다가 운 좋게...' 라는 시선.
저는 영어를 못합니다. 프루프리딩도 여러 번 받아야 하고, 한 줄 쓰는데 고통도 엄청납니다. 그런데 내가 쓴 내용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영어 한 글자에만 쏟아지던 비판과 뒷담화. 공동저자라는 사람이 하는 일은, 그저 내가 써놓은 것을 다시 고쳐쓰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허탈함. 원고를 작성할 때도 대충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제1저자는 나니까...'라고 합리화하며 넘어갔던 일들을 후회합니다. 제2 저자가 새로이 cite하는 문헌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이론적 근거도 원고가 거의 완성될 때야 알았다고 말하는 수준인데, 왜 저는 참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빠지는 일이라서 피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는 재밌습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만, 평균 정도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힘겹습니다.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가진 무언가를 그저 빼앗고 싶어만 하는 사람들에게 둘려쌓인 느낌이라면, 그냥 학계를 떠나는 것이 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