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짧지 않은 박사과정은 배운다기보다는 착취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석사학위 기간 동안 배운 것을 쥐어짜내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면, 교수님과 공동저자 (같은 박사과정생이거나 다른 학교 교수이거나 아니면 포닥이거나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네요.)들이 프리라이딩하면서 자신의 권리만 요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엇습니다. 그리고 논문이 탑티어 저널에 실리는 순간 쏟아지던 그 멸시어린 시선들. 처음엔 '질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멸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까짓게 어쩌다가 운 좋게...' 라는 시선.
저는 영어를 못합니다. 프루프리딩도 여러 번 받아야 하고, 한 줄 쓰는데 고통도 엄청납니다. 그런데 내가 쓴 내용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영어 한 글자에만 쏟아지던 비판과 뒷담화. 공동저자라는 사람이 하는 일은, 그저 내가 써놓은 것을 다시 고쳐쓰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허탈함. 원고를 작성할 때도 대충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제1저자는 나니까...'라고 합리화하며 넘어갔던 일들을 후회합니다. 제2 저자가 새로이 cite하는 문헌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이론적 근거도 원고가 거의 완성될 때야 알았다고 말하는 수준인데, 왜 저는 참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빠지는 일이라서 피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는 재밌습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만, 평균 정도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힘겹습니다.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가진 무언가를 그저 빼앗고 싶어만 하는 사람들에게 둘려쌓인 느낌이라면, 그냥 학계를 떠나는 것이 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