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할수 있는 글을 보게 되어 저는 참 좋은데, 대부분의 댓글은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아마 이 나그네님의 글이 너무 "훈계조"라서 공분을 산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본질은 제대로 꼬집어 주셨다고 봅니다. 이분의 의도는 "정말 학문이 좋아서 열정으로 온 사람들이 있을 곳이어야 하는데, 한국의 특성상 학벌, 명예직 등만 보고 박사과정 와서 학문이 뭔지도 모르는채 나는 박사과정에서 힘들게 살고 입네" 하는 분들이 학계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
글쓴이가 본인 똑똑하다는 말도 아니고, 학계에 어울리는 똑똑한 사람들만이 (대스타급) 여기에 들어와야 한다는 말도 아닌것 같은데요.
또 나그네님이 쓴글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자신감 없어 하면서 꾸준히 열심히 파고 또 파서 결국 결과를 뽑아내는 분들한테 쓴 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매일매일 '이길이 내길 맞나' 하며, 있는 자존감 없는 자존감 벅벅 긁어 가며 하루하루 짜내듯 뭐라도 뽑아보려고 연구하면서 힘들어 하는, 진정한 박사학생들을 노린 글도 아닌것 같고요.
박사과정에 입학하기까지는 소위 "똑똑함, 스마트함"밖에는 보여줄게 없는것 같습니다. 정작 박사과정 이후에 필요한것은 연구하는 실력과 머리인데, 박사과정 전까지는 연구를 독자적으로 할 준비도 기회도 거의 없으니 연구와 학문에 정말 스마트한지 알길이 없죠.
그래서 그때까지 보여준- 학사-석사수준에서의 스마트함으로 판단하는 것이 그래도 연구에 성공할 자질을 비교적 높게 갖춘 사람으로 여기고 뽑는거고요. 그 기준들이 GPA, GRE, 기타 등등 이겠죠.
그런데 아시안의 풍토상 점수에 인플레가 심하고, 시험과 점수에 강점을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족보부터 시작해서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정보를 모으고 중간정도되는 머리만 있고 노력만 성실하게 하면 고득점이 가능하죠. 하지만 그 정보력과 성실함이 연구에 적합할지는 의문입니다. 다들 해봐서 아시지 않나요. 그러니 일단 이런 스마트함을 기준으로 학생을 뽑는 학교가 기본 조건 다 채우고 "연구하고 싶다는 척"을 하는 학생을 입학사정에서 구분하기란 어려워서, '그냥 교수나 해볼까'하는 학생을 뽑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스마트함으로 뭘하고 먹고 살까 하다가 직장에 가는것보다 박사과정이 좋은것 같아서 점수되겠다, 그만하면 본인 머리도 부족하지 않겠다, 교수하면 웬만한 명예와 부족하지 않게 먹고 살 수 있고 안정적인 직업이겠다, 고려해서 박사과정에 온 사람들 많죠.
그렇게 해서 꾸준히 열심히 하면 좋은데, 과정 자체가 길고 험난한 여정이다 보니, 코스웍이 끝나고 혼자 연구를 오래 해야하는 시점이 오면 대충 연구는 눈가리고 아웅하듯 하는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원래 학문에 열정이 있어서 온 곳이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족보가 존재하지 않는 연구라는 행위는 점수를 내고 칭찬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성실히 하기 어려운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게 본인이 어려운건 어려운건데... "나는 박사과정에 있어서 힘든 사람이다~"라는 코스프레를 인위적으로 거창하게 하고 다닌다던지, 엉뚱하게 먹칠하듯 하고 다니기도 한다는거죠. 주로.. 박사과정에 입학한 초기에 이런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원하던 박사과정 입학도 했겠다, 코스웍도 따라갈만 하겠다... 근데- 코스웍 끝나고 3~5년차 되면 그 코스프레 더 못하더라고요. 연구로 실적을 보여야 하는데 할줄 모르고 결과가 없으니 점점 고개가 숙여지는거죠..
(이것도 학교 레벨이 탑텐, 상위급으로 올라갈수록 어중이 떠중이들이 입학하기란 매우 힘들므로 이런 코스프레나 하는 학생은 줄어드는것 같네요.)
하지만 적당한 학벌과 점수와 머리를 가지고 박사과정에 지원하는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인생 자기가 결정해서 사는 세상인데. 맞지 않는 사람들아, 떠나가세요, 라고 말해도 소용없는게... 저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들 몇번 봤거든요. 박사과정 시작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몇몇 학생에게는 "넌 그냥 다른거 하는게 어떻겠니, 세상에 재밌고 즐거운게 더 많다~"라고 권하시는거요. 교수님들이 보기에도 연구보다 다른게 관심 있는 학생들은 좀 만류하시더라고요. 그래도 본인이 하고 싶다고 붙어있는데 뭐 억지로 차버리시진 않았지만..
좀 더 길게 보면, 컨퍼런스가면 이동네 계신지 20-40년된, 쟁쟁하게 살아남아서 활발하게 리서치 하시는 교수님들 보면 결국 정말 그 연구분야가 좋아서 신나게 연구하시는 분들밖에 없습니다. 나이들이 있으신대도 불구하고 연구주제 이야기하실때는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 하시는 연세있으신 교수님들 보면 대단하시다는 느낌이 들수밖에 없습니다. 그분들이 쌓아올린 학문적 업적때문만이 아니라,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살아있는 열정때문에요. 저렇게 오랜시간 열정이 식지 않으니 리서치를 계속해서 오랜시간 활발히 할 수 있는거겠지,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그럭저럭 먹고 살아보자 라고 생각해서 박사과정 들어온 사람들은 애초에 자리 못잡고 다른데로 빠지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거 같네요. 그러니 그냥 코스프레만 하고 다니는 분들의 다수는 때가 되면 학계에서 보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신경 안씁니다.
(물론, 하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박사과정에서 연구를 잘할 수 있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공부머리가 정도껏 뒷받침되어야 연구도 시도할 수 있는거죠..)
저는.. 제가 나이브하게 마음만 있고, 연구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나중에 학계에서 안보일까봐 노심초사하기 바쁩니다.ㅠ 퍼블리쉬 해야 한다는 압박도 상당합니다. 리서치가 좋아서 시작한건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결과 없으면 학계에서 팽당하는게 당연한" 세상에서 압박도 심하죠. 그래서, 네, 징징 대기도 합니다. 속이 타들어가고, 시꺼매지고, 멍이 든것 같습니다. 이렇게 압박 받다가 리서치가 좋아서 시작한 초심을 까먹기도 합니다. 그런 제 자신을 발견하면 슬프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냥 과정이겠지, 지나가겠지 스스로 달래곤 합니다.
그럼 전 오늘도 더 주저리 늘어놓고 싶은마음 접고 '제가 여기 있을만한 사람 이라는걸 증명하러 가기 위해'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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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공부 하면서 좁게나마 생긴 네트워크를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있노라면,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많아요. 학문에 뜻이 있다는 것은 저렇게 연구하는 것을 뜻하는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 멋진 박사학생들, 선배, 또는 후배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유능하신 분들의 수만큼 정말 한심하게 공부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도저히 뭘 연구하는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고 심리적 자위행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기자신을 거의 방관하다시피 하는 분들. 정말 진심으로 하루빨리 박사과정의 목적을 재정비하시거나 어서 빨리 학계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된 특징은 시도때도 없는 정신적 자위행위. 사실 누구나 다 한번쯤은 남몰래 "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세상은 왜이리 날 힘들게 하는걸까" 라고 신세한탄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봤겠죠. 그런데 이런 정신적 자위를 하다가 그 값싼 만족감에 취한 어느 순간부터 정말 자기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고, 그 모습에 자아도취해서 남들에게까지 그 모습을 알아달라고 하는 그 처절함이 참 딱합디다.
박사과정이라는 험난한 여정은, 할줄 아는게 없어서 들어오신 분들, 플랜 b 로 들어오신 분들, 또는 박사학위를 하고나면 온세상이 갑자기 자기위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들어오신 분들을 위한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공부하고 연구를 해서 학계, 더 나아가 세상에 이바지하고자 공부 시작한 사람들이 노는 물에 흙뿌리지 말고 하루빨리 그만두시고 그 시간과 노력으로 사회에 나가서 돈 많이 버십시오. 박사하는 시간과 노력이면, 사실 정말 많이 벌 수 있어요. 그리고 학교 속여서 박사 합격할만한 정도의 거짓말 실력이면, 진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세일즈맨 될 수도 있으니, 그대들의 미래는 창창하고도 남아요.
사실 박사를 우습게 알고 어쩌다가 운좋게 들어와서 앉아계신 분들 때문에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 유학파 차별 현상 등등이 생기는건 아닌지... 정말 배움이 좋아서 시작하게 된 여정이라면, 폭풍이 몰아쳐도 길을 찾아 헤쳐나가게 되어있어요. 머리가 나쁘지 않는한, 그걸 모르고 시작할리는 없거든.
박사과정, 또는 공부가 많이 힘들다는걸 아는 사람으로써, 학계에서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박사과정이 자신에게 안맞다고 생각하시면, 제발 좀 떠나세요. 그대들이 꼴보기 싫어서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아무리 망가져 있는 나라이더라도 내나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그대들이 우리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이 학계 말고도 많다는 걸 알아서 그래요.
이 글 보고, "내 얘기네" 하시는 분들은 푸념 그만 하시고, 떠나세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