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미국친구인 Matt 이 내게 물었다. “영어 얼마나 오래 공부했니?” 문득 대답하기가 민망해진다. 공식적으로는 중고교 6년에 대학영어 수업 듣고 토플 공부한 시간을 합쳐 7년쯤 되겠지만, 어디 그뿐일까. 실제로는 10년도 넘겠지. 그런데도 여전히 Native 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회화능력을 생각한다면 다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참 잘한 일 중에 하나가 일어를 세 쿼터 내내 꾸준히 배운 것이다. UCLA 의 제2외국어 시스템이 정말 좋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어를 배워서 좋은 친구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게 더 큰 소득이다. 일본 친구들도 뿐만 아니라 일어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미국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으니까. 처음 배울 때는 히라가나도 몰랐지만 이제는 친구들과 일어로 대화하고 이메일도 주고받는다. 귀국할 때 일본 나리타 공항을 경유해서 왔는데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배운 일어로 쇼핑하고 좋아하는 일본라면을 시켜먹으면서 어찌나 뿌듯하던지. 오늘은 내가 경험했던 UCLA 의 제 2외국어 수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학기 개강 후 일본어 수업에 들어갔다가 날짜별로 빽빽하게 짜여있는 수업 계획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우리는 포탈에 수업계획서도 잘 안 올라오는데 그 계획표에는 숙제 페이지수, 시험 범위까지 꼼꼼하게 다 나와 있었다. ‘과연 제대로 따를까?’ 싶었지만 3쿼터 내내 거의 변동 없이 99.9% 충실히 진도를 나갔다. UCLA의 외국어 수업은 5일내내 수업을 한다는 것이 특징인데 월수금은 discussion(토론), 화,목요일에는 lecture(강의)를 한다. lecture 시간에는 교수님께 문법, 단어 및 쓰기를 배우고, 이 때 배운 것을 discussion 시간에 15명 정도 되는 분반에 들어가서 조교, 친구들과 함께 1시간 내내 직접 말하고 들으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매일매일 말하고 듣는 것이 포인트라, 출석도 비중이 높고 숙제도 많다. discussion인 월 수 금요일에는 매일 2-4페이지 정도의 문장쓰기 숙제를 제출해야 하고 조교는 꼼꼼하게 읽고 틀린 것을 수정해서 다음 시간에 돌려준다. 단어 및 한자(간지) 시험도 매일 치러야 하며, 다섯 단원을 배우는 한 쿼터(10주)동안 발표 3번, 작문도 2번이나 해야 한다. 발표를 할 때 마다 꼭 포함해야 할 문법포인트 5개와 분량을 정해주고 대본도 제출하게 하는데 꼼꼼하게 나눠진 항목에 따라 과학적으로 채점하고 결과와 개선할 점을 적어서 그 다음시간에 돌려준다. (발표할 때는 완전히 외워서 해야 한다....덜덜) 작문을 할 때도 정해진 문법포인트를 꼭 포함해서 글을 써가야 하는데 한 번 제출하면 조교가 교정을 해서 돌려주고, 1차 수정본을 내면 또 교정을 해서 돌려준다. 그걸 수정한 뒤 3번째로 제출하는 최종본 뿐만 아니라 1차, 2차 수정본을 모두 포함해서 채점을 하니 확실한 피드백에 실력이 느는 것은 물론, 꼼꼼한 코멘트가 미안해서라도 대충 해갈 수가 없다. 또한 발표도, 작문도 실생활에 써먹기 유용한 내용을 주제로 내 준다. 개인 발표도 있지만 주로 친구와 둘이 짝을 지어서 할 때가 많은데 ‘병원놀이’도 하고 ‘고민상담’도 한다. 작문도 ‘구인광고 보고 구직 이메일 보내기’ 라든지 ‘펜팔 잡지 보고 맘에 드는 사람에게 편지 쓰기’ 등 재미있는 내용들이다. 일어로 설문조사를 한 뒤 정리 보고서를 쓴 적도 있다. 각 단원이 끝날 때마다 단원테스트를 보는데 학기 말에는 기말고사를 3번이나 본다. 문법시험, 작문시험, 그리고 말하기 시험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매 학기 말마다 친구 3-4명이 한 조를 이뤄 일어로 연극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꼭 포함해야 할 문법포인트가 있고, 한 배역당 7문장 이상 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숙제 많고 시키는 거 많고 빡세지만 하루 하루 주어진 것을 따라가다 보니 그야말로 실력이 팍 팍 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어, 영어, 불어, 일어에 이어 나의 5번째 언어는 무엇이 될 진 모르겠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된다면 이 방법대로 하고 싶다. 사실 고백하자면, 원래 나는 일어수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교환학생 첫학기에 수강신청에 실패하는 바람에 고생하다가 마지못해 넣은 게 일본어였다. 그 당시만 해도 못 듣게 된 수업 생각에 우울했었는데... 그때 내가 만약 전공수업만 전부 채워 들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일반적으로 미국에 가면 다 native친구들을 쉽게 사귈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좀 그렇지 않다. 애초 다인종국가라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매우 관심을 보이며 막 친해지고 싶어하는 미국애들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팍팍한 전공수업을 들으면서 친구 사귀기는 더 힘들다. 서로 자기 공부하기에 바쁘니까.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인끼리만 모여 지내거나, 외국인 친구가 없어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본어 수업을 들으면서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은 미국 친구들을 참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다들 너무나 친절하고, 마음이 열려 있어서 늘 웃고 인사하고 지냈다. 서로 만나면 서툰 일어로 얘기하며 서로 고쳐주고, 또 영어도 고쳐주면서.,,첫 수강신청에 실패했던 그 '비운'에 감사한다. 인생은 새옹지마 언어를 배우는 데는 직접 말하며 배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외계어가 아닌, 생활 속 외국어로 다가온다. 한번은 ‘영어 발음’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친구와 짝지어서 영화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친구와 똑같이 따라서 발음하며 역할극을 하곤 했다. 그 때 교수님은 우리 발표를 캠코더로 찍어서 매번 보내주시고 스스로 평가 및 분석을 해오도록 시키셨다. 내 발음을 직접 들을 때면 정말 어색했지만; 그럴 때 스스로의 문제점을 잘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