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따스했지만 바람은 차가웠던 어느 토요일.
외투로 내 몸을 감싼채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위해 강남역으로 내 발걸음을 옮겼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강남역 일대에는 많은 커플들이 있었다.
서로의 손을 꽉 잡은채 무엇이 그리 행복한지 커플들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들이 가득했다.
그러한 커플들을 보며 나는 왜이리 천천히 걷는건지 홀로 궁시렁 거리며
커플들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갔다.
한참을 걸었을까?
어디선가 내 코에 익숙한 향기와 함께 낯익은 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혹시 그 친구 일까? 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상기된 마음으로 그녀의 곁을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히 그녀는 아니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하철을 타러 역사 안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벌써 3년이 지났다.
2012년 4월에 헤어졌으니, 헤어진지도 3년이다. 그래도 난 아직도 그친구가 그립다.
군대 가면 무조건 헤어지게 될꺼라고 생각하여, 기다리겠다는 그 친구의 말은 무시하고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마음에도 없는 말, 상처주는 말 다 해가면서 그 후의 일은 생각하지도 않은채 그저 헤어지기 위해 모질게 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군입대를 앞둔 여름,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다.
내 잘못을 알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문자를 보냈다. 보고싶다고, 그립다고.
아니나 다를까, 문자 내용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다시 싸우게 되었다.
헤어진 이유가 너탓이니 내 탓이니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의미 없는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싸우기를 몇번, 나는 군대에 입대하였다.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까지도 그녀가 상당히 보고 싶었다.
진한 포옹 한번이면 이 부담감도 없어질꺼 같았고, 힘든 훈련소 생활도 잘 이겨낼 수 있을꺼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아니 있을리가 없다.
나는 그저 스스로에게 바쁘게 훈련받다 보면 보고싶은 마음도 없어지겠지 라며 내 자신을 위로하며
부모님의 눈물 섞인 배웅을 뒤로 한 채 훈련소로 옮겨갔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훈련소에서 훈련이 지속되고 강도가 강해지면서 그녀의 대한 나의 그리움은 더욱 더 사무쳐졌다.
동기들이 여자친구들로 부터 받은 편지들을 자랑할때면 나는 부러워하면서 또 그녀를 더 그리워했다.
그렇게 훈련소의 생활을 지나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자대배치를 받고 몇개월 동안은 너무 힘들고 바빠 그녀의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그녀와 그녀와 함께한 추억을 모두 잊은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상병이 되었을때, 새벽근무 시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바라 볼때면
나 홀로 감수성에 젖어 예전 일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나의 철없이 행동한 과거와 공부를 게을리 한 것, 또 그녀와 있었던 일들, 내가 주위 사람에게 했던 무례한 말들..
모두 바르게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한동안 힘들었었다.
이런 우울의 시간과 환희의 시간이 반복하면서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러 나는 전역을 하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토플 학원도 등록하고 3년전 보았던 SAT도 다시 공부하였다.
두 파트 모두 원하는 점수를 얻고 원하는 학교에 지원을 마치고 나니
생활이 전보다 많이 여유로워 졌다. 홀로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영화도 보고, 나홀로 걸어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그러나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 질 수록 내 마음속 깊은곳의 외로움이 사무치게 밀려왔다.
그 외로움이 짙어질 수록 나는 그녀가 전보다 더 보고 싶어졌다.
3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카톡 ID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ID 가 없어지진 않았을까 초조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디는 바뀌지는 않았다.
사진을 보니 그 친구는 굉장히 이뻐지고 성숙해졌다.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에 내 마음은 괜시리 설렜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냥 그녀를 내 마음속에 소중한 추억 상자 중앙에 묻어두기로 했다. 분명 나혼자만 이렇게 그리워 할테니까.
아무쪼록 나는 그녀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만 받고,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 시절의 그녀를 만나 소중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