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학기에 아이비로 '교환학생' 온 사람이 흔하진 않은거 같아서 신상이 노출될거같긴 하지만..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환학생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드릴 얘기가 많다고 생각되서 글 올립니다.
미국에 도착하기전까지만 해도 온갖 즐거운 상상으로 가득했다. 특히, 교환학생 합격발표가 난후 몇일 동안은 대학 입시에라도 붙은 냥 세상을 전부 가진 것 같았고 비록 한학기 교환학생이기는 했지만 소위 아이비 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몹시 들떠 있었다. 아마도 어렸을 때 부터 아이비리그라는 대학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학교라는 인식을 주위 사람들, 온갖 매체들을 통해 쌓아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주변에서 외국에서 공부하면 외롭고 힘들다라는 일종의 충고어린 말들을 듣긴 했지만 그런 충고들이 아이비에 간다는 감정 자체를 억누르기엔 역부족이였었나보다.. 차라리 너무 기대하지 않았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본다.
처음 한달 동안은 힘들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것들을 끊임 없이 접하고 감탄하고, 이런일들의 연속이였다. 기본적으로 룸메이트와 같이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몹시 흥분되었고 영어로 듣는 전공 수업, 마치 고대 그리스 건물을 연상케 하는 도서관, 200명이 넘게 듣는 수업들.. 무엇보다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비 리그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자체가 나를 들뜨게 한것같다. 또 이런 학생들 사이에 껴서 공부하고 얘기하고 한다는 사실 자체는 나 자신을 일종의 소속감, 연대의식에 빠지기 충분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비록 12 학점을 듣기는 했지만, 모두 전공과 관련된 과목들이였고 전공이 생물학, 유전학과 관련돼 있다보니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중간고사를 적게는 2번, 많게는 3번까지 치뤄야 했고 퀴즈, RESEARCH PAPER까지 해야되다 보니 조금은 빡세기도 했다. 또 한국에서 배우지 않은 전혀 새로운 개념들을 영어로 배우다 보니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학교에서 아침,점심,저녁을 모두 해결하였고 도서관에서 24시간 이상 공부하는것도 익숙해질 정도로 기숙사, 도서관의 동선이 생활화 되었다. 이런것들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문제의 중간고사 기간.. 처음 두과목은 생각보다 성적이 잘나왔다. A,A-. 아이비리그 학생들과 겨뤄서 이정도 성적이라니.. 오히려 뿌듯했다.. 하지만 나중에 치룬 두과목은 나를 딜레마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이 두 과목은 letter grade로 처리할 수 있는 성적이 아니였다.. 거의 반에서 꼴찌.. 두과목 전부..
여기서 부터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헤어나오려고 해도 끝없는 생각의 고리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돌아서 나를 괴롭혔다. 사실 나는 지방대에 다녔었던 경험이 있다. 위의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지만 어쩌면 이 사실이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무언의 패배의식을 한층 더 강화시켰던 것이 지방대에 다녔었던 기억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지방대 다녔던 학생이니까 안될거야..' '내 주제에 무슨.. ' 한동안 잊어왔던 이런 잡념들이 중간고사 이후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또 나를 심하게 괴롭혔던 말 중 하나는.. 중간고사 이후 이런 고민을 아는 지인들과 상담했었는데 한 분께서 '삼류대에 다니다가 아이비처럼 명문대에 다니니까 힘든건 당연한거다'라는 충고를 해주셨다.. 그런데 이 말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였다. 앞에서도 말했던 바와 같이 아이비리그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묘한 소속감을 느껴오다가 현실을 자각한 것이다. 지금 아무리 아이비리그에서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서울에 있는 삼류대에 다닐 뿐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 이유인 즉슨 나는 더이상 이곳 학생들에게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고 일종의 '미운 오리 새끼'의 오리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백조들 사이에서 나도 백조라고 착각하다가 결국 오리새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했을때의 고립감..
이런 생각들이 암세포처럼 내 생각을 지배하게 될즈음 발견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난 후였다. 페이스북 계정 삭제, 전화번호부 전부 삭제(부모님만 제외하고), 카카오톡 삭제 등등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렸고 (이 당시 부재중 전화는 50통이 넘었다..)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기숙사에서 울고 불고.. 룸메이트가 올 시간 즈음에는 일부러 밖에 잠시 나간다음 학교에서 온것마냥 후에 방에 들어오고.. 사람이 무기력하면 얼마나 무서운 생각들을 많이 할수 있는지 처절하게 느낀 시간이였다.. 이러는 와중에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심정으로 평소에 자주 연락하던 교수님 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너무 힘들고 죽을것 같다고.. 사실 두분한테 비슷한 메일을 보냈는데 한분 한테선 답장이 오고 한분에게선 여전히 답장이 안왔다.. 어쨋든 그후 교수님과 나는 자주 상담을 하게 되었고 (보통 2시간 이상) 상담내용은 정말 사적인 내용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 몇몇 내용은 부모님 한테도 얘기 안한 부분..). 여러 대화를 나누면서 그 교수님이 상당히 나를 신경쓰고 계신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다. 핸드폰으로 전화도 자주 해주시고 문자도 주고받고, 상담을 안하러 오면 무슨일이 생겼냐고 문자를 보내주시고.. 이뿐 만이 아니라 내가 듣는 다른 수업 교수님들에게 전화하셔서 나에 대해 얘기해주시고 .. 친구도 소개시켜주시고.. 나를 좋아하시는게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교수님께서는 상당히 많은 것을 주셨고.. 나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와 특별한 존재가 된것같은 느낌? 때문인지 힘든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참고로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은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데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지금까지 백조틈에 낀 미운오리새끼라는 생각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이 교수님을 통해 어쩌면 백조들 보다 더 나은 오리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수님 수업에서 학생 인원수가 250명이였었는데 그런 교수님과 사적인 거에 대해 얘기하고 오로지 내 문제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다는건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로 여기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학기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교수님과의 상담이후로 나는 다시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교수님으로 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거창한 추천서까지 받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교수님이 대학교 졸업장, 대학원, phd까지 전부 하버드에서 받으셔서 나중에 하버드 대학원에 지원하게 될때 많은 도움이 될것같아 한편으론 사필귀정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하고있긴하다.ㅎㅎ;;
final 기간에 잠시 머리식힐겸 글을 쓰는거라 두서가 없긴 하지만 많은 교환학생가는 분들, 특히 아이비나 높은 랭킹으로 교환학생 가는 분들은 나처럼 '미운오리새끼' 딜레마에 빠질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또 동시에 오리새끼가 백조보다 못나다는 것은 편견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 역시 강조해드리고 싶다. (물론 대학교로 오리새끼다, 백조다 판단하는게 웃기고 철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본인이 아니면 섣불리 판단하기엔 민감한 영역이니.).
쓰고 싶은게 너무~ 많지만 말씀드렸다 싶이 기말 고사 기간이라 길게는 못쓰겠구요.. 저 같은 케이스는 수능 대박났다 수시 납치당한 케이스라 대학 랭킹에 병적일 정도로 민감한데 이런 부분이 교환학생 시기에 영향을 끼쳐서 정말 힘들었어요..ㅠㅠ 어쨋든 '이런 케이스도 있구나.' 라고 넘겨주시고 혹시 저같이 대학랭킹에 민감하고 자존심 강하신 분들은 교환학생 포기하는 것도 조금은 고려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