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우해커스 여러분들, 저는 미국 동북부 지역에서 석사과정하고 있는 어린 학생입니다.
저도 몇몇 분들과 같이 선택의 시간(?)이 온거 같아서.. 여기다가 일기 한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글이 많이 길 수도 있어요. 분량조절 실패할 거 같습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 소개를 간략히 하자면,
저는 학사과정을 한국에 있는 과학기술원들 중에 한 곳에서 졸업했습니다. 전공은 기계공학이었어요.
그래서 학사 때부터 교내 연구실에서 인턴(=심부름꾼)으로 일을 할 기회가 많았고, 주변 동기들도 대부분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항상 대학원에 가서 석사, 박사를 하는 것이 뭔가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끼고는 했어요.
주변에 취업준비하시는 분들도 별로 없었고, 눈에 보이는게 대학원생들 뿐이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석사과정으로 미국에 유학 오게 되었습니다.
고우해커스 분들처럼 엄청난 명문대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학교에 재학중이에요.
주변에서는 '뭐하러 돈 아깝게 미국가냐, 그냥 한국에서 하지' 라는 말도 많았고, 저도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만,
뭔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면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유학 오고싶어도 못오시는 분들이 태반인데, 저는 정말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걸 매일 감사하며 삽니다.
제가 미국 학교에 오자마자 공부를 시작했던 분야는 3D 프린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참 열심히 했던거 같아요, 신기방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서 논문도 많이 읽어보고, 혼자 학회에도 찾아가보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3D 프린팅이 한 때는 막 붐이 일어서 승승장구하던 분야였는데, 지금은 뭐랄까, 기술적인 슬럼프가 온거 같은 느낌이 왔어요.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겉으로는 굉장히 포장이 많이 되있지만, 깊게 파고들다보니 장점과 더불어 단점도 뚜렷한 분야임을 알게 되었고, 한계점도 명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존의 것을 다 뒤집어엎는 혁신적인 기술이라기보단, 그냥 또다른 생산기법 중에 하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잘못된 사실이 있다면 정정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졸업논문을 꼭 쓰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어떻게든 좋은 연구주제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지도교수님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들고갔었는데, 전부 빠꾸먹었습니다. 맘에 안드셨나봐요. 쳇
그래서 제가 '어떤 주제가 좋을지 조언 좀 해주세요', 하고 물었는데 그냥 저널이나 열심히 뒤져보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맘에 안드셨나봐요. 쳇쳇
그래서 그 교수님 밑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연구분야의 전망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교수님이랑 생각보다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나오고나니 고민이 더 많아졌어요, 논문은 써야겠는데, 그 당시에 졸업까지 남은 기간이 8개월 정도였어서,
이제 와서 내가 새로운 연구실에 들어가서 새로운 분야로 논문을 쓰는게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졸업논문 쓰지말고 그냥 학점이나 채우고 빨리 취업준비 해야하나.. 하는 고민도 했었는데, 그래도 미국까지 왔는데 논문 하나 없이 졸업한다는게 뭔가 마음에 걸려서, 서둘러 다른 연구실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갈 곳 없는 대학원생들은 항상 새로 부임하신 교수님들께 찾아갑니다.
저도 새로 오신 분께 곧바로 찾아가서 상담을 하다보니까, 교수님의 연구분야가 '알츠하이머병(치매)이 어떻게 전이되는지를 시뮬레이션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의학분야는 완전히 처음이라 많이 당황하긴 했습니다만.. 교수님께서 "너한테 어떤 일을 시킬지 정해놨다, 서둘러 일을 진행하면 8개월에 논문 가능하다"고 꼬시길래 그 분 밑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연구실에 저 혼자였어요. 지금은 박사 한분 들어오시긴 했습니다만, 어차피 논문작성은 저 혼자 하는 일이니.. 지금도 혼자나 마찬가집니다.
주변 친구들은 다 말렸었습니다. 신생 연구실 들어가면 고생만 하고 제대로 논문 쓰기도 힘들다고.
그래도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뭔가 막 태어난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느낌이에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기초적인 뇌의 구조부터 공부해가면서 열심히 논문 찾아 읽었고, 어느정도 베이스라인은 잡힌 느낌입니다.
교수님도 젊으시고 성격 참 좋으신 분이셔서, 제가 연구에 갈피를 못 잡을 때마다 많이 도와주십니다.
석사논문만 잘 마무리되면, 풀펀딩으로 박사과정 지원해주시겠다 하시고, 여러모로 저는 복이 많은 거 같습니다.
그래서 참 잘하고 싶은데, 처음 접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많이 어렵고 생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치매 연구하다가 제가 치매 걸릴거 같아요.)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참 감사한 일인데, 그래서 제가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는데,
제가 너무 부족해서 매번 제대로 된 성과를 가져가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교수님을 실망시켜드리는거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내가 정말로 이 일을 할 수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사 때부터 봐온게 교수랑 대학원생들밖에 없어서, 박사과정은 당연히 해야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어떻게든 논문 써보겠다고 여러 사람 붙들고 늘어졌는데, 이제 와서 뒤늦은 고민이 몰려옵니다.
이 천재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내가 설 자리가 있을지, 안되는걸 억지로 붙잡고 있는건 아닌지,
괜히 박사하겠다고 덤볐다가 시간만 날리고 무너지는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졸업논문 쓰다말고 인터넷에서 일자리 뒤적거리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 '내가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덧 돌아오는 5월에 석사 졸업을 하게 됐습니다. (이럴 시간에 빨리 졸업논문을 써야할텐데 말이죠.)
박사과정에 들어가야할지, 아니면 다 정리하고 직장을 알아봐야할지, 서둘러 정해야할거 같습니다.
참 오랫동안 해왔던 고민인데, 이제는 결정을 해야할 때가 온거 같습니다.
운이 좋게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미국에 유학 올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을 실망시켜드릴 수가 없어요.
이제는 막연히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 정말로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저를 도와주신 분들께 작게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야 죄책감이 조금 덜할 거 같아요.
'석박사생생일기' 코너라서 저도 생생일기 한번 써봤습니다. 생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논문 쓰다가 집중이 안되서 한번 써본 글인데, 쓰다보니 기분이 묘해지네요 헤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서 없이 쓴 글인데, 여기까지 읽어준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혹시 대학원 선배님들 저에게 조언해주실 부분이 있다면 아낌없이 던져주세요.
어린 양에게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