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정도 앓아 누웠습니다.
viral infection. 이녀석 무서운 넘입니다.
감기 몸살을 가장해서 고열과 오한을 줍니다
반쯤은 스트레스때문에 반쯤은 약해진 임뮨 시스템을 뚫고 오는 애라는데.
일단 원인이 분명치 않고
내장기관이 상했는지만 파악해주고 아니면 그냥 열내리는데만 집중하더라고요.
미국와서는 두번째 걸렸네요.
첫번째는 8000불 나왔는데.. 이번엔 어떨지.
물론 학교에 따복따복 보험료냈으니까 약값 봉다리로 마무리 될겁니다. 부디..ㅜㅜ
누워있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박사논문 주제 잡기.. 갑자기 또 혈압이..ㅜㅜ
1. 가급적 오래되고 논의가 충분한 주제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인문학도들은 학부때도 석사때도 박사수업때도
플라톤부터 또보고 또보는 사람들입니다.
커리큘럼이 그렇게 짜여있으니까요.
배울때는 잘 몰랐는데 박사 중이거나 막 박사를 마친 사람들이 정리한 글을 보면 알게 됩니다.
이렇게 꾸준히 수업시간에 배우고 써본 주제들은 참 잘쓰는데
2000년 이후에 유명해진 학자들 요약은 참으로 못하는구나.. 라고.
연구자 잘못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잘 몰랐습니다. 본격적으로 쓰기전까지.
문장이 오롯이 모두 연구자들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오산입니다.
연구자의 문장은 본인이 읽고 이해한 만큼 나오는게 당연한데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읽었냐는 겁니다. "무엇을"
그 무엇이 아주 좋은 교재라면
그리고 좋다는 것이 정보적인 측면+관점+논리구성 모두가 좋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오래된 주제를 잡는 것이 좋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제가 하는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작성법 초반, 인문학 논문 주제 선정 방법에 관한 편에 나옵니다.
이미 30년이나 전에 씌여진 것이라서 요새 학제에 분명 안 맞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나면 일독 하시길 추천합니다.
에코의 예는 단테를 선택하는 것이 파운드를 선택해서 쓰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였습니다. (가물가물)
2.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
우리는 교양서적이나 (언젠가는 쓸테지만)
혹은 인문학을 교양으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뭐 수준이 높다거나 그런 말을 하자는게 아니고요.
교양수준과는 다르게 모든 텍스트를 접근합니다.
특히 웬만큼 중요하다 싶으면 텍스트를 다 뜯어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요.
텍스트 라는게 일관성이 있다면 참 좋습니다.
잘된 저널 논문 한편이나 잘된 단행본처럼요.
하지만 이 분야에서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뭔가를 뽑아내야하는데 대개가 그렇듯 아주 추상적으로 정제된 단어로는 뽑아내기가 쉽지 않죠.
또 읽고, 다른 것도 읽고... 하다보면서 조금씩 고쳐가는 겁니다 (라고 배웠습니다.)
학위를 받는다는 것, 박사생의 임무는
그 지루한, 사실은 인용을 쓰려고해도 별로 쓸데도 없는 것 같은 것들을
모두 눈으로 확인하고 정리하고.. 하는 겁니다 (라고 배웠습니다. )
따라서 최종본의 문장에는 힌트조차 없는 많은 글들을 지나갈수밖에 없습니다.
그 노고라면 노고, 고통이라면 고통, 읽는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은
아마도 커미티 멤버만 알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번에 압니다.
대강 인용을 위해서 남들이 인용하니까 인용한 것인지
정말 꼼꼼하게 직접 읽고 코멘트 한것인지.
선생님들이 괜히 선생님들이 아닙니다.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3. 약간의 딜레마
예: 수업시간에 아감벤 책권과 그의 다른책 2-3 챕터가 수업 교재.
연구자는 전공이 미학.
그렇다면 미학과 관련된 논의를 중점으로
이해하고 발췌하고 인용하고 해석하고 (영어해석말고요.ㅜㅜ)
뭐 이런 일을 하겠지요.
문제는 위 수업의 텀페이퍼가 아니라 좀 그럴듯한 곳에 원고를 보내고 싶을때.. 생깁니다.
당장에 한국에서만 검색해봐도
아감벤 관련 대다수의 논의는 그의 생-정치.. (뭐 그런게 있습니다.) 에 관련되어
사회학 법학 논문들이 철학분야를 압도합니다.
그 꼽사리에 예술관련 논문이 몇 편 있습니다.
자, 도대체 뭔말씀들 하시는지 한번씩 읽어봅니다.
양에 안차서 영어권 국가에 출판된 것들중 몇개 더 읽습니다.
시작은 그의 몇가지 개념만으로 대상 분석을 하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의 다양한 관심사와 주제들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생깁니다 (사실 너무 당연합니다만)
그러다가 그의 책 한권, 두권.. 세권.. 이렇게 더 읽습니다.
물론 이런 책들은
김연수나 은희경의 책들처럼 밤새우게 만들만큼 재밌지도 않고
책장도 잘 안넘어갑니다.
어쨌거나
지도교수한테 욕 바득바득 먹어가며 (딴거 한다고..)
오랜 시간 이후에 정리를 완성하고 이제는 누가 물어봐도 그거는.. 그거야.. 정도는 할수 있을때.
심지어 그때에도
그 개념을 실제의 작품에 적용하기가 참으로 까다롭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 문제보다는 오히려 이론을 적용하는 것 자체의 까다로움이었습니다.
(미술, 음악, 영화, 문학.. 이런거 학부부터 전공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ㅜㅜ)
꽤 긴 원고가 완성된 후에도... 뭔가 아귀가 안맞는 느낌이라
원고를 계속 묶혀둡니다. 본업도 빠뜻하다는 핑계를 대고서.
석사때부터 이 적용이 참 중요하다는 말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만
정작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인문학 상위레벨 교육의 문제점.. 뭐 이런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라요.
이런 것은 책을 통해서 누가 그랬다... 식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관심대상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서 밝히는 작업의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생각했던것 보다 경험이 훨씬 중요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장단점이 있기는 한데 (미국에 와서보니)
이론 경향이 강한 인문학을 추구하는 한국은
여러가지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일단 서양의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해하고.. 이런 것에 중점을 두어 가르칩니다.
적용을 잘 하려면
자료 조사와 정리.. 마치 여타 다른 학문들이 하는 것처럼요.
이런 것들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자료가 모아졌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겉도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겉돌지 않는 경우...
미술"사"가, 역사가, 영화"사"가, 음악"사"가.. 등의 전문가들의 글속에서 볼수 있습니다.
대신... 경험적 자료에만 국한되어 있어서 관점이 좁고 다른 학문에 폐쇄적입니다.
(이건 순전히 제 경험의 생각..)
이런 문제에 봉착하면 사실 지도교수가 정해주면 좋습니다.
멋진 분석 필요없으니 대신 더 많은 작품을 비교해보라.. 라든지
작품의 수를 아주 줄여서 이론에 적용가능한 것들만 선별하라든지..
저는 전자의 경우였고,
제가 제일 못하는 것이었고,
단행본 한권 제대로 없는 뭐... 그런 대상이었습니다.
4. comparative - , interdisci - , multidisci - 등등
이런거 붙은 과들, 학문들.. 멋지게 보이시나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60년대에 시작해서 90년대에 확 피우다가 지금은 그냥 저냥..
취지는 참 좋은데.. 배울때도 재밌는데
막상 결과 내려면 참으로 헤매는.
연구자의 명민함과 박식함이라고 했었는데요.
박식함이란
타 인접 학문에 대한 이해도는 기본이고
예술, 역사, 종교, 사회, 철학.. 여기서 종교는 제외하더라도..
예술, 사회, 철학.. 이 세개 정도는 좀 넘나든다.. 할 만큼의 박식함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제 범위를 훨씬 넘는 일입니다.
사실 예술 전분야에 걸쳐 박식하기도 힘들지요.
심지어 한 장르나 시대에 박식하기도 힘들고요.
하지만 논의를 정교하게 하려면
아니... 일단 책들을 잘 이해하려면 잘 읽으려면 박식해야 합니다.
뭐 꾸준히 배우면 되지.. 네. 배우면 되는데요..
그게 접근이 어려운 분야는 자연스레 손이 덜가게 되는.. 그런거거든요.
제가 뭐라고..
"2" 까지 달아가며 쓸 글은 아닌데..
한판 더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