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에 올린 생생한 실전 유학생활 스토리가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이어서 연재하오니 유학시 참고하세요! 이번에도 반응이 좋다면 또 연재하겠습니다 :)
부활절 방학이 끝난 후 4월에 영국계 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 영국계 학교들은 유치원이 한 학년 적은 대신 13학년까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한 학년이 올라가게 되었다. 전학 후 나는 영국영어가 익숙지 않아 고생 꽤나 했다. 담임이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는데, 모든 영어 발음을 어찌나 이상하게 하던지…. 'Whatever'를 당연히 '와레버'로 알고 있었던 나는 '홧에비에'로 발음하는 담임의 발음에 문화충격을 받았다. 담임 외에도 모든 선생들이 영국 또는 호주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직전 학교에서는 보통 한국인 1/3, 일본인 1/3, 그 외 다른 나라 사람들 1/3이 있었던 반면 이번 학교에에는 한국인+일본인 1/3, 그 외 나머지는 전부 영미권 학생들이었고, 영국계 홍콩인 및 영국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모든 학생들은 전부 영국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으며, 학교에는 영국우월주의가 상당히 팽배해 있었다. 'title'을 '타이를'이라고 읽던 나에게 '타이틀' 발음이 왜 그러냐며 차라리 '티틀(tit)러(le)'라고 말하는게 어떻겠냐고 놀리던 외국인도 있었고, 내가 'Centre'라는 단어를 처음 보고 '센트레'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어떻게 '센터'도 모르냐며 다그치던 외국인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물론 직전 학교에서도 캐나다 또는 미국 선생들로부터 아메리카식 발음만 들으며 공부해온 나에게 영국발음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몇 달 동안 선생들이 나한테 뭘 물어보거나 말하면 계속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부탁해야 됐다. 그러던 내가 계속 영국발음을 듣고 나도 모르게 따라하고 그러면서 나도 영국영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도 영국영어식 스펠링으로 쓰고 말할 때도 영국발음으로 말하게 된 것이다.
처음 학교를 옮기고 몇 주 동안은 학교 안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수업에 늦고 불편했던 적도 몇 번 있다. 직전 학교에 비해 몇 배는 크고 건물도 여러 개인데다 건물 내부도 복잡하게 설계되어있고 과목 수도 총 15개는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공부는 새로운 과목도 있고 그럭저럭 재미있었고 학교음식은 일반적으로 맛있었고 학교에는 수영장, 배구장, 농구장이 다 따로 있는 등 시설도 정말 좋았다. 그 때까지는 서양아이들을 얼마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 갔을 땐 서양 애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누가누군지 헷갈리다가 나중에는 ‘노랑머리’ 친구들하고도 어울리고 지내면서 학교생활도 나름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모든 과목은 2주 사이클로 돌아가서 어떤 과목들은 수업 후 2주후에 들어가는 것들도 있어서 숙제할 시간도 많았다. 그리고 숙제가 아무리 많아봤자 이 학교 자체가 숙제가 별로 없는 학교였기 때문에 일주일에 3-4시간만 투자하면 숙제는 다 끝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다.
문제는 반년 후 새로운 학년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S1반이었던 나는 S2반의 아이들과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들어야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는 내 학교생활을 괴롭고 지긋지긋하게 만든 두 사람과 같은 S반이었다: 한국인 L과 인도인 X. 특히 한국인 L은 정말 나의 학교 생활을 지옥같이 만들어주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원래 이 L은 악명 높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애였고 X는 그냥 L과 같이 다니며 L 쫄따구같이 못된 짓은 같이 해왔던 아이였다. 우리 S반에는 한국 애들이 나하고 L밖에 없어서인지, 그래도 같은 한국인이라고 나를 유독 못살게 굴었다. 아니, 우리 학년 전체에 한국 여자애들은 떼거지로 많았지만 남자애들은 나와 L을 포함한 3명이 전부였다. 아무튼 L은 내가 영어실력이 개판이라며 놀릴 뿐만 아니라 반애들한테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어쩔 때는 내 친구들과 나를 이간질하고 나를 계속 X와 같이 괴롭히면서 나를 바보 만들어놓았다. L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계속 주눅 들면서 힘들게 학교생활을 해야 했고 그나마 원래 사겨놓았던 친구들도 L 때문에 멀어져만 갔다. 그러면서 원래 붙임성이 좋거나 활달하지는 않았던 내 성격은 더더욱 내성적으로 변하면서 급기야 나는 말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한 학년 내내 말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L은 나를 이상한 애로 몰아가며 왕따로 만들어 놓았기에 원래 나와 친했던 애들도 내가 교실로 들어가면 갑자기 하던 말과 행동을 멈추고 ‘He is here’ 이러면서 속닥였다. 나랑 조금이라도 어울렸다가는 L에 의해 자신의 학교생활에도 지장이 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애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나를 놀리고 따돌리며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엔 점심도 혼자 먹게 되었고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여느 때처럼 혼자서 터덜터덜 학교 통학버스에 가서 앉은 어느 날, 나는 버스 앞에서 L이 한 학년 높은 선배랑 싸움질하다가 땅바닥에 서로 피를 흥건히 흘리고 코도 부러지는 걸 보게 되었고, 싸우는 현장을 내 눈으로 난생 처음으로 목격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애랑 같은 반이 되어야하나 하는 좌절감만 들 뿐이었다. 담임이나 부모님한테 내 심정을 얘기하면 그래도 L한테 잘 얘기해서 좀 나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히 나는 보복이 두려웠다. 특히 그 싸움을 본 이후였기 때문에 자칫 말했다가 재수 없으면 나는 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될 수도 있었기에.
그러다 4월쯤에 L이 퇴학을 당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들리는 바로는 L이 학교의 유태인 학생에게 심한 욕을 했고 그 유태인 학생이 학교에다 신고해서 학교가 퇴학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소문에 따르면 L 부모가 교장 앞에서 울면서 한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했고, 원래 한 영국계 학교에서 퇴학당하면 다른 영국계 학교로 못 가게 되어있는데, 걔는 부모가 사정사정해서 다른 영국계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것 같다. 어찌됐든 나는 그 학기의 남은 3달동안 그래도 전보다는 편하게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L 때문에 나는 벌써 오래전에 이상한 애, 어울려서는 안 되는 애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여전히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었다. 아니, 재미없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왜 이렇게 사나싶어 학교를 때려치우고 다시 직전 학교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특히 이 학교는 같은 영국계 초등학교에서 서로 알던 애들끼리 다들 친하게 지내며 다니다 중고등학교인 이 학교로 같이 올라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새로 온 학생이 껴서 같이 스스럼없이 잘 놀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새로 온 학생이 한꺼번에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티오가 날 때마다 따로따로 시험 봐서 한 학년에 매달 2-3명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 온 애들끼리만 친하기도 뭐하고, 원래부터 있던 애들은 몇 년 동안 서로 알아 와서 그들 그룹에 끼기도 어려웠다. 이렇듯 열심히 적응하고 어울리려고 해도 모자랄 판에 L은 나를 남들로부터 격리되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L은 전학 갔던 학교에서도 퇴학당하고 홍콩의 한국국제학교로 전학가려 했으나 그 학년의 학부모들이 전부 반대해 무산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학교도 안다니고 스케이트보드나 타며 놀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만 했으면 12년 전교육과정재외국민으로 명문대학들도 수월히 들어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혜택을 등에 업었지만 스스로 박탈한 것이다. 자업자득이라고 하기에는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L, 아듀~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