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에 나왔던 유명한 건축가 유현준씨께서는 알쓸신잡, 어쩌다 어른, 미래 수업 등 tv 강연에서 '벤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벤치'라니요, 다소 뜬금 없다고 느끼셨나요? 유현준 건축가님은 신기하게도 해외 여행을 가면 '벤치'의 개수를 세는 습관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정확히는 '단위 면적 당 벤치의 수'를 체크하신다고 합니다. 벤치의 개수는 그 나라의 건전성을 파악하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미국 브로드웨이에는 864m 내에 약 170개의 벤치가 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가로수길에는 844m 내에 3개, 거의 50배 차이가 나는 벤치의 수입니다. 벤치의 개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벤치는 도시에서 무료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앉아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는 쉼터의 역할을 해주는 곳이 바로 벤치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점은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이동해야 하는 공간 뿐이라는 것입니다. 앉기 위해서는 무조건 돈이 필요하죠. 우리나라에 카페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죠. 여기서 경제적 여유에 따라 가는 장소가 나뉘는 일이 발생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은 더 비싸고 고급진 카페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값싸고 흔한 체인점에 가는 것이지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날 공간이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은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을 맞아 3월 20일 세계 149개 국가에 대한 행복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2020년 행복지수가 5793점으로 산출되어 50위를 기록했습니다. 2017~2019년 3년간 집계한 한국의 행복지수 순위는 95개국 중 49위였습니다. 그에 반해 오스트리아는 지난해 행복지수가 7213점으로 10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이 행복 측면에서 낮은 순위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 1인당 GDP 수준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행복 지수는 결코 높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오스트리아 교환학생을 하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유럽권 학생들이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고 대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친구를 만날 때는 카페에서, 식당에서, 술집에서 만나는 것이 기본인데, 유럽인들은 이와는 다소 다른 듯 보였습니다. 유럽인들은 호수 혹은 공원에 모인 다음 벤치에 앉든 잔디밭에 앉든 자유롭게 편안한 장소에서 그저 이야기합니다. 동양인들과는 달리 대체로 의사표현을 활발히 하는 그들의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할까요. 정말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냥 물론 락다운으로 인해 카페, 식당, 술집 내부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반영되었겠지만 락다운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2년 전 유럽 여행을 했을 때 놀랐던 점이 한국의 거리와는 달리 파리, 영국 등 유럽의 대도시는 거리에 놀만한 거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곳곳에 코인 노래방, 당구장, 볼링장, 피시방, 방탈출 카페, 오락실이 널려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재밌는 활동을 하며 시간 보내기 너무도 좋은데 유럽은 딱 가보니 전통적인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좋기는 한데 볼링장, 피시방, 노래방, 당구장 등 유흥 시설이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잘 없더라고요. 물론 구글맵에 검색해서 찾으면 있기야 하겠지만 길거리 걸어가기만 해도 곳곳에 보이는 홍대 거리, 강남 거리, 이외 유명하지 않은 한국의 거리들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차이나는 풍경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럽 사람들 정말 인생 재미없게 산다, 한국이 진짜 최고다라고 생각했었지요. 여유 있고 행복하겠지만 삶이 뭔가 좀 단조로울 것 같은 느낌? 으로 다가왔습니다.
'여행'이 아닌 '체류'의 경험으로 오스트리아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는 좀 다르게 다가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만나는 모든 순간, 모든 활동이 '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새삼 한국이 부자들의 천국인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이 와닿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친구를 만나면 일단 식당에 가서 만원 정도되는 밥을 먹고, 근처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탐앤 탐스, 혹은 개인 카페에 들어가 4-5천원 정도 되는 커피를 시켜서 1-2시간 시간을 보냅니다. 일단 이것이 사람을 만나는 디폴트 값이죠.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사람을 만나는 데 꼭 카페에 돈을 지불하고 그 안에서 만나야 할까요? 유럽처럼 그냥 벤치에 앉아서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면 안되나 봅니다. 거리에 벤치도 적을 뿐 더러, 공원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장소가 아닌 러닝, 아침 운동을 위한 장소일 뿐이니까요.
물론 한국에서의 삶도 한국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또 한국 삶의 특성이 한국이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세계화 시대의 나름의 경쟁력을 갖게 해준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오스트리아는 오히려 과거의 위대한 역사와 유산을 가지고 있지만 이후에 충분한 성장과 발전, 변화를 지속하지 못하여 과거의 영광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행복'이 무엇일까, 행복한 삶의 조건이 무엇일까, 구성원들이 행복하기 위한 사회의 조건이 무엇인가에 있어 오스트리아는 본받을 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대화할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 갈등이 완화되고 해결되는 실마리라고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의 행복 지수가 높은 것이 이와 관련있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해외 교환학생 유학생 생활을 하면서 한국과 비교되는 문화를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그 나라의 문화가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각자의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순히 여행이 아닌, 장기간 체류하면서 느끼는 문화차이는 저의 삶의 조국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제가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힌트를 전수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교환학생만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 궁금하신 점 다음 포스팅으로 기대하시는 주제 댓글 남겨주시면 적극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이상 샤치 재화니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4월 2일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샤치재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