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간단한 스펙
2. 대학원 준비하는 이공계생의 고민 - 공부 vs 연구
3. 장점, 단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할 선택
4. 대학원 준비하는 모두의 고민 - 영어 & 서류 준비 vs 학업 & 연구
1. 간단한 스펙
위 어드미션 포스팅 링크를 누르시면 더 자세히 보실 수 있겠지만, 제 간단한 스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합격 학교 Northwestern, UCSD, UT Austin, UMN Twin City (이상 Chem) /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Chemical and Biomolecular Engineering - Bioengineering Track)
학부 : 서울대학교 화학 & 생명과학 복수전공, GPA 3.8x/4.3,
영어 : TOEFL 110/120, GRE 336/340 (V166 Q170 W4.0)
연구 : SCI 1저자 1편, 공저자 3편, 국제 학회 포스터발표 3회. 학부 재학 중 3년 (+군복무 중 1년 반 & 고등학교 때 2년)
이렇게만 대충 보아도 저는 학점보다는 연구에 집중한 학교 생활을 했다는 게 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칼럼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학점이 낮아 좌절하시는 분들께 그럴 필요 없음을 알려드리는 것. 학교마다, 프로그램마다, 교수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다릅니다. 내 장점을 알아 주는 곳이 어딘가 있습니다.
② 연구가 공부보다 더 재밌는 학부 저학년 분들께,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은 어떻게 유학 준비를 했나 보여드리는 것.
③ 저런 애도 유학을 갔네?
실제로 저는 학점을 잘 챙긴 편은 아니었습니다. 꽤나 고학번인 저는 코로나 시기의 소위 '학점 인플레이션'이 오기 전에 거의 모든 수업을 다 들었고, 저희 과가 학점을 좀 짜게 주는 편이었던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제 주변의 유학 준비 하는 친구들이 무시무시한 학점을 보여줬던 것에 비하면 낮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부 효율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 머리보단 엉덩이로 승부하는 타입이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연구실들의 분야도 대단한 아이디어와 재치로 승부하기보다는 시간과 몸을 갈아넣으면서 지탱하는 것들이었으니 제 타고난 성향이 그런 편인가 봅니다.
2. 대학원 준비하는 이공계생의 고민 - 공부 vs 연구
그렇다 보니, 한정된 시간을 학업과 연구에 분배하는 게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복수전공도 하고, 욕심껏 수강신청한 대학원 과목들도 한가득이니 더 그랬겠지요. 심지어, 제가 2년 가까이 있던 연구실 중 한 곳은 화학부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둘 다 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제 능력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모든 걸 다 잡는 친구들도 있었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겠지만 저의 경우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학업보다는 연구에 무게를 두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더 편한 쪽은 공부였습니다. 실험실에서 새벽까지 지내는 삶은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건강에 해로웠습니다. 실험이란 게 잘 풀릴 때보단 안 풀릴 때가 훨씬 더 많았고, 피드백이라는 게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학업에 비하면 더 자주 피드백이 있는 환경이었거든요. 끝까지 안 풀리는, 답도 없는 문제가 전공책엔 잘 없는데 실험대엔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더 가는 쪽은 연구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관심 있는 chemical biology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과목들이 아니면 공부 고삐를 좀 늦추고 그 시간을 실험에 더 투자했던 것 같아요. A0에서 A+로 올리기에는 A-에서 A0로 올리는 것보다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몇 문제 더 맞히는 게 소위 'ROI'가 덜 나온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진짜 과학자로, 독립적인 연구자로 만드는 건 몇 문제 더 맞은 기말고사가 아니라 내가 시도해 보고 실패한 유기 반응과 실험 설계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애써 벌어 놓은 시간들은 모조리 연구실에 갖다 부었습니다.
3-1. 장점
장점은 명확합니다. 오랜 기간의 연구 경험과 연구 실적이 쌓였고, CV에 채울 내용과 추천서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내용을 걷어내야 더 명료한 CV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3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줄이고 줄였지요. 연구실에 다니는 동안 교수님들께 유학 생각이 있다고 미리 말씀을 드려 놓았었기 때문에, 언젠가 추천서를 써 주겠노라 언약도 여러 번 받아 놓고 했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실험 스킬입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chemical biology 혹은 bioengineering의 영역으로, 상당한 interdisciplinary topic들입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만큼 여러 department에서도 건드리는 랩들이 있지요. 다시 말하면, 다양한 영역의 실험들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여러 단계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다룰 줄 아는 게 좋습니다. 여러 랩을 오랫동안 돌아다니며 잔뼈가 굵어졌기에, 할 줄 아는 실험 종류들도 많아졌지요. 이 부분이 생각보다 큰 장점이라는 건 교수들과 대면하여 이야기를 할 때 새삼 느꼈습니다.
Interview 때는 "이런 결과가 나왔거나 요런 문제가 생겼다면, 너는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라며 연구 중 만나게 될 장애물들을 대하는 능력을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합격 후 visit 때는 "너 이 주제에는 익숙하니? 이런 실험은 할 줄 아니? 좋아!" 와 같은 대화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교수와 포닥 입장에서는 소위 '경력직 신입'을 선호하게 되니, 입학 뒤에도 로테이션을 하고 랩이 정해지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유리할 수 있겠지요.
3-2. 단점
단점도.. 명확합니다. 학점이 낮습니다.
낮은 학점에 위축되기도 하고, 또 국내 장학 재단들은 학점을 많이 보기 때문에 그 점에서도 불리합니다. Gradcafe 같은 곳 보다 보면 4.0 만점에 3.9 이상인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이 보이는데 말입니다. 물론 미국의 학점 인플레가 심각하다는 소문은 얼핏 들은 적 있는 것 같지만요.
또 저는 복수전공도 하면서 각 과에서 대학원 과목도 듣고 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분야는 신경을 덜 쓰게 되더라고요. 소위 편식이 심해졌습니다. 가령 미분방정식이나 선형대수학과 같은 기초적인 수학 과목도 수강하지 못했고, 또 그러다 보니 물리화학이나 양자화학과 같이 관심사에서 멀어진 분야들이 제 약점이 된다고 느낍니다. 모든 분야를 다 완벽하게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할텐데, 이런 부분에서는 나는 기본도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순간에도 합니다.
3-3.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연구 비중을 조금 낮추고 학업에 더 집중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연구 실적이라는 게, 교수 임용이나 포닥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박사 과정 준비하는 학부생인데, 많다고 유의미하게 더 좋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구 실적이나 경험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은 차이가 크지만, 논문이 한 편이냐 두 편이냐가 주는 차이는 훨씬 적을 테니까요.
대학원 준비, 특히 원서 넣고 서류 준비할 때 "우씨 학점 좀만 더 챙길걸 그랬어" 하고 후회한 날들이 많았기에, 지금 이 시점에는 연구 비중을 조금 줄였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고 싶었던 Top 2 school 중 하나에 붙었기에 엄청난 후회로 남지는 않지만요. (하나는 Northwestern이었고, 다른 하나는 MIT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때 실험실에 있길 잘했어" 쪽으로 강하게 기울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참 많았거든요. 각종 실험 방법들, 장비 쓰는 법들, 각 분야에서 연구자들이 하는 고민과 겪는 문제들. 혼자 프로젝트를 시작한 적도 있고, 끝에 가서 실험이 안 돼서 폐기한 적도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연구실로 옮겨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억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좁은 주제가 아니라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연구를 하게 되는 제 특성상 이런 경험들이 중요한 자산이 될 테지요.
4. 대학원 준비하는 모두의 고민 - 영어 & 서류 준비 vs 학업 & 연구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면, 원서를 제출할 시기가 다가옵니다. 다들 마음이 급해지지요. 토플도 따야 하고, GRE도 봐야 하고, 추천서 연락도 드리고, 컨택도 하고, SOP도 써야 하는데 어떡하지? 직장이 있으신 분들은 직장 생활도 하셔야 하고, 아직 졸업하지 않은 학부생/석사생들은 남은 학업과 연구도 병행하면서 졸업 준비도 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다행히 마지막 학기에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진작 졸업 요건은 다 채워 놨었거든요. 다만 연구실에는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GRE를 병행하던 9월까지는 연구실에 9-6 칼같이 지키고, 퇴근시간 후에는 실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어 공부만 했습니다. 실험 중간 중간에도 남는 시간들 생기면 단어 외우는 데에 썼습니다.
GRE를 준비하면서 느낀 게, 연구실에서 풀타임으로 실험하면서 원서를 도저히 준비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오래 전부터 함께했던 연구실이었기도 했고, 또 교수님과 사수분들께서도 최대한 편의를 봐 주셨기 때문에 실험에 대한 압박을 최소화하고 서류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교수님께 죄송스럽고 민망해서, 무리해서라도 실험 결과도 같이 가져가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말리시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직장인 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시간 내어서 올인해 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만약 올인하지 못했다가 원하는 학교에 붙지 못하게 되면 후회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영어 준비와 서류 준비를 뒤늦게 와다다 시작한 편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어드미션 포스팅에!) 그래서 유난히 더 시간을 많이 썼지, 조금 더 미리미리 준비해 놨다면 연구도 어느 정도는 병행할 수 있었을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가령 GRE를 그 전에 미리 봐 놨다던지요.
석박사멘토로서 칼럼과 댓글로 최대한 정보 공유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조금 더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나, 딱히 조언이나 도움은 안 될 것 같은 TMI와 같은 것들도 궁금하시다면 제 블로그도 방문해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