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맥 클레이어를 도착한 날, 끼니를 해결하고 마을을 좀 둘아보니 날이 금새 어둑어둑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랫가에 앉아 호수의 일몰을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아이들은 모래밭에 뒹굴며 놀고 누구 한 명을 골려주면 아이는 앙앙대며 울고 ㅎㅎ
엄마들은 갓난아이들을 끌어안고 토닥이고, 어떤 엄마들은 아이들이 제들끼리 노는 사이에 설거지도 하구요.
사실 저 혼자 걸어다니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말을 걸어요,
이 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정말 길을 가기가 힘들정도로 말을 겁니다 ㅠㅠ
때로는 약간 무서울 때도 있어서 저는 저녁엔 돌아다니지 않고
엄마들 아줌마들 있는 데 옆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았어요.
그랬더니 한 엄마가 저한테 갓 돌이 된 듯한 아이 좀 보라고 안겨주더니
아이가 안우니까 신기해하더라구요. 오늘 하루종일 울었는데 이상하다~ 하면서요
그 엄마는 다른엄마들과는 조금 다르게 과묵하면서도 어딘가 다르게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마을 아지매들 중에 유일하게 가발도 쓰구요)
이름이 뭐냐고 하니까 파도에 젖은 모래에 검지로 자기 이름을 써 주었습니다.
L U C K Y.
그렇게 럭키와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럭키는 18살 밖에 안 된 앳된 친구였어요.
제가 스노쿨링 하는 것 이왕 숙소에 돈 주고 할바에는, 럭키네 오빠가 카누가 있다고 하니까 거기에 돈을 주고 빌리는게 낫겠다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럭키는 그게 많이 고마웠나봐요.
다음날은 집에 초대하길래 같이 마을 길을 건너서 럭키네 집에를 가봤습니다.
할머니, 큰오빠, 작은오빠, 자기, 또 애기 리사와 같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신기한지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는데 너무 정다운 분이었고 자꾸 저보고 큰 아들이랑 결혼하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럭키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자기와 오빠를 키웠는데, 리사는 이제 1살이라 너무 힘들다면서 둘째는 낳고싶지 않다고하더라구요. ㅋㅋㅋㅋ 학교는 집이 어려워 중학교까지밖에 못 나왔지만 영어를 집에서 혼자 연습했다고 하는데 유창하게 잘 했습니다. 이 마을에서 영어만 잘 해도 이렇게 관광객과 교류할 수 있고. 혼자서도 대단한 노력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인간적으로 정말 대견한 친구였습니다.
제가 카누 빌린 비용으로 건냈던 $30 이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제가 가는 전날에는 집으로 불러서 저렇게 밥을 차려줬습니다.
매콤한 양념 고기에 쉬마를 두 덩이나 줘서, 너무 많다고 같이 먹자고 하니까
한사코 자기는 먹었다고 저더러 다 먹으라던 럭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비록 아무 가구 없는 흙집에서 밥상도 숟가락도 없이 손으로 먹었지만
말라위의 한 어린 여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또 저의 응원도 전할 수 있는 따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그 기품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도 가족을 부양하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리사를 훌륭하게 키우고싶은 엄마의 마음.
다음날 새벽일찍 떠나게 되어서 급히 인사를 해야했는데요
모기물린데 바르는 약과 $10를 손에 꼭 쥐어주고
할머니에게도 비밀로 하고 리사에게 필요한게 있으면 쓰라고 전해주고 케이프 맥 클레어를 떠났습니다.
제가 말라위를 다시 방문했을 때 꼭 다시 보고싶어요.
하루는 럭키네 마을과 반대쪽에 있는 마을에 가 봤었는데요,
아이들이 모래쌓기 놀이를 하고 있다가 제가 와서 신기했는지 저를 둘러싸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중에 6학년인 듯 한 아이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통성명을 했는데,
저의 이름을 'Summer' 라고 했더니 말라위 가요중에 썸머 썸머썸머~ 하는 노래를 다같이 불러주더라구요. 마침 저도 그 날 저녁에 그 노래를 티비에서 봐서 저게 진짜 가요였구나 했습니다 ㅎㅎ
바나나를 줄기째로 매달아놓고 팔던 집 ㅎㅎ
이 오누이는 럭키 친구네 아이들이었는데요,
며칠동안 같은 곳에서 보니까 어느날은 아침이 되면 제가 롯지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정이 들었어요.
제가 멀리서 보이면 모래밭을 맨발로 다다다다 달려와서 제 품에 폭 안기던 작은 아이들.
감자튀김을 한 봉지 사서 나눠먹으며 호수의 파도에 저녁노을이 몰려오던 시간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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