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짐바브웨 : 짐바브웨 마스빙고주에 위치한 석조 도시유적입니다.
남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유적이지만 백인우월주의적인 역사해석으로 엄청난 수난을 겪은 유적이기도 합니다. ㅠㅠ
불라와요에서 친구들과 아침일찍 떠나 몇시간을 달렸을까요.. (지난편의 노랑 버스)
한 낮이 되었을 때 저 멀리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가까워지는 듯 엄청난 크기의 돌 산이 보입니다.
쇼나 족의 언어로 '짐바브웨'라는 말은 '숭배받는 일가' 혹은 '석조 가옥' = '돌로만든 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즉 짐바브웨 나라를 상징하는 곳이지요.
석조로 만들어진 가옥이나 성채는 권력의 상징입니다.
사실 짐바브웨 유적들은 현재의 짐바브웨 뿐만 아니라 모잠비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까지 약 200여개가 존재한다는데요, 그중 가장 큰 규모의 짐바브웨 유적이 이 그레이트 짐바브웨 입니다. 성벽 사진은 여행전부터 많이 봐왔어서 꼭 가고싶었어요.
2세기에서 16세기까지 번성한 쇼나족들은 농업, 목축업, 광산에서 일하면서 해외무역까지 다루면서 이를 통해 큰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이렇게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200여개의 도시를 건설할 정도의 위세를 떨치게 됐다 할 수 있죠. (짐바브웨와 다른 나라들까지 흩어진 짐바브웨 유적들은 쇼나족의 도시들입니다.)
특히 해외무역은 쇼나족에게 큰 부를 안겨준 산업으로, 오늘날의 모잠비크 해안에 위치한 스와힐리족의 항구들과 무역을 했습니다. 금, 상아, 구리를 수출하고 스와힐리족의 항구에서는 아라비아,페르시아,인도,동남아시아등에서 들여온 값비싼 비단,도자기,유리구슬등을 수입했다고 하네요. 짐바브웨 유적들에서는 중국제 도자기의 파편, 페르시아제 파이앙스 도자기의 파편등이 발굴되어서 광범위한 국제교역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도 구리 덩이쇠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그레이트 짐바브웨에서 발견된 거푸집의 문양과 일치해서 그레이트 짐바브웨에서 만들어진 구리 덩이쇠가 화폐로서 중국까지 흘러들어갔음을 짐작해볼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중국까지 교역을 했다니정말 대단합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간단한 지도입니다.
위쪽에는 언덕 The Hill 과 Cliff face가 있고,
아래쪽에는 Enclosure 울타리들이 많이 있어요. 엔클로저 단지 우측 상단에는 밸리 지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내벽 외벽이 있는 것을 보니 두 구역이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걸까? 신분과 직업에 따라서 사는 곳도 달랐겠지? 하며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3단계에 걸쳐 지어진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단계 : 위쪽 힐 컴플렉스 지역은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형성된것으로,
2단계 : 그레이트 인클로저 지역은 13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3단계 : 밸리 컴플렉스는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건축된걸로 추정합니다.
이렇게 광범위한 건축이 오랜세월에 걸쳐 이뤄진것은,
군주가 바뀌면 새 군주가 이전 군주의 거주지를 부시지 않고 놔둔 채 그 옆에 새로운 거주지를 건설해서 그럴거라 추정한답니다.
힐로 올라가는 길에도 이런 크고작은 성벽을 몇 겹을 넘어야 합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 성벽 높이는 무려 9m에 달하는 높이에 5m 두께입니다.
성벽 울타리 내부에는 진흙으로 만든 원형의 주거지들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의 백미는 이 거대한 돌 성벽을 만드는데 모르타르를 전혀쓰지 않고 오로지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쌓은 점입니다. 화강암을 일정한 크기의 벽돌로 쪼개서, 다듬어서, 시멘트나 진흙 없이 오로지 쌓기만 해서 이렇게 탄탄한 성을 쌓았습니다.
통로가 이렇게 좁고 낮습니다. 아마 전투가 많은 시대에 지은걸까요?
강제 림보 하느라 재밌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
그 다음에 간 엔클로저 울타리 지역! 둥근 울타리 성벽이 여러개 있는 지역입니다.
옆에 무너진 터들로 보아 몇 겹으로 되어있지 않았을까요?
쇼나족은 문자로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레이트 짐바브웨에 대한 문자 기록은 유럽인들이 발견하고 조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발견한 포르투갈 인은 쇼나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지를 이 곳에 살았던 쇼나 부족, 즉 흑인이 지었을 거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유적이라고 하거나, 심지어 학술적이라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 조차 아랍 상인이나 페니키아 상인 등의 외부 문명인이 지은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유적에 대한 과학적 발굴이나 조사보다는 이런 선입견과 편견이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지배했던 것이지요.
이런 주장들은 영국인 침략자 세실로즈가 현재 짐바브웨 땅에 세운 '로디지아'의 건국과 국가 유지에 확고한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했습니다. 즉, 과거에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백인인 페니키아 상인들이나 아랍상인, 시바여왕이 흑인들을 지배한 곳이라는 프로파간다가 로디지아의 국가 유지에 작용하게 됐습니다.
한편 그레이트 짐바브웨에 솔로몬의 보물이나 아랍상인의 금같은게 숨겨져 있을것이라 믿은 사람들이 유적을 마구 파헤쳐 금속품들을 가져갔으며 그 무게는 25kg에 달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과정에서 정교하게 쌓여진 탑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오히려 이런 학술적 결과들은 흑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싹트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로디지아가 무너지고 원주민인 흑인들이 집권하게 되면서 국명을 세실 로즈의 이름에서 온 로디지아를 버리고 그레이트 짐바브웨에서 따온 "짐바브웨"로 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짐바브웨 라는 국가는 이 곳 '그레이트 짐바브웨' 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내용은 나무위키 에서 참고하였습니다)
https://namu.wiki/w/%EA%B7%B8%EB%A0%88%EC%9D%B4%ED%8A%B8%20%EC%A7%90%EB%B0%94%EB%B8%8C%EC%9B%A8
-----------------------------------------
그리고 작은 박물관 안에 있던 독수리 조각!!!!!!!!
짐바브웨의 국조는 독수리입니다. 사실 짐바브웨에서 독수리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아무튼 독수리가 국조입니다 ㅎㅎ
저 조각을 실물로 보다니 감격스러웠습니다. 저 독수리 조각의 그림은 짐바브웨 어디에나 있거든요!!
짐바브웨 국기와 동전에 있는 독수리 그림이 바로 저기 안에 꽁꽁 숨은 독수리 조각입니다!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다 둘러보고 나와서 버스를 잡아타고 마스빙고 시내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영국 친구들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내려가기로 했고, 저와 언니는 짐바브웨에서 하루밤 더 자고 다음날 날에 돈을 뽑아 말라위로 가려고 했었는데요, 사실 거의 1주일동안 짐바브웨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도 알고 있었어요. 내 통장에 돈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한들 짐바브웨 ATM 에서는 돈을 뽑을 수 없을 거라는걸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녁에 한 호텔 직원 아저씨를 만나서 이런 사정을 얘기하니까... 그냥 포기하고 차라리 요하네스버그를 가서 돈을 뽑으라고 하더군요....저는 많이 필요했던것도 아니고 그냥 하루정도 있을 돈 + 말라위로 가는 버스값 해서 100달러 정도만 필요했는데.....ㅜㅜ
영국인 친구들이 본인들은 남아공 가서 돈 뽑으면 되니 우선 너 급한대로 쓰라고 가지고 있던 달러를 모두 모아줬는데요, 여기서 진짜 감동 받으면서 (만난지 일주일밖에 안된 나를 뭘 및고 몇 백 달러를 빌려주나 정말 감동이었어요)
이럴바엔 에라 모르겠다, 나도 그냥 남아공 또 가서 돈 뽑고 거기서 말라위 가는 방법을 알아봐야겠다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저와 친구들은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마지막으로 짐바브웨를 떠났습니다.
두 번째 방문한 짐바브웨를 떠나서, 두 번째 요하네스버그를 또 갑니다 ㅋㅋㅋ
- 23 복사본.jpg (391.7KB)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