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즈미르 교환학생]_#40 우크라이나 여행 4편, 키예프 2일차
성 미카엘 황금 돔 수도원(St.
Michael's Golden-Domed Monastery)
▲성 미카엘 황금 수도원
키예프의 많은 성당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황금으로 돔을 장식한 성 미카엘 황금 수도원(혹은 대성당)입니다. 중세 시기 지어진 이 수도원은 몽골의 침공으로 훼손되었으나 복원되고 순례자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고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지배할 때 이 대성당을 철거하였습니다. 따라서 대성당 내부의 있는 유물들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고 2차 세계대전 때 독일로 반출되기도 했습니다. 복원을 거쳐 1999년에 다시 개방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도 내부 장식물들을 보강하고 반환 받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입구 양쪽에 그려져 있는 벽화
항상 정교회 성당에 방문할 때마다 아쉬운 점은 솔직히 딱히 인상 깊게 본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감흥도
적습니다. 한 도시에서 너무 많이 보다 보니 몇 개는 놓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외부 벽화를, 황금으로
둘러싸인 외관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별도로, 성
미카엘 황금 돔 수도원에서는 성 소피아 대성당도 쉽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대기근을 추모하는 Holodomor Genocide Museum
▲ Holodomor Genocide Museum
다음으로 살펴본 곳은 Holodomor Genocide Museum입니다. 이 박물관은 1932년~1933년까지 발생한 우크라이나 대기근 때 발생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우크라이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이 사건은 소련이 적백내전에서 승리하고 계획경제를 수립하고 집단화정책을 개시하며 발생하였습니다.
문제는 생산 의욕의 저하, 모든 것을 공출하고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소련의 관료제도, 이상기후까지 맞물리면서 우크라이나의 식량 자체가 고갈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빵바구니라고 불렸던 우크라이나에서는 더 이상 식량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 Holodomor Genocide Museum 내부 전시물
통계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대략적으로 약 1천만명이 이때 아사하였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스탈린이 조직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독립운동을 방지하기 위해 가혹하게 집행한 것으로 보고 이 사태를
Holodomor(홀로도모르), 즉 기아로 인한 살인(killing by hunger 혹은 killing by
starvation")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이때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관과 추모비입니다. 추모탑이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영상과 여러 전시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치 독일을 환영했던 우크라이나
▲멀리서 찍은 사진,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확인할 수 있다.
소련에 의한 기근은 곧 나치 독일에 대한 환영으로 이어집니다. 우크라이나 인들은 당시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마치 폴란드의 지배를 겪은 후 러시아에 복잡한 감정을 가졌던 때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처사는 역시 가혹했고, 이는 2차세계대전이 우크라이나에게 또 하나의 재앙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