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다 했고 그동안 유학 준비로 못했던 밀린 일이 가득하나..
왠지 헛헛한 마음에 손에 잡히질 않는군요..
지원은 했지만 결과를 모르니 이런 듯 합니다.
눈오는 날, 저도 여기 게시판에서 도움을 받았던 고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 수기를 쓸까 합니다.
체력도 마음도 게을러져만 가는 사람이 어떻게 GRE 시험을 한 번만에 마치고 난생 처음 가 본 외국, 일본에서 다음 시험을 취소하고 예정에도 없던 관광을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간단한 글입니다.
1. 게으른 사람은 움직이길 싫어합니다.
그래서 학원이고 뭐고 다 귀찮습니다.
처음에는 스터디로 단어를 그냥 외워볼까 했는데, 스터디하러 학교에 가는 것도 귀찮고, 벌금도 무섭고 하여 그만뒀습니다.
한지를 출력하여 외우려고 했으나 너무 방대하더군요.
원래 학원을 싫어하고 정통과 기본만 가르쳐주는 곳에서 맥을 잡은 뒤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학원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러나 GRE는 처음이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만큼, 제대로 알려주는 학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차에 해커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GRE 감을 잡아보잔 생각과 writing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커스 사무엘 임반을 들었습니다.
작년 봄이었는데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습니다;
GRE에 대한 감도 못잡고 두려움만 커져 갔습니다.
다음엔 해커스 스테파니 수업을 들었습니다.
좀 더 낫더라구요.
몇 가지 전략(?)도 알려주고, 무엇보다 첨삭을 해주는 게 좋더라구요.
게으른 사람은 그렇게 시간별로 마감하고 검사하면 써보니까요.
강의를 듣다보면 바보 취급당하는 기분이 조금 드는데, 그래도 나름 체계적으로 해주는 것 같으니 첨삭 등 경험을 쌓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달 동안 첨삭 3~4번 써본 것이 전부고, writing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아서 점수가 잘 나오진 않았어요.
2. 게으른 사람은 공부할 동기가 필요합니다.
잘 모르기도 했지만, GRE 공부가 하기 싫었던 큰 이유는 그저 후기만 타면 되는, 유학에 필요한 점수일 뿐인 시험이란 얘기를 들어서였어요.
뭔가 내용이 있고 중요한 것이 남는 거여야 움직이고 공부하게 되지, 단순히 점수만 있으면 돼 하려면 정말 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러다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GRE는 후기만 타면 되는, 그저 유학에 필요한 점수가 아니라,
정말 유학 가서 논문을 읽고 쓰는 데 필요한 영어와 논리에 관한 시험이라는 것을요.
슬슬 공부할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GRE는 후기만 타면 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후기도 뭘 알아야 타는데다, 후기를 탈지 안탈지도 운이라 그냥 공부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어차피 유학은 공부하러 가는 건데, 영어 실력을 쌓으면 좋쟎아요.
물론 이것도 작은 어학원의 무료 특강을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무료 특강이 GRE의 전체적인 틀을 잡는 데 좋은 것 같아요.
꼭 verbal 뿐 아니라, writing과 quantitative 영역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공부할지에 대해 감을 잡게 됩니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학원을 등록하게 됩니다.
3. 게으른 사람은 수업 전에 학원에서 공부하면 됩니다.
뭔가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강의를 물색하던 중 마 이 크 로 스 트 래 티 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날 그날 조금 일찍 어학원에 가서 그날 진도 나갈 분량을 풀었습니다.
주로 센컴, 아날, 안토를 하나씩 나갔는데, 풀고 바로 수업을 들으니 몰랐던 걸 바로 알게 되어 좋더라구요.
쉬는 시간에 또 다음 나갈 것을 풀고....
왜 이렇게 조금 나가나 하실 수도 있는데 정말 설명을 꼼꼼히 해주시고, 단어 하나하나를 유의어, 반의어, 정도가 큰 단어까지 한꺼번에 죽 정리해주셔서 사실 제대로 공부하니 시간을 절약해줍니다.
그렇게 나온 모든 단어들을 엑셀에 정리하고 시험 직전까지 수업을 듣고 정리했네요.
그 다음에는 이미 정리되어있는 단어군들을 다시 관련 있는 것들끼리 정리해서 저만의 단어장을 만들었어요.
이건 강의를 들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지게 됩니다(저작권이 있어 나눠드릴 수는 없으니 요청하지 말아주세요).
운이 좋았던 것은, 방학이 아닐 때 갔더니 사람이 적어서 부탁을 드렸더니 리딩까지도 해석해 주셨어요.
어려워서 한국인들이 다 찍고 나온다는, GRE reading은 참 좌절스러웠는데, 이렇게 어렵게 평소에 공부해두니, 시험장에서 나온 지문은 막상 쉽게 느껴졌어요.
4. 오가는 길에는 거만어 동영상을 보면 됩니다.
누구신가 만들어서 동영상으로 올려 주셨쟎아요.
그거 지하철에서 봤어요. 들으면서.
근데 이상하게, 한 번도 못보거나 공부해보지 않은 단어는 잘 안들어와요.
수업에서 공부를 하고 나면 그 단어는 확실히 알게 되더라구요.
게시판에서 거만어 표제어도 받았지만 잘 보지는 않았어요.
그냥 오가는 동안 열심히 들었습니다.
제가 어학원에서 수업듣고 반의어 및 유의어 등 큰 흐름을 공부해야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더라구요.
5. 미드 단어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게 GRE 단어가 실생활에 많이 쓰인다는 거예요.
빅뱅이론에서 페니가 쉘든에게 condescending하지 마라는 장면,
내용은 유치하나 영어가 고급이라 보는 가십걸에서 서리나가 릴리에게 defy해서 미안하다.. 척이 릴리에게 soothe your guilt라고 하는 것 등 GRE 단어들이 미드에 나오는 게, 실생활에서 그냥 쓰인다는 게 신기했어요.
6. 시험장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신세계를 경험합니다.
무척 떨렸습니다. 걱정도 많이 되었구요.
더구나 저는 외국도 한 번 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라, 시험도 처음인데 외국 가는 것도 다 걱정이었어요.
그러나 다 이 게시판에서 얻은 정보대로 재페니칸에서 호텔 콤즈 예약, 제주항공에서 미리 항공권 예약, 이러니 좀 저렴하게 갈 수 있었어요.
사실 공부는 그간 했어도 적어도 1년 후기 정도는 보고 가야 하는데, 정말 게을러서;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고 귀찮더라구요;;
물론 이 저변에는 난 제대로 공부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겠지만..
남들 하는대로 마지막에는 해커스 게시판에서 후기를 봤어요.
뭐 저는 별로 후기를 타진 않았어요.
그래도 공부한 것들이 나왔어요.
2번에서 센컴나오고 9번에서 리딩이 나왔어요.
10번까지 잘해야 한다는 말에 참 떨렸는데, 리딩은 공부할 때보다 쉬워서 할만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롸이팅도 할만하다 싶었어요. 결론까지 다 쓰고 퇴고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워낙 롸이팅 공부를 안해가서 점수가 잘 나오진 않았어요. 이건 좀 후회됩니다.
수학도 좀 풀어봐야 해요. 꼭 그렇게 쉽지는 않아요.
10회 정도 풀고가면 된다는데 2회만 풀어도 알겠어서.. 그리고 시간이 없는데 단어를 보는게 나을 것 같아서 더 못봤어요.
하지만 수학 용어를 좀 알아가야 했는데 출력해놓고 다 못봐서, 용어를 몰라 하나 틀렸답니다ㅡㅜ
개인적으로는 % 나오고 비교하는 문제 유형이 좀 어렵던데.. 아무튼 시간 꼼꼼히 들여서 열심히 풀었습니다.
긴장하며 점수를 기다리는데 verbal 660이 떴을 때의 그 황홀함이란!
더 잘 보시는 분도 많으셨겠지만, 이 정도면 학교에 지원하며 부족한 점수는 아니고,
writing 준비를 안해간지라 verbal만 700점 넘어도 보기안좋다 위안하며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한달 반도 공부를 못했는데 이 점수가 어디냐! 하면서요.
다시는 여길 안와도 된다는 편안함에 너무나 행복했어요!
걱정에 오직 시험 두 번 볼 준비만 하고 일본에 갔는데 갑자기 팔자에 없던 여행을 하게 되었어요.
환전도 조금밖에 안해갔었는데.. 덕분에 카드만 긁고....
난바와 신사이바시도 오사카의 번화가 구경에 좋았는데,
전 그보다 바다쪽에 산타마리아 였나.. 크루즈와 전망대가 더 좋았어요.
갑자기 시간이 남는 탓에..^^ 오사카 주유패스 끊어서 무료로 잘 돌아다니고 놀았네요.
참, 우메다나 난바 역 근처에 관광안내소 가시면 한글로 된 관광안내서와 맛집 정보도 줘요.
우메다 역 근처 초밥집은 잊을 수 없네요.
손만한 스시에 혀에서 녹는 장어와 합리적인 가격!
7. 논문이 잘 읽혀요.
GRE가 이렇게 논문을 잘 읽고 쓰는 것에 관한 영어 공부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석사 중에 GRE 공부해서 논문을 잘 읽었을텐데....
GRE 공부를 하고 나니 논문 읽는 것이 훨씬 편해요.
주장과 비판을 하는 각종 단어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비유도 잘 들어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영어 실력을 어떻게 키우나 생각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저 시험일 뿐'인 GRE를 공부하며 영어 실력을 쌓다니 놀라워요.
지금도 정리해놓은 파일 출력한 것 버리지 못하고 가끔 봐요.
학문을 위한 영어 공부라고 생각해서 버리지 못하겠어요.
애착도 많이 생겼구요.
이상 게으른 사람의 한 번 시험보고 GRE 졸업하기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저처럼 난감해하고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과 안내가 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