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 and Chris made me at ease the first day in their polished living roomㅡ though I was not sure why these people would bother putting themselves out for me at all. And when they kept inviting me back for dinner parties and extending their hospitality, I wondered if maybe they were bored, or if their ignorance of American types was such that they failed to see that I was not at all of their social class: I kept expecting some crude regional expression to betray me; and, once I thought of it in those terms, I knew I would have to make sure they saw that side of meㅡ to do less would be like trying to “pass.” Yet whatever I said seemed to make no difference in their acceptance. I then susspected that my rough-edgedness itself was entertaining to them as a source of vitality, their diversion-of-the-month. This would have made more sense if the Hodgkinsons were bored, dried-up people who needed to feast on any new stranger, but they were not; they were in the world and leading stimulation lives and I finally had to come to the anxious conclusion that they simply liked me.
[의역]
첫날에 안나와 크리스는 저를 자신들의 예쁜 거실에서 편히 맞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저를 위해서 그렇게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지 알지 못했지요. 그들은 계속 저를 저녁 파티에 초대하는 등 저를 계속 환대해 주었으며, 저는 그들이 아마 지루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미국인의 유형들을 잘 알지 못해서 내가 그들과는 사회적 계층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곧 저의 거친 말투가 저를 망쳐놓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자, 저는 제가 그들로 하여금 저의 그러한 면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노력을 덜 하는 것은 마치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요.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그들의 수용태도에는 변함이 없는 듯 했습니다. 저는 저의 다듬어지지 않는 모습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하나의 활력소로서, 하나의 기분전환꺼리로서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만약 혿킨슨 부부가 지루하고 늙어서 쭈글쭈글한 사람들이어서 어떠한 낯선 사람이라도 이용해서 기쁨을 뽑아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아마 더 말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죠. 그들은 현실세계에 살고 있었고, 고무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다음과 같은 불안한 결론에 다달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저를 좋아할 뿐이라는 결론말이죠.
putting themselves out for me at all
put oneself out은 "수고하다", "애를 쓰다"라는 뜻입니다. 뒤의 at all은 "도대체" 정도의 느낌을 주죠.
if their ignorance of American types was such that they failed to see that I was not at all of their social class
어떤 글에서 발췌하신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자는 미국인으로서 상당히 low class로 생각되고 (가령,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기의 노예와 같은 존재), 안나와 크리스는 미국인이 아닌 것 같네요. 그래서 미국인의 종류들(American types) 중에 화자는 상당히 낮은 클래스라서 다른 사람들이 잘 안놀아주는게 당연한건데, 안나와 크리스는 화자한테 잘해주니까 화자가 좀 어리버리해 있는 느낌이네요. that 이하는 such를 동급으로 꾸며주고 있습니다. such = that they failed ~~~ 이죠.
I kept expecting some crude regional expression to betray me
화자는 지금 조마조마 하고 있습니다. 안나랑 크리스가 자기한테 잘해주는게 본인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되고 있으며, 그래서 계속 불안불안한거죠. 그런데, 화자는 아마도 상당히 낮은 클래스 출신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화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도 좀 거칠고 투박하겠죠. I kept expecting some crude regional expression to betray me 를 직역하면 "나의 거친 지역적인 표현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인데요, 결국은 말실수(거친 말이든 상스런 말이든)로 인해 안나와 크리스의 자신에 대한 환대가 끝나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once I thought of it in those terms
여기서 it은 현재의 그러한 '상황'을 지칭할테고, those terms는 바로 위의 내용을 받아주겠죠. 직역하면 "내가 그것(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그러한 조건으로 생각하게 되자"가 되겠고, 여기서 그 조건(terms)이란 앞에서 화자가 생각한 그러한 조건이겠죠. 말실수로 인해 곧 욕먹고 내팽개쳐지리라는...
I would have to make sure they saw that side of me
would have to는 "~해야 할 것이다"이고, that side of me는 "나의 그 면", 혹은 "나의 그러한 면"이겠죠. 그러한 면이란 위의 "crude regional expression" 관련된 내용이고요.
do less would be like trying to “pass.”
100%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데, 노력을 덜 한다는 것(95%만 노력한다는 것)은 마치 그냥 "패쓰~"해 버리는 것과 같다는 표현입니다.
my rough-edgedness
나의 (세련되지 못하고) 거칠고 조악함 (혹은 그러한 면). 안나와 크리스가 엄청 상류층에 고상하고 세련된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화자와 같은 세련되지 못한 사람을 봄으로써 어쩌면 일종의 재미 혹은 흥미를 가질 수도 있는 일이죠.
This would have made more sense if
make sense = 말이 되다. if 이하라면 좀 더 말이 됐을 것이다.
they were in the world
이 문장 바로 앞에 "만약 그들이 지루하고 늙어서 쭈글쭈글한 사람들이었다면..."이라는 내용이 있죠. 그런 사람들이라면 하루 하루가 메마르고 무료하고 심심하고, 그러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나타난다면 신기해서 어떻게든 가지고 놀아 보려고 하는 그런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feast on any new stranger이라는 표현을 보면 feast가 잔치를 열어서 먹고 즐기는 것이고, on이 그 먹고 즐김의 대상입니다. 낯선 사람 가지고 노는거죠 뭐. 하지만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 있다"라고 화자는 말합니다. 이상한 괴기영화나 싸이코 드라마에나 나올 듯한 그런 세상이 아닌, 현실세계에 사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