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에 물리학 박사과정에 입학한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네요.
혹시나 여기에서 고생하시는 분들 이글 읽고 힘내시라고 몇자 적어봅니다.
전 꾸준히 공부를 잘해오거나 하질 않았고 뒤늦게 학부 3학년때부터 죽어라고 공부를 한 케이스입니다.
공부 방식을 잘 몰라서 그냥 무식하게 양으로 승부하고 봤죠 (i.e., 효율은 안드로메다로..).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제 자신을 항상 미워하고 채찍질하면서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학부를 졸업한 (지방국립대)학교는 대학원 유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정도로 아무도 해외대학원 진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선례가 몇분 계시진 하지만 학번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분이라 조언을 구할 분도 없었고요.
학부를 졸업할 때 즈음 되니 제가 실력이 없는걸 잘 알았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일념하에 유학을 준비해서 나왔습니다.
운이 좋게도 지원한 5개 학교중에 세군데서 어드미션이 왔고 그중에 한군데에 입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 물론 어드미션 넣을때 탑대학은 다 걸러냈습니다.
처음엔 합격하고 미국도 오랜만에 와서 정말 좋고 들떳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도 어찌저찌 유학을 와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었죠.
근데 수업 시작하자 마자 좌절이었습니다.
미국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알려주지도 않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학부 베이스에 구멍이 있다보니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첫학기에 한과목은 C를 맞았네요.
첫학기 마치고 정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너무 컸는데 그렇다고 한국으로 바로 돌아갈수도 없어서..
미군에라도 입대하려고 육군, 공군, 해군에 다 전화해봤었는데 결국은 지원자격이 안되서 그것도 못했죠.
결국은 다시 마음 잡고 이왕 시작한거 짤리더라고 그냥 후회없이 끝까지 해보자라는 식으로 해봤습니다.
근데 학부 베이스가 모자라서 두번째 학기조차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남들은 1년차 지나면 qual exam을 볼 준비를 하는데 저는 다음학기 재수강을 신청하고 있었죠..
이런 일년차때의 충격이 대학원 생활 내내 지속되면서 '나는 못해, 놀 자격이 없어' 이런 마인드로 공부를 했는데 정말 답답하게도 실력은 늘지를 않았습니다.
남들은 1년차 2년차에 학회가는데 전 3학년차에 첫 학회를 갔었네요.
이미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제가 below average 였다는 걸 잘 아실겁니다.
공부 이외에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일상생활 자체도 스트레스 투성이였습니다.
한달에 150불로 버티면서 (물론 stipend + tuition waiver가 있었지만.. 너무 작은돈이었어요) 주변사람들하고 인간관계도 다 끊고 그렇게 한 2년 살다보니 성격조차도 바뀌어 버린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서 유학을 나왔지만 이게 유학을 온건지 유배를 나온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네요.
제가 있는 분야는 백인분들이 대부분이고 동양인은 거의 없어서 설상가상으로 인종차별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하면 발표를 끊어버리고 그냥 들어가라 니가 뭔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식이었죠.
다행히도 가족의 응원과 주변의 격려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3년차가 끝날때 즈음 qual exam을 보고 (이것도 정말 힘들었네요) candidate가 되었습니다.
1저자 논문이 4년차 끝날때까지 없어서 어디 postdoc position을 알아볼 생각도 안했습니다.
2018년 말에 정말 맘에 드는 postdoc ad를 봤고 분야에서도 저명한 기관 (LANL)이라 지원을 하고 싶었지만 자괴감과 실력이 안되는 것 같아 결국 지원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4월 같은 팀에 있는 연구원이 너의 expertise가 여기 모집공고에 딱 맞는것 같다고 하면서 지원을 해보라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이게 작년에 포기했던 그 postdoc position 이었습니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지원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지원했고 phone interview를 무사히 마치고 onsite interview까지 했습니다.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전날 잠을 하나도 못자고 인터뷰를 했네요.
솔직히 뭐라고 떠들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발표내내 사람들 반응이 두려워서 화면만 보고 발표를 했던 것 같긴하고요.
좌절감에 집에 돌아왔는데 이게 왠걸
이틀 뒤에 제 발표를 아주 인상깊게 봤다면서 여기서 곧 official offer를 준다는 겁니다.
정말 그 이메일 보고 한시간 이상 멍했던것 같습니다.
5년동안 고생한게 그래도 보람은 있구나 하면서 처음으로 제 자신에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해줬던 것 같네요.
몇 달 뒤 커미티 미팅에서 디펜스 날짜를 잡고 이젠 졸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되고 힘든 박사과정이었지만 (물론 아직 디펜스까지 몇배 고생해야하지만요) 열심히 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이 공부를 왜해야하는지 motivation을 찾을려고 노력했고 그게 어느정도 확고해지면 공부하는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지나고 보면 운동도 꾸준히하고 충분히 일주일에 한번씩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도 할 시간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는지 후회가 되기도 하네요.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전 처음에 미국교수님들 지도 스타일이 너무 방관적이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http://thoughts.chkwon.net/phd-students/
전 위 링크에 있는 글을 읽고 도움이 많이 되었네요. 혹시 도움이 될까 링크 공유합니다.
다들 힘내시고 건강관리하면서 하세요. 저같은 인간도 죽어라 노력하니 되네요.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Cheers!